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KMOU 문학공모전 [바다를 담은 이야기] 수필 최우수상 홍진서
2022 KMOU 문학공모전 [바다를 담은 이야기] 수필 최우수상 홍진서
  • 정예원
  • 승인 2023.01.16 2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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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은 파도다

해사수송과학부 홍진서

 

바다가 좋아서요

누군가가 왜 해양대에 왔는지 물을 때마다 머릿속에 있는 많은 답변 중 떠오르는 첫 번째 답은 항상 바다가 좋아서였습니다. 바다와는 상관없는 내륙 지방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바다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어 종종 바다로 여행을 가곤 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 한가운데서 일하는 것이 너무 낭만적으로 느껴져 꽤 어린 나이부터 뱃사람을 직업으로 꿈꿔왔습니다. 해양대에 입학한 뒤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은 점점 더 커졌습니다. 힘들고 우울한 날에도 방파제에 앉아 바다와 부산항의 배들을 보면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3학년이 되어 외부 실습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지원할 때부터 승선 전날까지 바다 위에서의 제 모습을 상상하며 꿈을 이룰 생각에 하루하루 설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125, 짧지만 소중했던 제 인생의 첫 번째 배에서의 바다 이야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정호승, 바닷가에 대하여 -

 

[역시 현장이지 말입니다?]

드라마 미생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인 한석율이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주 쓰는 말입니다. 배에 탄 지 일주일 만에 저는 백문이불여일견을 깊게 깨달았습니다. 항해장비를 통해 충돌의 위험성을 판단하고 조타 명령을 내려 배를 조종하는 것, 다른 선박과 영어를 사용하여 교신하는 것, 하역 계획서를 작성하고 하역작업에 직접 참여하는 것 이러한 실무에서 얻은 지식은 항해기기론’, ‘해사통신영어’, ‘선화운송론에는 없는, 경험으로 배우는 현장 지식이었습니다. 물론 실전의 바탕엔 학교에서 배운 기초와 이론이 있었지만, 현장만의 노하우와 분위기는 앉아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선장님께서 식사 시간에 배 타는 거 재밌나?” 하고 물으셨을 때 하루하루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라고 대답할 정도로 현장에서 알아가는 재미는 값졌습니다.

실전과 이론의 차이는 위기 상황에서 두드러진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때 보건실에서 갑자기 불이 난 적이 있었는데, 정기적으로 했던 소방안전교육이 무색하게도 모두 우왕좌왕하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몸을 최대한 숙이고 옷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질서를 지켜 운동장으로 대피한다.’ 몇 년간 배워 머릿속에선 빠삭한 이론도 실제 상황 앞에선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배에서도 고등학교 때처럼 몇 번의 돌발 상황이 발생했던 적이 있습니다. 2항사님과 함께 새벽 항해 당직을 서던 중이었습니다. “삐리리리-” “2항삽니다.” 갑자기 기관실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기기 문제로 잠시 엔진을 정지해야 한다는 연락이었습니다. 2항사님은 표정이 굳은 채 선장님께 바로 연락했고 선장님께서는 3분 만에 선교로 급하게 올라오셨습니다. 바로 전 선원에게 비상 상황을 알렸고 2항사님께선 해상교통관제소에 본선의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실항사 NUC 등 켜자.” 몇 번을 해상교통법과 규칙을 암기하고 공부하며 익혔던 비상 상황이었지만 실제로 Not Under Command, 조종 불능 상황이 되자 머릿속이 하얘지고 손에 땀이 흘렀습니다. 조종불능상황을 나타내는 항해등인 홍등 두 개를 켜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항해등 옆에 서 있었는데 선장님과 2항사님은 당황한 기색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비상 상황에 대응하셨습니다. 1항사님께 비상 투묘 스탠바이 오더를 내렸고 음향신호를 통해 주변 선박에 경고했습니다. 또한 해상교통관제소에서는 지속적으로 본선의 위치를 알리며 경고 방송을 했습니다. 긴장의 1시간 후, 문제가 해결되어 다시 정상적으로 항해할 수 있었습니다. 짧은 한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배에서는 정기적으로 사고를 가정하여 실제 시나리오를 짜고 역할을 맡아 훈련을 수행해야 합니다. 바쁜 와중에도 매달 해야하는 훈련이 늘 귀찮게 느껴졌었는데, 이번 일을 통해 왜 실제와 같은 훈련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습니다. 또한 해상교통관제소와 배 사관들의 빠른 대처를 보며 위험 상황에 침착하게 대비하기만 한다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좋은 경험했네~” 상황 종료 후 선장님께서 웃으며 말씀하시자 그제야 저도 긴장을 풀고 웃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작은 해프닝은 위기 상황의 대응도 이론보단 현장에서 배워야 확실히 배울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별 헤는 밤]

승선 중 제일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고민 없이 배 위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을 뽑을 것입니다. 수평선에서 떠올라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태양과 수백 마리의 돌고래 떼, 형광 플랑크톤의 영향으로 빛나던 밤바다를 본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여러 풍경 중에서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바로 밤하늘입니다. 육지에선 한 개조차 보기 힘든 별이 밤하늘을 꽉 채운 광경은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날이 좋은 날엔 꼭 당직이 끝나고 30분 정도 밖으로 나가 밤하늘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모든 피곤이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온 사방이 별, , 별 마치 천장에 별을 그려 넣은 벽지를 붙인 듯했습니다. 운이 좋은 날엔 은하수와 별똥별도 볼 수 있었습니다. 평생 한 번 보기도 어려운 별천지를 밥 먹듯이 볼 수 있는 것도 배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였습니다. 혼자 보기 아까워 카메라에 담으려 노력했지만 렌즈로 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이 머릿속에 훤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윤동주, 별 헤는 밤 -

 

파도를 느끼며 새까만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는 것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 제 청춘을 더 빛나게 하는 듯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읊으며 별 하나씩 이름을 지어주다 보면 감성에 젖어 추억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밤하늘은 힘든 승선 생활에 위로가 됐습니다. 학교에 내야 하는 레포트 제출 기간이 코앞으로 다가와 잠을 줄여가며 실습생 친구와 함께 과제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직에 레포트에 피곤하고 지치던 나날들이었습니다. 새벽 2, 과제를 하다가 쉬고 싶기도 하고 허기도 져서 컵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중 창문으로 비친 보름달이 참 예뻐서 우리 밖에서 먹을래?” 하고 제안했습니다. 친구도 흔쾌히 찬성하여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어두운 밤 속 보름달은 밤의 여왕처럼 독보적으로 빛났습니다. 보름달을 보좌하듯 찬란한 별들은 서로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바다에 비친 달과 별을 보니 마치 우주선을 탄 것 같은 기분도 들었습니다. ‘풍경을 먹는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 최고의 야식이었습니다.

? 저거 북두칠성 아니야?” “진짜? 맞네! 국자 모양!”

선명한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을 기준으로 다른 별자리들도 어설프게 찾아냈습니다. 별 보기에 흠뻑 빠져 내친김에 ‘STAR’라는 노래 플레이스트를 만들어 별과 관련된 노래를 습니다. ‘밤하늘의 별을’, ‘별빛이 내린다등 별과 관련된 노래를 들으니 한층 더 낭만이 넘쳤습니다. 특히 밝게 빛나는 별이 되어 비춰줄게라는 노래의 매일 어두워 헤맬 때도 앞이 두려워도 언제나 널 지켜줄게.’라는 가사를 듣자 별들이 힘들고 지친 제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배 안에서 있던 힘든 일들도, 보고 싶은 친구들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녹았습니다. 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는 천문항해학처럼 수많은 별들이 저에게 잘 가고 있다며 여기가 길이라고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힘들고 우울할 때면 이 ‘STAR’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그날을 추억하고 바다 위 밤하늘을 떠올리며 제 마음을 위로하곤 합니다.

 

[대한민국 밖에서 대한민국을 키웁니다.]

승선 3, 6, 9개월이 지나는 시기를 배태기라고 합니다. 배에 권태를 느끼고 싫증이 나는 시기입니다. 저도 승선 후 3개월쯤 되었을 때 이 배태기를 잠깐 느꼈습니다. 육지에 있는 친구들이 여행을 다니고 서로 만나서 노는 모습을 보니 너무 부러웠고 가족들, 친구들도 보고 싶었습니다. 외로움, 그리움과 함께 내가 젊은 날을 배에서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HMM 기업 광고 속에서 대한민국 밖에서 대한민국을 키웁니다.’라는 문구를 보았습니다. 그때 머리 한 대를 맞은 듯한 기분과 함께 심장 한 켠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학교 동기들과 농담 식으로 우리는 애국 해기사라며 말한 적은 있었지만 내가 선택한 이 길이 얼마나 가치 있는 직업인지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경제 대국이 된 것은 무역의 영향이 큽니다. 2021년 실질 국내총생산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37.9%에 달합니다. 이는 우리 경제가 수출입에 많이 의존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또한 2021년의 무역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생산, 부가가치, 고용 측면에서 우리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우리나라의 경기회복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러한 무역의 99.7%는 해상운송으로 이루어집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해운업에 종사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이후로 남들과 비교하며 배에서 청춘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은 접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선택한 진로에 따라 배 위에서 아무나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쌓고 국가에 이바지하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생활은 육지에서 생각할 수 없는 많은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선택한 길에 대한 자부심을 품자, 이러한 상황에 분노하고 실망하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모든 순간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일을 즐기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탔던 배의 많은 사관님들은 운동, 공부, 악기 연습 등 다양한 분야의 자기 계발을 통해 자신을 끊임없이 발전시켰습니다. 저도 운동과 독서 등을 통해 배에서의 스트레스를 슬기롭게 풀어가려고 노력했고 주어진 상황의 벽에 넘어져 무기력해지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또한 다시는 없을 승선 실습의 하루하루를 기억하고 싶어 매일 승선 일기를 썼습니다. 일기를 쓰며 발전하는 제 모습을 보며 나도 대한민국을 키우는 중이다라는 자랑스러운 생각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짧았던 4달간의 승선 실습이었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배 위에서 경험한 모든 일들은 제 삶의 밑바탕이 되어 앞으로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데 든든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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