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실수로 생긴 흉터까지 다 내 별자린데
내 실수로 생긴 흉터까지 다 내 별자린데
  • 심은정
  • 승인 2020.09.08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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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대인 우울증 극복 프로젝트
한국해양대학교 방파제 모습 직접 촬영
한국해양대학교 방파제 모습 직접 촬영

 

 해양대학교 학생이라면 방파제와 관련된 기억이 많다. 보통은 아침 일찍 강의를 듣기위해 방파제를 통과해야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친구들과 중리에 밥을 먹으러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빠져나오기도 하고 시험기간에 공부하기 싫어서 동기와 밤 산책을 나오기도 했던 길이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도 잘 지나던 길이 혼자 밤에 걸어갈 때는 왜 그렇게 외로운지 알 수 없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나 혼자 뿐인 것처럼 느껴진다. 우울감은 예고가 없다.

밤의 방파제를 지나는 길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늘어진다. 그럴 때면 걸어도 걸어도 거리가 짧아지지 않는 것 같고, 멈춰서면 점차 길어지는 듯하다. 해양대학교에서 유일하게 외부와 연결된 통로는 밤바다의 철썩이는 파도소리만이 선명하다.

바다를 바라보고 위치한 해양대학교에서 학교생활을 하다보면 우울해질 때가 많은 것 같다. 바다를 계속 바라보면 뛰어들고 싶어진다는 등의 무서운 이야기에 공감한다기보다는,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것 같다는 느낌이 자주 들어서라고 생각한다.

밤을 잊은 문화로 밝힌 불이 꺼지지 않는 여타 대학로와 달리 자정이 되면 어둠이 내려앉는 해양대는 쓸쓸하고 날카롭다. 초속 6m의 바람이 심심찮게 불어대는 작은 섬은 파도가 높아지면 언제 뒤집어질지 모르는 작은 돛단배같다. 처음 학교를 찾아온 손님들은 부산항대교가 보이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떠올리지만 현실은 씁쓸한 짠 내를 머금은 황량한 바닷가이다.

1학년 때 개총(개강총회), 엠티와 체육대회를 정신없이 보내면서 친해진 동기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뿔뿔이 흩어진다. 우리가 불꽃을 틔우고 열정을 쏟아내는 순간은 화려하지만, 꺼지고 난 불빛은 싸늘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공부에 몰입해 시간을 쏟느라 안달하던 그 모든 시간들이 시간이 멈춘 방파제에서는 부질없이 느껴진다.

 

2017년 국내 우울증 환자가 60만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정신질환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기에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일상생활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터놓고 이야기 하거나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 우울증 환자는 613천명으로 전체 국민의 1.5%를 차지했다. 여성이 469천명(유병율 1.9%)으로 남성 234천명(유병율 1.1%)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하지만 우울증으로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약 15%에 그쳤다. 이는 미국(39.2%), 호주(34.9%), 뉴질랜드(38.9%)등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 스스로 우울증을 인지하고 처음으로 전문가를 찾아 치료를 받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평균 84주나 됐다. 진료를 미루면서 상태를 악화시키고 치료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학교에도 상담센터 등이 마련되어있지만 실제 찾아가서 상담을 한다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든 것 같다. 실제로 상담을 한다고 하더라도 정신질환은 숨겨야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신에 우리학교는 필수로 교수님과의 상담을 진행해야한다. 이러한 상담이 선택에서 필수로 바뀐 것은 과거에 기숙사 건물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있고부터라고 한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본교가 학교 학생들의 정신건강과 심리상태를 특별히 파악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키우도록 독려해야 할 필요성은 확실히 느낀 것 같다.

병원에서는 환자 건강 질문지로 아홉가지의 문제에 대한 응답을 요구한다. PHQ-9라 불리는 아래의 질문지에 답을 해보길 바란다. 점수는 다음과 같이 매긴다.

 

전혀 방해받지 않았다 : 0

며칠 동안 방해받았다 : 1

7일 이상 방해받았다 : 2

거의 매일 방해받았다 : 3

 

지난 2주일 동안 당신은 다음의 문제들로 인해서 얼마나 자주 방해를 받았습니까?

  • 또는 여가 활동을 하는 데 흥미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함
  • 가라앉거나, 우울하거나, 희망이 없음
  • 들거나 계속 잠을 자는 것이 어려움, 또는 잠을 너무 많이 잠
  • 느끼거나 기운이 거의 없음
  • 없거나 과식을 함
  • 부정적으로 봄, 혹은 자신이 실패자라고 느끼거나 자신 또는 가족을 실망시킴
  • 읽거나 텔레비전 보는 것과 같은 일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움
  • 사람들이 주목할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거나 말을 함. 또는 반대로 평상시보다 많이 움직여서, 너무 안절부절 못하거나 들떠 있음
  •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함

만일 당신이 위의 문제 중 하나 이상 라고 응답하셨으면, 이러한 무제들로 인해서 당신은 일을 하거나 가정을 돌보거나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체크)

전혀 어렵지 않았다ㅁ 약간 어려웠다ㅁ 많이 어려웠다ㅁ 매우 많이 어려웠다ㅁ

 

위 질문지에서 5점 이상 해당된다면 경도 우울증을 의심 해봐야한다. 경도 우울증에는 운동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심한 우울증에 걸린 환자들은 행동이 느리고 귀찮아하기 때문에 사실 사람 좀 만나라’ ‘운동 좀 해라라는 말 자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우울증 환자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힘이 없는, 또는 자기 자신이고자 하는 열정이 없는 사람이 된다. 정신과 내담자 중 미술치료나 동기부여 치료에 참여 하지 않아서 진전이 힘들다고 하는 환자가 바로 우울증 환자이다.

우울증에 자주 선행하여 Burnout이 나타난다. 우리는 당장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책상 앞에 앉아서 멍하니 시간을 때운다. 시험이 코앞이어서 밤을 샐 때도 자주 나타난다. Burnout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힘이 빠져가는 개인의 증상이 아니라 자발적인 자기 착취의 병리학적 결과이다. ‘해야 한다.’라고 자신을 압박하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가 쓸 정신력이 바닥나 탈진해버린다. 개성을 확장하고 변형하고 새로 발명해야 한다는 명령이 그 이면에서 우울증을 초래하는데, 그러한 명령의 원천은 정체성과 관련되어있다. 정체성을 자주 바꾸면 바꿀수록 생산은 더 큰 활력을 얻게 된다. 후 산업사회는 유연한 개인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수능으로 대학교에 왔지만 모두 내려놓고 놀 수가 없다. 토익과 자격증, 학점과 스펙에 대한 압박이 우리를 성실한 고등학생에서 부지런한 대학생으로 탈바꿈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 결과로 남는 것은 속이 텅 비어버린 공허한 자아뿐이다. 우리는 점점 더 빨리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서 마모되어간다.

 

우리는 가능성에 지배받아왔다. ‘할 수 있다.’라는 조언은 우리를 자유롭게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노력하다가도 그 곳이 도달 불가능한 곳이라는 이상점을 인식하면 녹초가 되고 만다. SKY를 노려야겠다고 공부를 시작하면 공부를 시작함과 동시에 맥이 풀린다. 이때 현실의 자아와 이상 자아의 간극은 자학으로 이어진다. ‘왜 이렇게 못하지.’, ‘왜 성적이 오르지 않지.’ 과거의 자신과 비교하여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고 좌절한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으며 자신을 긍정하고 해방시킨다. 그러나 통제가 없다고 해서 폭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타자에 의한 강제가 자유를 가장한 자기 강제로 대체될 따름이다. 남이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겠다고 인식해서 하는 공부는 주체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채찍질 하며 스스로를 상처입힌다. 높이 가야하고, 올라가야한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가 일정한 생산수준에 이르면, 자기 착취는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된다. 그것은 자기 착취가 자유의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과주체로 완전히 타버릴(Burnout) 때까지 자신을 착취한다. 여기서 자학성이 생겨난다.

이상적인 자신에 비하면 현실의 우리 자신은 온통 자책할 거리밖에 없는 낙오자로 나타난다. 자아는 자기 자신과 전쟁을 치른다. 경쟁을 스스로와 하게 되며 절대적 경쟁으로 날카롭고 섬세하게 비교한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 속에 빠지는 것이다. 자기강요는 자유를 가장하지만 보상을 낳지 못하고, 우리는 자아 속에서 익사한다.

스스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좌절하는 연약한 우리는 단단해져야한다

해양박물관 직접 촬영
해양박물관 직접 촬영

 

 방탄소년단의 앨범인 Love Yourself에 수록된 곡을 하나 소개하겠다. 이 앨범은 방탄소년단이 유니세프와 함께 진행한 캠페인으로 몸과 마음이 아픈 청소년들에게 스스로를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Magic shop은 노래 속에서는 자신들이 최고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고, 소중한 사람의 감동이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해양대학교 학생들도 한때는 SKY를 꿈꾸던 학생들이다. 학교에서 성실하고 우수한 학생들이었으나 오를 수 없는 경쟁사회에서 밀려나 입학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정시원서 쓸 때 해양대학교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태반이니 학교를 다니면서 느끼는 괴리감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재수, 삼수를 했던 학교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 해 보면 성적 맞춰오느라 특성화 학교인 점만 보고 입학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우리 모두 최고가 되고 싶어 했지만 해양대학교에 왔고, 이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한다.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떠나는 학생들도 있으나 입학하고 나서 맺은 관계와 성취는 입시가 다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실제로 우리를 3년 혹은 6년간 옥죄던 그 시스템에서 굴러 떨어지고 나서야 진정한 스스로를 찾게 된게 아닌가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하던 실체와 마주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불안과 실망을 마주하고 그 크기가 두려울 정도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건 성적이 아니었음을 생각하자.

 

그런데 말야 돌이켜보니 사실은 말야 나

최고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닌 것만 같아

위로와 감동이 되고 싶었었던 나

그대의 슬픔, 아픔 거둬가고 싶어 나

 

방탄소년단이 발표한 이 노래는 실제 정신분석이나 심리상담 시에 이용되는 곡이라고 한다. 우리는 바다에 살고 또, 사람과 사람사이에 멀다는 느낌을 자주 받을 때 우울해진다. 가사는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 방을 하나 만들어서 그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자고 말한다.

 

내가 나인 게 싫은 날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

문을 하나 만들자 너의 마음속에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곳이 기다릴 거야

믿어도 괜찮아 널 위로해줄 Magic Shop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저 은하수를 올려다보며

넌 괜찮을 거야 oh 여긴 Magic shop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남들보다 스스로를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고 자책하는 게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 오게 돼서, 중간고사를 못 봐서, 장학금을 못 타서, 애인과 헤어져서 내가 못나서라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자신을 깎아내린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만족스러운 과거를 가질 순 없다.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나만큼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는 점 덕분이다. 같은 고민과 비슷한 문제로 힘들어하는 청춘들로 가득 찬 해양대라고 생각하면 우울감이 좀 가시지 않을까 싶다. 남들과는 다른 대학교를 다닌다는 점이 이질적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남들은 겪지 못할 새롭고 독특한 경험이기에 해양대는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우울은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다. 이 예상치 못한 불청객을 대처하는 능력을 기르면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상처를 외면하면 벌어지고 곪지만,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놓으면 알아서 낫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우리는 모두 여행을 하고 있다. 진정한 스스로를 찾기 위해서 떠나는 영혼의 여행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반드시 있을 텐데, 그 사고의 자취를 밟는 우리의 노력이 우리를 실존에 대한 답으로 이끌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게 됐을 때, 방파제의 바다는 더 이상 싸늘한 공허가 아닌 우리의 슬픔과 외로움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줄 출렁이는 그릇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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