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KMOU 문학공모전 [바다를 담은 이야기] 수필 우수상 김도현
2022 KMOU 문학공모전 [바다를 담은 이야기] 수필 우수상 김도현
  • 정예원
  • 승인 2023.01.16 22: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다로 가고자 했던

해양경찰학과 김도현

 

“...

계속 자도 부족한 잠에서 본능적으로 깬다. 그간의 경험으로 이루어 보아 분명히 이 소리는 전화벨 수화기에서 벨이 울리기 직전에 나는 마치 전화기의 Pre-Alarm같은 소리다.

“...따르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

, 전화벨이 울릴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벨이 울리기 전 그 짧은 찰나의 순간 동안 천지신명, 알라신, 부처님, 하나님, 조상님께 수십 수백번 제발 날 부르는 전화벨이 아니길 빌었으나 그런 일말의 달콤한 희망을 무참히 쳐부수듯이 전화벨이 마치 광견병에 걸린 개가 짖는 것처럼 울리기 시작한다.

, 실항삽니다!”

그래도 어쩌겠나, 받아야지. 짝사랑이 나에게 전화해주기만을 기다리다가 전화가 와서 기쁜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청순 소녀의 목소리처럼 날 부르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최상의 목소리로 전혀 불편하거나 졸린 기색 없이 전화를 받는다.

어 실항사, 나 삼항산데 그 쉬는 날에 미안한데 잠깐 사무실로 와볼래?”

분명히 기억이 난다, 또렷하게. 당직 끝나고 같이 담배를 태우며 나에게 이제는 선진병영이 아니라 선진승선문화가 필요하다며 이에 대해 설파하며 쉬는 날에 쉬는 건 실습 사관의 권리이며 그걸 침해하는 건 단호하게 말하라며 자신의 권리를 챙기라고, 자기도 실습 때 쉬는 날엔 쉬었으며 사관들도 터치하지 않았다고. 그 후로 한 10번은 그 대화를 떠올린 것 같다.

마치 퇴선 신호가 울린 것처럼 빛보다 빠른 속도로 작업복으로 환복을 하고 사무실로 내려간다. 사무실로 가니 삼항사가 인제야 오냐는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견우가 직녀를 기다리는 동안 짓는 표정이 저 표정일까.

내가 없어도 충분히 혼자 끝낼 수 있는 단순 업무를 같이, 오히려 혼자 할 때보다 더 역 시너지효과를 내는 듯 아닌 듯 일하다 보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가늠이 안 된다. 단순히 쉬는 날에 못 쉬게 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이런 내가 이기적인 놈일까. 모르겠다.

그렇게 쉬는 날에 이런 일을 시키려고 왜 나를 부른 걸까. 혹시 내가 좋아서 나랑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그러시는 건가, 1항사 당직인데 20시에 날 불러서 방에 계시던 선장님이 올라오실 때까지 나랑 선교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삼항사의 행동을 보니 정말 내가 좋아서 그런 건지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갈 때쯤 저녁 종이 울리고 하루가 끝이 난다.

내가 왜 해양대에 왔더라. 곰곰이 생각해본다.

한참 전에 잊어버렸던 옛 생각이 떠오른다.

난 바다에 가고 싶었다.

육군사관학교를 포기하고 해양대에 가겠다고 했을 때,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었으나 난 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해양대나 가려고 재수까지 했냐, 부모님 억장이 무너지겠다, 배타는게 너가 생각하는 것 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수도 없이 들었었다.

그렇게 사서 욕을 먹으면서까지, 부모님과 친척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 나는 무엇을 위해 바다에 오고 싶었을까.

흔히들 해사대학생은 3가지 고비를 넘겨야 비로소 진짜 해사대학생이 된다고들 한다. 혹은 그 반대로 3가지 고비를 넘기기 전까지 학교를 나가라고도 한다. 그만큼 커다란 시련이 3가지가 있는데 적응교육, 해양훈련, 외부실습 이 3가지다.

나는 적응교육을 비록 두 번 받았으나 옛날과는 달리 편하게 진행되었고 해양훈련도 하루 단 4시간만에 끝나버려 굳이 따지자면 매일 아침 5시반마다 생활관을 뛰쳐나가는 학군단 룸메이트 때문에 잠이 부족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시련이라고 할 게 없는 무난한 생활을 즐겼었다. 이게 행운인지 불행인지, 바다를 지켜보면 그러한 인제 와서는 아무런 의미조차 상실한 현실 투정의 잡념들이 사라진다.

그렇게 항해당직을 서면서 바다를 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그렇게나 수험생 시절에 서보고 싶었던 브릿지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도 않고 그저 이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악몽 속에서 휴식처를 찾은 기분이다.

그렇게 바다만 보니 삼항사가 다른 실항사는 하라는 견시는 안 하고 레이더만 보며 노닥거리기만 한다며 날 칭찬하는 건지 그 실항사를 욕하는 건지 진의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에게 얘기한다.

그래. 바다가 옳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당연한 거다. 나같이, 쟤같이, 우리같이 못난 놈도 아낌없이 받아주는 곳이 바다다!

이걸 왜 몰랐을까. 이걸 깨달으니 잡념들이 사라진다. 결국엔 다 물 흐르듯이 지나갈 것이거늘 하찮은 것들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바다가 고맙다!

수험생 시절에 바다로 가고 싶었던 이유를, 내가 바다로 온 이유를, 부모님과 친척일가가 반대했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을 것 같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늘을 꿈꾸다 너무 높게 꿈을 꾼 나머지 날개가 타버려 추락한 이카루스, 나는 지금 이카루스의 공허한 꿈에서 해방되었다.

너무나도 많은걸 기대했었고 너무나도 적은걸 예상했었다.

내적 자존감을 최하로 찍어야 비로소 보이는 바다로 가고자 했던 이유.

바다

그곳엔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를 찾아서 불행했었다.

자유가 없기에 비로소 해방감을 느낀다.

자유가 없어서 편안하였고

자유가 없어서 행복했었다.

다시 바다로 나가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