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도와 꿈 꾸는 사람들
[문화] 영도와 꿈 꾸는 사람들
  • 장영경
  • 승인 2022.02.05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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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현대식 건물들 사이에서 섬처럼 남아있던 낡은 건물이 도시재생의 바람을 타고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도시의 역사를 보존하면서, 현대인이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들을 갖추되, 지속 가능한 미래까지 고려해야 하는 일종의 재창조 과정이다. 지구촌 곳곳의 거대 도시는 이미 여러 세대에 걸쳐 이 숙제를 해왔다. 이제 ‘인구감소, 고령화, 산업 쇠퇴로 인한 지방소멸, 도시 쇠퇴’를 겪고 있는 한국 차례다. 도시재생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예전보다 더 새롭게, 더 다양하게

_최근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낙후된 도시공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과정에서 방치된 옛 건물들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이러한 옛 건물 중에는 역사적 의미가 있어 보존이 필요한 경우와 건물의 규모나 형태 그 자체가 역사적 가치를 가지기에 재활용에 의미를 두는 경우가 있다.

 

_영도구의 경우, 도시의 성장으로 인해 도심 인근의 산업시설과 기간시설이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남겨진 건축물이 골칫거리로 남았다. 이에 구청은 빈 건물을 민간과 협업해 문화예술인과 지역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기존 건축물이 가진 외형과 내부의 구조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로운 기능을 도입함으로써 그 건물은 개성을 갖게 되고,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장소로 거듭나는 것이다.

 

무언가 일이 터지고 있는 영도구

_한때 대한민국 최대 해운 수송량을 자랑하던 부산항은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위상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지리적 한계로 부산항은 수위가 높을 때만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부산항만공사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상시 정박할 수 있는 새로운 항만 개발에 착수했고 예전의 부산항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_해운업과 함께 영도구의 경제를 지탱하던 조선업 등 제조업의 경쟁력도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에 밀리기 시작했다. 영도구가 주거 정비 사업과 함께 서비스업·관광업 같은 경제 동력을 모색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_쓰임새를 다한 항구와 조선소 부지를 다시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 시키기 위한 첫걸음은 2010년대 말 시작됐다. 기획 단계에서 중시한 부분은 ‘사람 사는 동네’로 만드는 것. 직장인들이 빠져나가면 텅 비는 업무지구나 주말에만 붐비는 상점가가 아닌, ▲문화 ▲상업 ▲주거 ▲교육 기능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목표가 설정됐다.

 

이미 진행 중인 영도구의 새로운 이야기


#1 라보드

라보드 제공
라보드 제공

_‘해양레저문화의 대중화’라는 꿈을 가지고 영도로 온 4명의 보트빌더들이 있다. 팀 이름은 ‘라보드’. 배의 왼편을 뜻하는 옛말로, 사람들이 탑승하는 자리다. 사람들이 탑승해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느낌이 좋아서 지었다. 이들은 나무를 이용해 주로 예인선(tugboat) 형태의 배를 만들며, 그 위에서 시간을 즐기는 사업을 하는 것이 목표이다. 흔히 바다 위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요트를 빌려주는 사업처럼 볼 수 있지만, 라보드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일반인이 직접 배를 만들거나, 배 구조에 대해 소개하는 등 조금 더 배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더하여 게스트하우스를 함께 운영하여 코스 형식의 체험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해양레저문화는 사치스러운 문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 즐기는 사람이 소수일 뿐더러 국내에서 만든 배에 대한 수요도 거의 없다. 그렇기에 라보드는, 할 수 있는 일이 ‘무한’하며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라보드의 다른 팀원
라보드의 다른 팀원

 

_라보드 팀원 중 우리대학 해사대학 출신인 박희원씨(09학번)는 기관사 일을 하다가 요트에 관심을 가지면서 팀에 합류했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물어보았다. 우선 빈집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빈집을 임대 받아 ▲공방과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이다. 현재 부산시 산하기관인 중소조선연구원 관할기관의 지원을 받아 ▲영도에 띄울 배를 한 척을 만들고 있다. 이번 해가 지나기 전, 제주도에 있는 배를 가져와 어촌뉴딜 관광화를 계획중인 하리항 및 2022년 말 완공 예정인 ‘북항마리나’에서 ▲외국처럼 수로에서 운항하는 관광용 배로 사용할 계획이다. 나중에는 ▲영도 내 해안가 주변 부지를 크게 매입하여 배와 관련된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라보드 인스타그램 @larboard_boatbuilders

#2 1인多색

_도자기로 마을을 물들이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영도를 찾아온 이도 있다. 토우공방 ‘1인多색’의 대표 27세 김동주씨다. ‘1인多색’이란 한 사람이 여러 색을 지니고 있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이곳에서는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핸드빌딩이나 물레로 컵과 접시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예약을 받지 않고 있다. 새로운 작품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그는 도자기 인형인 토우가 전문이지만 이번에는 도자기 조각 수만개를 하나씩 직접 만들어서 벽화를 제작하고 있다. 함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은공예를 하는 사람, 그저 도자기에 관심이 생겨 함께 하는 사람. 이처럼 그는 ‘함께하는 작품’에 대한 갈망이 깊다.

_그는 영도 빈집프로젝트를 통해서 도자기 공방을 비교적 쉽게 시작할 수 있었지만, 사실 도예가로서 시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자기 하나를 구워 내기 위해 필요한 가마나 토련기 등 규모가 큰 설비들이 필요한데,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젊은 작가들이 마련하기에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 "단순히 이곳에 홀로서기보다는 젊은 도예가들이 모여들어 함께 도자기 문화를 펼쳐 나가기를 원한다. 영도의 쓸쓸히 남아있는 많은 빈집들에 각자의 개성을 가진 도예가들이 함께 한다면 영도에 새로운 문화로 꽃 피어날 것"이라며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_이어 “저희 공간은 늘 오픈되어 있어요. 젊은 도예가분들과 함께 꿈꾸어 나가고 싶습니다. 다른 조건 아무것도 없이 의지만 갖고 찾아주세요. 함께 작업하면서 소통하고, 배우고, 취미가 아닌 본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동주씨 제공

동주씨 인스타그램 @d_jo0o0

 

#3 영도 관광두레 사업

카페, 식당, 술집 하고 싶은 사람? 여기 영도로 모이세요!

영도 관광두레 사업안

 

_2021년 5월 14일, 영도에서 관광사업 활성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영도 빈집 프로젝트를 통해 영화식당을 운영하던 구명서씨가 지휘대에 섰다. 애니메이션PD를 하다가 마을을 테마파크로 만들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영도에 들어온 그는 “재미”가 인생의 모토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창업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력을 지닌 실력가이기도 하다.

_우리는 요즘 사람들이 연애하는 것도, 놀러가는 것도, 심지어 육아를 하는 것까지 티브이를 통해 ‘방청’한다. 이러한 방청객으로서 삶에 대해 그는 지적한다. 누구든 주도자가 되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고, 그것에 스토리를 담아 영화나 웹툰 또는 소설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카페나 술집, 식당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요식업은 창업할 때 지원받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번 영도 관광두레 사업에서는 요건이 완화되어 최대 5년 동안 대략 1억 정도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우리대학 학생의 참여도 기대하고 있다.

_기관사였지만 보트빌더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 희원씨, 도예가의 꿈을 계속 꾸고 싶은 동주씨, 많은 이들이 꾸는 꿈을 실현해주고 싶은 명서씨. 모두 이곳 영도에서 그 시작을 함께하고 있다.

 

앞으로 영도구의 도시재생

_한편, 도시재생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과 이해도는 ‘아직’이다. 왜일까. 도시재생이 건물의 정비나 보존과 같은 물리적 환경개선에만 그쳐 아쉽다는 의견이다. 더불어 지역경제는 사람이 머무르고 생활하며 소비와 소득의 선순환을 가져야 하는데 지금의 도시재생 사업은 필요한 공간만을 제공한다는 지적이다.

 

_이러한 모습은 차차 개선되어갈 문제로, 해결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예전 지방자치도 처음에는 ‘주민주도’를 외치며 권한 이양과 시민의 정부를 외쳤지만, 시민 중 그 누구도 뚜렷하게 지방자치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하기 힘들었다. 이후 8년이 흘렀고 이제 부산시에서 지방자치는 ‘성공’은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도시재생도 이제 첫 출발점에 선 것은 아닐까.

 

※해당 기사는 제 324호에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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