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이야기
노동 이야기
  • 이승민
  • 승인 2022.01.19 23: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살 대학생의 첫 노동 경험, 느낀 바들

노동 현장

어차피 하는 것도 없는데 나가서 일이라도 해볼래?

중간고사 기간을 마치고 고향 충주로 돌아와 하는 것 없이 노는 나에게 엄마가 한 말이다. 심심했던 나는 흔쾌히 알았다 하고 근처 인력사무소에 이력서를 내고 일을 시작했다.

 

 

 

다음 날, 용역 버스를 타고 미리 얘기를 들었던 ”00소재로 향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관계자분이 내가 할 일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맡게 된 일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계속해서 나오는 플라스틱 소재에 묻은 먼지 등을 떼고 다음 컨베이어 벨트로 옮겨주면 되는 거다. 처음에는 크게 복잡할 것 없이 단순 작업만 반복하면 되는 일인지라 첫 일부터 편하게 할 수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그 단순 작업의 반복이라는 게 정말 사람 미치게 만든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어디다 쓰이는지도 모르는 플라스틱 소재들을 몇 시간이고 마주하면 정말 지루하다. ~말 지루하다. 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속 텍스트로만 접하던 인간소외현상을 절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쏟아지는 일감에 자신에 대한 무력감이 점점 커지고 일을 하기가 싫어진다. 옛날에 내가 실수했던 일, 미안했던 일 등의 별 생각이 다 나는 것은 덤이다. 나중에 다른 공장,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단순 작업 반복보다는 차라리 몸이 힘든 노가다, 물류 현장이 백배 낫다는 게 내 의견이다.

일을 가르쳐주고 같이 작업한 형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바로 일을 지금껏 해오셨다고 한다. 세간에서는, 대학을 나오지 않고 젊은 나이에 일을 하는 이들을 보고 좀 무식하다거나 어딘가 대졸자에 비해 모자라는 부분이 있을 거라는 편견이 있다. 그럼에도 그 형님은 힘들게 일을 다니면서도 학점은행제를 통해 산업기사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공부하고 계셨다. 노력과 희망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분이셨다.

 

 

 

다음날, 단순 노동에 지친 나는 사무소 과장님께 일부러 강도가 있는 곳을 부탁해 롯데주류 클라우드 맥주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나는 포장된 맥주를 다시 뜯어 피크닉백에 다시 포장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팀에 배정되어, 포장된 맥주를 옮기는 일을 맡았다. 원래는 포장된 맥주를 재포장하는 업무였는데, 내가 일을 너무 못해서 그렇게 됐다.

지게차를 통해 계속해서 맥주들이 밀려들어 온다. 일은 확실히 보다 더 고되다. 그렇지만 전날처럼 무력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워낙 바쁘고 맥주가 가벼운 편도 아닌지라, 잡생각 할 틈이 없었다. 관리자분들의 엄격한 감시는 덤이다.

중간에 파트너가 몽골인 분으로 바뀌었다. 같이 일하던 형의 손목 부상이 이유였다. 이때부터는 정말 죽을 뻔했다. 몽골인들이 힘이 좋다는 얘기는 여럿 들었지만 실제로 감당해보니 이 몽골인 형님은 지치지도 않고 엄청난 속도로 일을 처리한다. 노래소리가 새는 이어폰을 끼고 고향말로 흥얼거리며 가히 광인이라 칭할 수준으로 최선을 다하던 모습이 굉장히 인상깊다. 물론 나는 이분의 속도에 맞춰야 하는 입장이라 죽을 맛이었다.

두 번째로 갔던 맥주 공장은 공장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좋은 경험이었다. 그들에 대해 하루 벌어서 하루 사는 그런 인생들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자연스레 가정도 없고, 서로 할 일만 하는 차갑고도 게으른 이들이 다수일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내 앞에서 일을 하시던 아주머니는 두 명의 자식이 있는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어머니셨다. 4~5일 정도 일을 하시는 것 같으셨다. 또 농사를 하시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노동자로 일하시는 분도 있었다. 아드님이 청주에서 경찰 공무원으로 근무하신다고 말하셨다. 물론 같이 일하는 분들 중 이상한 사람도 확실히 있었다. 나에게 휴대폰으로 음란물을 대놓고 보여주던 사람, 이상하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일하는데시비거는사람도있었다. 그렇지만 반동적인 인물들은 어디를 가나 있기 마련 아닌가? 여러분도 일용직 노동자에 대한 편견이 없는 성숙한 한국해양대 학생이 되길 바란다.

 

 

 

세 번째 현장은 충북 음성의 농촌이었다. 이번 현장에서는 특정한 일을 맡지는 못했다. 숙련공들이 물 갖다 달라 하면 물 길어 드리고, 잠깐 관리기로 밭 일구고 있으라 하면 그대로 실행하고, 고구마와 고추 종자를 심고 물을 주는, 그런 잡부의 역할이었다. 그간의 경험 중 가장 편한 현장이었다. 단순 반복 작업도 아니고 그리 고된 일도 아니고 중요한 일들은 숙달자들이 담당하고 나는 잔심부름만 하면 되는 환경이었다.

속된 말로 월급루팡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그렇지만 이 또한 좋은 경험이었다. 지난 몇 세기 대부분의 인류의 주 직업이었던 농사의 현장에서 일한다는 건 농업과는 거리가 먼 나에게는 신기했다. 농사를 하며 허리가 너무 아프다는 점을 인지했다. 땅바닥에 뭔가를 해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 계속 허리를 굽히고 있어야 하는데, 옛날 노인들의 구부러진 허리가 고된 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웠던 건 함께 일했던 분들이 농민이 아니고 사무소에서 소개받아 온 노동자들이었다는 점이었다.

 

 

 

현장 이후의 생각

사실 이런 노동이 무색하게 들리는 요즘이다. 주식, 비트 코인, 부동산 시세 차익 등으로 많은 이들이 노동을 그저 주식이나 비트코인에 쓰일 원화 채굴 수단으로 여기는 시대다. 집값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게 날아가고 있고, 일론 머스크의 세 치 혀에 비트코인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국인의 마음을 졸이고 있다. 적금은 어떨까? 이자가 너무 낮다. 이자만으로 재산을 불리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내 주변만 봐도, 내가 일했던 인력사무소 사장님은 주식으로 2억을 버셨다. 충북대를 다니는 아는 형은 비트코인으로 차를 바꿨다. 다만 내 주변은 나이대가 아직 어려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보지 못했다. 누군가는 노동을 하고 직접 땀을 흘리며 느끼는 노동의 가치가 추락하고 있다며 한탕주의에 빠진 사람을 비판하지만, 뼈빠지게 노동해도 괜찮은 집의 가격은 더욱 상승한다. 경제 위기로 채용 시장은 얼어붙었고 감염병의 대유행으로 나라 상황이 너무나 어수선해졌다. 아직 학생이지만 노동을 아주 조금 맛본 입장에서, 대책없는 비판보다는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 사회를 다시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는 건 어떨까? 라는 의견을 밝혀본다.

 

노동의 가치를 무색하게 만드는 현실, 경제 위기와 암호화폐 한탕주의만이 유일한 요인은 아니라고 본다. 옛적부터 한민족의 근간이 되어온 유교 사농공상 사상으로 대표되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직업 질서가 노동자들의 마음을 후벼 판다. 당장 디시인사이드, 일간베스트 등의 험한 곳까지 가지 않더라도 네이버 뉴스만 봐도 노동자에 대한 농담거리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터다. 사무직과 현장 노동자를 동일선상에서 보지 못하고 공돌이’, ‘하루살이 인생등의 조롱으로 땀을 흘려 얻는 노동의 가치가 무너져 가고 있다. 물론 사무직도 노동자이고 나름 힘든 일임은 인지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은, 잘 생각해보면 노동의 가치 훼손은 꾸준히 있어 왔고 특히 요즘 심해진 것 같다는 말이다. 애초에 모든 노동자의 노동이 신성하게 여겨졌던 시절이 대한민국에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도 든다.

 

 

첫째 날엔 노동자의 마음 속 고통을, 둘째 날엔 노동자의 신체적 고통을, 세 번째는 농민의 고통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51일은 노동자의 날이였다. 강성노조, 귀족노조들의 행태가 자주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지만 내 생각에 아직 대부분의 노동자는 확실히 약자다. 힘들게 사시는 분들도 많은 듯하고 도움이 필요한 분들도 많다. 엄청난 노동강도로 생명을 위협받는 택배 노동자, 빠른 배달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도로를 질주하는 라이더, 하루살이 일용직 노동자들 등이 해당되겠다. 조금 노동 현장 맛만 본 한국해양대 학생이 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말일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노동의 가치가 성실하게 인정받고 노동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는 대한민국을 바란다. 그리고 이런 희망을 한국해양대 학생들도 같이 품고 사회를 살았으면 한다.

 

 

 

출처 및 참고자료

-없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