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KMOU 문학공모전 [바다를 담은 이야기] 시 최우수상 이강진
2022 KMOU 문학공모전 [바다를 담은 이야기] 시 최우수상 이강진
  • 정예원
  • 승인 2023.01.16 2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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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항지의 해질녘

기관공학부 이강진

 

한참을 땀 흘리다 기관실을 벗어나,

해 질 무렵 갑판에 주저앉아보자.

그 푸르던 바다도 어느새 이미 진한 붉은빛으로 달아오른 하늘을 닮아 검붉음이 퍼진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지, 아니 떠다니는지.

지나온 시간만큼 더 나아가면

생애 한번 가보지 못한 낯선 타지에 발 디디고,

다시금 지나온 시간만큼 나아가면

처음 승선하던 그 땅. 나의 집으로 돌아가겠지.

익숙했던 일상으로,

정든 친구와의 술자리로,

사랑하는 이의 품으로.

 

너무도 먼 훗날의 일인가.

그래도 세월은 바다와 같아

끊임없이 흐르지 않는가.

 

철새, 갈매기 하나 없는 대양의 한복판에선

배의 목소리만이 나의 귀에 닿았고

멀리, 더 멀리 바라보아도

하늘을 고이 담은 그녀의 수평선만 보였지.

 

때론 해무가 짙은 밤

그 넓던 그녀의 바다가 안개에 가리고

별 하나, 달마저도 사라진 흑암을 바라볼 땐

묵직한 바람은 나의 촉각을

사나운 물소리는 나의 청각을

한참은 좁아진 시야 속

어렴풋이 보이는 바다와 배의 형상은

나의 시각을 외롭게 하였으나

그 속의 나의 작은 선실과 침구는

자그마한 안도를 주곤 했지.

 

어느 샌가부터 나의 옆을 날고 있는 저 새가 타는 바람은

곧 마주할 기항지를 향함이 분명하고

하나, 둘 모여든 갈매기는

몇은 배가 만든 기류를,

몇은 갑판에 발대고 휴식을 즐기네.

 

조만간 이 몸도 땅에 발을 딛고

항해를, 여행을 마무리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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