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KMOU 문학공모전 [바다를 담은 이야기] 수필 우수상 정윤영
2022 KMOU 문학공모전 [바다를 담은 이야기] 수필 우수상 정윤영
  • 정예원
  • 승인 2023.01.16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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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같은 사람

기관시스템공학부 정윤영

 

어릴 적, 여수에 있는 향일암에 갔을 때, 저와 아버지는 절 앞으로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과묵하신 아버지의 눈에 푸른색이 저의 눈에도 푸른색이 가득할 때, 아버지는 저에게 한마디 말씀하셨습니다. “윤영아, 바다 같은 사람이 되거라.” 그 한마디는 그 때 바라본 바다처럼 파랗게 파랗게 제 가슴에 남았습니다.

2022214,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을 때 저는 평택에서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배 위에 올랐습니다. 바로 승선 위탁 실습을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비가 내리는 부두에서 제가 탈 배를 올려다 봤을 때,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배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푸른색 페인트 였습니다. 그 푸른색 페인트를 보면서 그동안 잊고 있던 바다 같은 사람이 되라는 한마디가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바다 같은 사람이 되라는 한마디가 제 5개월 간의 실습 생활을 관통하게 됩니다.

배를 타면서, 처음 느꼈던 이질감은 바로 내가 서있는 곳의 위, 아래, 왼쪽, 오른쪽 가릴 것 없이 푸르렀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얀 조각, 초록 조각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푸른 바다를 보면서 저는 때때로 떠올렸습니다. “바다 같은 사람이 되거라그 한마디를 말입니다.

5개월의 실습은 배울 것도 많고, 재밌는 일도 많았지만, 때때로 처음 겪는 환경에서 오는 피곤함이 다가올 때도 있었습니다. 피곤함이 어깨를 짓누를 때, 저는 저녁을 먹고 계단에 앉아 해가 지는 바다를 바라 보았습니다. 온 사방이 하늘이, 주황으로 빨강으로 노랑으로 물들 때, 바다는 거울처럼 그 색들을 모두 담아냈습니다. 해가 지는 바다 위 다양한 색깔들은 저에게 따뜻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생각했습니다. 바다 같은 사람은 남의 슬픔을 거울처럼 공감하여 도리어 위로로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실습을 하면서 실습생은 위험 하기 때문에 허락 또는 동행 없이 밤에 거주구역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고충을 이해해서인지, 때때로 3기사님은 저녁 먹고 제 방에 전화를 걸어 브릿지로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브릿지에 올라가 3기사님과 함께 선교 양 옆에 있는 윙브릿지로 가 밤 하늘의 별 구경을 하곤 했습니다. 밤 바다에서 올려본 하늘은 무수한 빛의 쏟아짐이었습니다. 아무런 조명이 켜져 있지 않았지만, 밤 하늘의 달과 무수히 많은 별은 하늘을 밝혔습니다. 밤 하늘을 보다가 더 이상 희미해진 경계의 밤 바다를 내려다 보았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별이나 달로 반짝이지 않지만, 철썩이는 소리로 그 존재만을 어렴풋이 알리는 밤바다를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바다 같은 사람은 밝게 빛나지 않아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실습을 하면서 때때로 데크에 나가 작업을 하게 되면, 작업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 바다를 보면서 쉴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땀을 식히며 본 잔잔한 바다는 참으로 아름다웠지만, 저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파도가 높게 올라오는 바다였습니다. 파도가 배를 때리며 하얗게 흩어질 때, 저는 궁금했습니다. 저 깊은 바다 속도 파도가 칠까? 그러한 의문을 가지면 저는 생각했습니다. 깊은 바다속에는 파도가 치지 않는 것처럼 바다 같은 사람이란, 바람이 불어와도 결국에는 남아있는 굳은 심지를 간직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실습을 하면서 가장 아름다웠던 바다를 꼽으라면, 아침에 보는 이제 막 동이 트는 바다였습니다.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를 때 그 광경을 보면, 검었던 바닥 차츰 주황색으로 물들면서, 바다에 가까운 하늘부터 주황색이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합니다. 새롭게 떠오르는 해를 가장 먼저 알아채듯이, 바다는 하늘보다도 먼저 주황색으로 물듭니다. 아직 저 위의 하늘은 거뭇 거뭇한데, 바다는 주황색으로 물듭니다. 어제의 아쉬움은 온데 간데도 없이 오늘 새롭게 떠오르는 희망으로 물드는 바다를 바라보며, 저는 오늘 하루도 힘차게 잘해보자 라는 다짐을 다지곤 했습니다. 제 얼굴도 주황색으로 물들어갈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바다 같은 사람이란 희망으로 넘치는 사람이자, 넘치는 희망으로 다른 사람을 물들이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실습을 마치고, 통영에서 배에서 내리며 마지막으로 배위에서 바다를 눈에 담았습니다. 배에 처음으로 발을 디딜때의 하늘은 우중충 했는데, 배에서 마지막 발을 땔때의 하늘은 그렇게 푸르렀습니다. 앞으로 바다에서 살아갈 날이 많이 있는 해양대 학생으로서 이제 바다에서의 첫 걸음을 딛었으며, 앞으로 바다에서 바다에게 배워갈 얻어야 할게 더 많은 입장이지만, 늘 그 자리의 바다를 보면서 저는 항상 생각할 것입니다. 바다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말입니다.

집에 도착하여 아버지와 식사를 하면서, 예전에 향일암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시냐고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때 기억이 난다고 하시며, 그때 저에게 바다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하신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다는 물이 계곡에서 오든, 강에서 오든, 하늘에서 오든, 모두 받아들인다고 하시면서, 그때 저에게 말씀하신 바다 같은 사람이란 마음이 넓은 무엇도 받아들일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니 바다는 항상 그런 존재였습니다. 바다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 하나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다가 가지는 넓은 마음이란 차이를 중시하기보다는 화합을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바다의 넓은 마음이란 지아비를 잃은 미망인의 슬픔부터 큰 고기를 낚은 기쁨, 거센 파도 앞에서의 절망과 새롭게 닻을 올리는 희망까지 수용하는 마음입니다.

실습하면서 수많은 바다를 보았지만, 바다는 볼때마다 그 색깔이 달랐습니다. 우리나라 동해 바다는 마치 보석과 같이 짙은 코발트색이었고, 남해 바다는 그보다 더 연한 푸른 색이었고, 서해 바다는 뻘이 많아서 그런지 때로는 바다에 황색이 감돌기도 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바다는 너무 투명한 하늘색이어서 바닥이 다 보였으며, 싱가포르의 바다는 약간 검게 보였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바다색이 있지만 그 관점을 넓혀 보면 모두 연결된 하나의 바다였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바다가 색이 다른 것은 주위 환경의 영향에 따른것이라고 하지만, 저에게는 마치 모든 사람이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모든 바다가 같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고 다가왔습니다. 바다는 색깔로도 저에게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바다를 내려다 보면 그 바닥이 보이지 않기에 때로는 두렵기 까지 했습니다. 바다는 겉에서 보기에는 그 깊이를 알 수 없어 때로는 아득한 두려움까지 느껴지지만, 그 깊이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바다와 같은 사람은 누구보다 깊이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 깊이를 몰라 때로는 사람들이 어려워 할지 모르지만, 그 깊이만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입니다. 바다 같은 사람이란 바다처럼 깊이가 있는 사람입니다.

실습을 하면서 적었던 일기에 있는 짧은 생각을 여기에 옮기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아버지와 향일암에 갔다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은 향일암을 집어 삼켰습니다. 지금 그때 그 자리에 있는 향일암은 그 이후에 다시 복원한 것으로 마치 테세우스의 배처럼 제가 아버지와 갔던 그때 그 향일암은 아닙니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니 향일암이 복원된 이후에는 향일암을 방문한적이 없습니다. 제 기억속에 남은 향일암은 불에 타기 전의 향일암이고, 지금 그 자리에는 없는 다시는 볼 수 없는 향일암입니다. 하지만 향일암은

이제는 기억뿐으로만 남을 수 밖에 없는 그때의 향일암을 떠올리며, 저는 오늘도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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