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항지의 해질녘
기관공학부 이강진
한참을 땀 흘리다 기관실을 벗어나,
해 질 무렵 갑판에 주저앉아보자.
그 푸르던 바다도 어느새 이미 진한 붉은빛으로 달아오른 하늘을 닮아 검붉음이 퍼진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지, 아니 떠다니는지.
지나온 시간만큼 더 나아가면
생애 한번 가보지 못한 낯선 타지에 발 디디고,
다시금 지나온 시간만큼 나아가면
처음 승선하던 그 땅. 나의 집으로 돌아가겠지.
익숙했던 일상으로,
정든 친구와의 술자리로,
사랑하는 이의 품으로.
너무도 먼 훗날의 일인가.
그래도 세월은 바다와 같아
끊임없이 흐르지 않는가.
철새, 갈매기 하나 없는 대양의 한복판에선
배의 목소리만이 나의 귀에 닿았고
멀리, 더 멀리 바라보아도
하늘을 고이 담은 그녀의 수평선만 보였지.
때론 해무가 짙은 밤
그 넓던 그녀의 바다가 안개에 가리고
별 하나, 달마저도 사라진 흑암을 바라볼 땐
묵직한 바람은 나의 촉각을
사나운 물소리는 나의 청각을
한참은 좁아진 시야 속
어렴풋이 보이는 바다와 배의 형상은
나의 시각을 외롭게 하였으나
그 속의 나의 작은 선실과 침구는
자그마한 안도를 주곤 했지.
어느 샌가부터 나의 옆을 날고 있는 저 새가 타는 바람은
곧 마주할 기항지를 향함이 분명하고
하나, 둘 모여든 갈매기는
몇은 배가 만든 기류를,
몇은 갑판에 발대고 휴식을 즐기네.
조만간 이 몸도 땅에 발을 딛고
항해를, 여행을 마무리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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