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관조에서 벗어나야 할 때
달콤한 관조에서 벗어나야 할 때
  • 김채빈
  • 승인 2021.11.10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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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최근, 전 세계적으로 ‘오징어 게임’이 인기몰이 중이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이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한국 드라마 최초로 집계 대상인 83개 국가에서 모두 1위에 올랐다.

_하지만, 드라마를 시청하는 내내 서사 속으로 몰입하지 못하고 어딘가에 막혀 겉돌았다. 평소 드라마를 즐겨 보는 입장에서 흐름에 몰입하지 못하는 까닭에 대해 고민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별로였나?’, ‘이야기가 너무 급진적인가?’, ‘설득력 없는 이야기인가?’

_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NO’였다. 한참을 고민하다, 피하고 싶었던 답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건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고난들이 주위에서 너무나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_서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해 승승장구하다 투자에 실패해 빚더미에 앉은 상우, 뇌종양에 걸린 노인으로 치매 증상이 있는 일남, 새터민으로 남동생을 보육하고 부모님을 탈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새벽, 코리안 드림을 꿈꿨지만 산재를 당하고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알리,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후 사채와 도박을 전전하다 이혼 후 무기력한 삶을 사는 기훈까지… 조금만 눈을 돌리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인간 군상들이다.

_최근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더 이상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자살이다. 한국의 자살 사망률은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다. 지난 7월 OECD의 ‘보건통계 2021’에 의하면 2018년 한국의 자살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24.7명으로 집계 국가 평균(11명)의 두 배가 넘는 수치이다. 사람들 간의 ‘정’은 사라지고 차가운 시선과 회색 도시만이 남았다.

_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인 경쟁 시스템. 그에 따른 심리적 불안감. 통제 불가능한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 간의 경계를 만들고, 이에 따라 형성된 내 편과 외집단의 구분은 익명의 사이버 공간에서 무서운 인간혐오를 낳는다. 성별 간 갈등, 세대 간 갈등은 날로 심해지고 언론은 수익을 위해 자극적인 주제로 오히려 편견과 두려움을 조장한다. 점점 벌어지는 경제 불균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들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더 이상 현실성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_김소연 시인의 ‘손아귀’라는 시에서 ‘부서지는 것은 부서지면서 소리를 냈다. (중략) 망가지는 것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조용히 오래오래 망가져간다. 다 망가지고 나서야 누군가에게 발견이 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필자가 느끼기에 세상은 망가져가고 있다.

 

_물질적 빈곤은 고립을 불러온다. ‘오징어 게임’에서도 대부분의 게임 참가자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기훈은 이혼하여 딸의 얼굴도 잘 보지 못하고, 새벽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동생을 보육원에 맡겼다. 상우 역시 경제적 빈곤과 죄책감으로 어머니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다.

_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1인 가구 수는 616만 3823가구로 전체 가구의 30.4%에 이른다. 이러한 1인 가구는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처럼 풍요로우며 자유로운 경우는 매우 드물다.

_가족들에게도 발견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살다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는 심각하다. 보건복지부의 ‘2016~2020년 고독사 추이’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고독사의 사례는 총 2880건이다. 2016년에 비해 58.2%나 증가했다. 꼭 노인들만 고독사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40세 미만 고독사 사망자는 97명으로 전체 3.4%였다.

_망가지는 것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세상은 관용을 베풀어 우리에게 계속해서 적신호를 깜빡인다.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영화의 히어로처럼 구세주가 등장하길 기다려야 할까. 대선과 총선 때마다 후보들은 사회 약자들을 위한 정책을 선전하듯 내놓는다. 하지만, 과연 실효성이 있었는가. 오히려 점점 사회 기득권층과 약자들의 거리는 멀어지고 있다.

_그렇다고 사회를 하루아침에 완전무결하게 바꿀 해답은 없다. 부의 재분배,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 자립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등 교과서적인 답은 늘 들리지만, 쉽지 않다.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배움도 부족하고, 사회의 냉혹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고작 22살 하룻강이지일 뿐인데 말이다.

_최근 학교 청소 아주머니와 기숙사 사감 아저씨의 고충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은 학보사의 역할과 능력에 대해 믿지 못하셨다. 단지 ‘허허..’ 웃으실 뿐이었다. 누구나 고충이 있으며 그걸 말해서 무엇하냐고 말이다. 허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내게 공통적으로 한 마디 해주셨다.

 

“물어봐 줘서 고마워요”

 

_청소 아주머니와 기숙사 사감 아저씨가 사회적 약자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사회의 그늘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분들께 작은 관심을 가지는 것만으로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학보사에서의 행보는 세상을 향한 나의 첫걸음이다.

_멀리서 바라보는 사회는 휘황찬란하다. 높은 빌딩과 불빛들, 길을 걸으면 값비싼 외제차와 명품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구석진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은 불편하다. 악취나는 하수구를 피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주위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_편안하고 달콤한 관조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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