[아치골함성]아버지의 사과
[아치골함성]아버지의 사과
  • 한국해양대신문사
  • 승인 2019.06.1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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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행정학과14_서명건

_아버지는 엄격했다. 나에게만. 체벌이나 폭력은 없었다. 다만 심리적인 압력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험을 잘 봐서 자랑하려고 보여드리면 돌아오는 것은 한숨과 다음엔 더 잘하라는 말 뿐이었다. 중학교 입학 후 첫 중간고사에서 처음 받아보는 석차. 전교생 600여 명 중 32등이었다. 기쁜 마음에 성적표를 들고 귀가한 나에게 아버지는 기말고사 때는 전교 10등권을 노려보자라고 한 후 방에 들어갔다. 나는 성적표를 찢어버리고 울면서 잠이 들었다. 그 뒤로 중, 고등학교 모든 시험에서 나는 전교 100등 안에도 들지 못했다.

 

_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이 정말 컸고, 반항심으로 엇나갈까도 여러번 고민했다. 그러나 타고난 성격이 물러서 큰 반항 없이 조용히 국립대에 입학했다. 물론 대학입학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다. 수능을 망쳐서 재수를 해야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는 심리적인 압력을 가하는 것을 넘어서 크게 화를 냈다. 3일에 걸친 설득 끝에 재수 허락을 받아내고, 재수 끝에 우리 대학 합격증을 받았을 때 날아갈 듯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버지의 반응이 차가웠다. 그나마 국립대라서 다행이라는 칭찬이라면 칭찬일 수 있는 한마디가 전부였다.

 

_그렇게 대학에 입학하고 군 복무를 마친 후 복학했을 때,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암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시험기간을 핑계삼아 아버지가 수술대에 오르기 직전에야 병원에 갔다. 검사를 받고 입원해있는 동안 아버지는 머리가 눈에 띄게 샜고, 주름은 깊게 패였다. 늘 서운했던 아버지였지만 눈물이 나려고했다. 수술대에 오르기 1시간전, 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그동안 미안했다고. 자신도 장남이었기에 네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고. 하지만 그러한 기대가 너에게 부담이 된 것 같다고. 아버지가 내 손을 놓고 수술대에 들어가고 나서 나는 꼬박 1시간을 눈물을 흘렸다.

 

_내 서운함은 아버지의 사과를 듣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오히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공부하기 싫은 핑계로 삼은 것 같아 죄송했다. 다만, 아버지의 사과를 좀 더 일찍 받았더라면, 혹은 내가 아버지에게 불만을 표했더라면, 서먹한 부자 관계가 나아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버지는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건강히 지낸다. 사과 이후로 나는 적극적으로 아버지에게 표현하게 됐다. 소통은, 가까운 사람일수록 필요하고, 단절되면 골이 더 깊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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