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KMOU 문학공모전 [바다를 담은 이야기] 수필 우수상 박은주
2022 KMOU 문학공모전 [바다를 담은 이야기] 수필 우수상 박은주
  • 정예원
  • 승인 2023.01.16 22: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마음속의 태평양

해양생명과학부 박은주

 

36. 미혼인 친구들은 사회생활에 한창이고, 결혼해서 주부가 된 친구들은 육아에 정신이 없을 때, 나는 해양대학교에 편입으로 입학하였다.

나의 결정에 주변의 반응은 축하보다는 우려가 더 컸다. 하지만 나는 불현듯 지금 아니면 더 이상 배움이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아 도전하였고, 4명을 뽑는 입시에서 5명이 지원한 가운데 첫 번째로 예비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사실상 꼴지였다.

가뜩이나 나이 때문에 주눅이 들어있던 터라 그 결과를 보고 역시나 나는 안 되나 싶은 절망에 빠져있을 때, 누군가 고맙게도(?) 합격을 포기했고 나는 운 좋게 해양생물공학과로 편입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입학하자마자 코로나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그렇게 나는 해양대학교의 캠퍼스를 한 번도 밟지 못한 채 3학년을 온라인으로 보냈다.

4학년 2학기 때 슬슬 코로나 규제가 풀렸고, 학교에 가서 시험도 쳤다. 하지만 낯선 캠퍼스, 띠동갑보다도 훨씬 더 차이 나는 어린 학생들과 같이 한 교실에서 강의를 들으려니 부끄럽기도 하고 자신감이 한없이 바닥을 쳤었다. 그리고 그쯤 kiost의 원생생물연구실에서 학부 연구생을 구한다는 공고를 봤다. 처음엔 많이 망설였다. 나이가 많아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떨어지더라도 도전은 해보자는 생각에 바로 지원했다.

첫 번째 지원자로서 원생생물을 연구하시는 김영옥 박사님과 면접을 보았다.

면담에서 박사님은 전공 분야에 대한 것보다는 오히려 나에 대해서, 나의 인생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듣길 원하셨다.

나는 나의 첫 번째 대학부터 몸담았던 회사를 비롯한 사회생활, 몇 년간 외국에서 살았던 체험기, 해양대학교를 편입하게 된 이유, 앞으로의 나의 목표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박사님께서는 나의 그런 경험들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해주셨고, 이런저런 조언들도 많이 해주셨다. 덕분에 말하는 내내 나의 핸디캡이라고 느껴졌던 많은 나이의 족쇄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또 한 가지, 박사님이 나와 같은 여자라는 사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박사님은 같은 여자로서 같은 길을 걸었을 때 상상할 수 있는 미래상이었던 것이다. 애초에 학부 연구생으로서 랩실에 지원한 것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면담을 하는 내내 학생이 아닌 한사람의 인격체로서 경험이 풍부한 어른과 함께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이야기 끝에 나는 바로 채용이 되어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는 확답을 얻었다. 코로나와 더불어 자신감이 많이 결여되어 있던 시기였고, 흐릿했던 나의 미래에 길이 열린 것 같아 정말 기뻤다. 그렇게 나는 학부 연구생으로 kiost 원생생물 연구실에서 ‘Tintinnids(섬모충)’을 공부하게 되었다.

랩실에서 주어진 일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들어간 첫날부터 황해 탐사의 샘플 시료를 후처리하였다. 그리고 랩실의 박사과정 선배님은 시료와 약품의 처리, 샘플링 방법과 장소, 항해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그로부터 열심히 하면 박사님께서 배를 탈 수 있는 기회도 주실 거에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 설마 내가 배를 탈 수 있겠냐며 자문했었다. 일개 학부 연구생인데.. 어떻게 내가 kiost의 연구선에 탈 수 있겠어..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정확히 일주일 후, 박사님은 나를 부르셔서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내 인생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그 한마디.

은주야, 너 태평양 갈래?

그 순간, 놀란 마음과는 달리 뇌는 빠르게 반응했고 입은 더 빨랐다.

박사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박사님, 저 태평양 가고 싶어요!”라고 우렁차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너무나도 순식간에 나의 태평양 항해의 계획이 세워졌다.

배를 타본 적은 있었다. 통통배라고 불리는 낚싯배 정도?. 뱃멀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태평양으로의 탐사는 내게 단순히 샘플링을 하러 출장을 간다는 일차원적 목표를 넘어 미지의 바다를 탐험하는 해양학자가 된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아직 태평양 출발 전까지 한 달여 가량의 시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들떠서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다녔었다.

나는 해양학자가 되기 위한 최초의 한 발자국을 내디딘 거야!’.

정말 기분이 좋았고 이런 기회를 주신 박사님께도 너무 감사했다.

이 프로젝트의 정확한 이름은 북서 태평양 해양-대기 상호작용 및 태풍 급강화 현상 연구로서 우리나라로 향하는 대부분의 강한 태풍의 그 전후와 태풍 통과 중의 해양-대기 경계층과 해양에서의 수온, 풍속 등 제반 물리 요소를 관측하는 것이 1차 목표이고, 우리 랩실은 북서 태평양에서의 Tintinnids 동정과 먹이망을 파악하기 위한 샘플링이 목표였다. 그 목적을 가지고 연구선에서 수행할 실험에 대해서 준비도 하고 회의도 하면서 태평양 항해까지 준비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드디어 결전의 날. 아침 일찍 박사님과 kiost 남해연구소가 있는 거제시 장목항으로 출발하였다. 연구소에 가까워 오자 내가 타고 갈 이사부호의 모습이 보였다.

이사부호- 5900t 급 해양과학조사선. 폭이 18m, 길이가 99.8m10층 아파트 세 동 규모.틈날 때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고 또 검색해 봤지만 그 크기에 대해서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실제로 보니 거대했다. 거대한 배만큼 내 마음도 벅차올랐다.

일찍 도착했던 터라 남해연구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함께 승선하게 될 박사님들도 소개받았다. 승선 후, 박사님께 말로만 들었던 로제트 샘플러(Rosettes Water Sampling)도 보고 수십 개의 모니터가 달려 있는 메인덱도 돌아다녀 보고 내가 실험하게 될 드라이랩에 실험 도구들도 풀어놨다. 배정받은 내 방은 복도 중앙에 위치하여 창문이 없는 것 빼고는 꽤 괜찮았다.

오전에는 김영옥 박사님과 작별 인사를 마친 뒤 거제를 돌아다니며 해외 출항을 위한 각종 절차를 밟았고, 오후에서야 배는 출항했다.

갑판에 앉아서 장목항을 등지며 천천히 출발하는 모습을 UST 박사과정인 Dayu와 함께 지켜보면서 앞으로의 항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소형 어류의 eDNA를 분석하기 위한 샘플링을 목적으로 함께 하게 된 Dayu는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이번에 이렇게 큰 배를 타보는 것이 처음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 대학 해양환경과 고기후 실험실의 학생들을 만나서 또 한차례 태평양 항해에 대해서 신나게 떠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내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이사부호의 식사 메뉴는 굉장히 좋았다. 한 달 동안 매끼가 모두 훌륭했으며 전부 맛있었다. 비록 나는 아침식사를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아침엔 죽도 제공된다고 한다. 때로는 특식으로 고기를 직접 구워 먹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슬람교도인 Dayu를 위해 특식도 제공되었다.

오후에는 방에 짐을 풀고 방 청소를 하였다. 피곤했는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일어나서 저녁을 먹은 후엔 메인덱에서 박사님들과 학생들이 각자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서로의 항해 목표를 이야기했다.

박사님들은 kiost해양 환경·기후연구센터소속으로 물리학과 해양학 전공을 하신 분들이셨다. 또한 이 프로젝트의 리더이신 강석구 박사님께서는 앞으로의 항해에서 수행해낼 각종 조사와 장비의 사용, 그리고 데이터 수집, 그 데이터가 쓰이게 될 경로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매일 저녁 메인덱에 모여서 그날의 성과 보고와 남은 과제에 대해서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고 다음날부터 첫 샘플링 정점으로 향하면서 kiost 팀은 데이터 수집을 위하여 웨이브 글라이더, 부이, 아르고 등의 탐사장비를 투입하였다. 이 흥미로운 장면들을 나는 2층 갑판에서 지켜보았는데 장비가 바다에 투하될 때마다 무사히 잘 작동하기를 기도했다.

첫 샘플링 정점에 이르자 로제트 샘플러가 바다에 투하되었다. 로제트 샘플러는 많은 니스킨 채수기가 붙어있는 모습이 장미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설정된 깊이에 도달하면 자동 및 수동으로 보틀이 터지면서 그 속으로 해수가 포집되는 구조로 되어있고, CTD 등을 추가 장착하여 수온 및 염분의 데이터도 얻을 수 있는 장비이다. 그렇게 수집된 해수로 수층별로 해수의 특성, 거기에 존재하는 각종 생물군과 먹이망을 화학적/생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나는 이번 항해를 통해 각 정점별로 수층에 따라 Tintinnids의 동종과 먹이망 분석을 목적으로 로제트 채수기를 이용하여 수층별로 해수를 채집하고 필터링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과제였다. 나는 총 7개 정점에서 채수와 필터링을 시행하였다. 특히 낮과 밤 구분 없이 배가 정점에 도착하기 몇 분 전부터 로제트 샘플러를 내리기까지는 무조건 대기를 하고 샘플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정점 도착이 자정을 넘긴 시간일 때는 잠을 자지 못한 채 새벽 일찍 뜨는 해를 보면서 샘플링과 필터링을 했다. 그렇게 한번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었고 최소 8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식사도 거를 때가 많았고, 샘플링을 끝내고 나면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쌓여가는 샘플들을 볼 때마다 뿌듯했고, 내가 샘플링 해온 시료들이 북태평양의 Tintinnids 분석으로 값지게 사용된다니 작업 도중 실수하지 않도록 집중을 다하며 꼼꼼하게 수행하였다.

고기후 랩실의 모크네스(multiple open and close plankton net and environmental sensing system) 작업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웠다. 거대한 그물을 바다로 투하하고 배가 이동을 하면서 해류를 이용하여 그물에 각종 해양생물을 포집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신기해하는 나와는 달리 12시간 이상 진행되는 고된 작업으로 학생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초췌해졌다. 그 힘든 작업을 3번이나 하다니. 바닷물과 땀으로 흠뻑 젖은 그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렇다고 마냥 배 생활이 힘들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샘플링 해야 할 정점이 아니면 시간적 여유가 있어 드라이랩에서 과자를 먹으면서 다른 학생들과 잡담을 하기도 하였다. 특히 매일 제공되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거기에 UST, OST 대학원에 관한 정보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물어볼 때마다 자세하게 가르쳐주는 그들이 참 고마웠다.

그 외에도 가끔씩은 갑판에 나가 태평양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특히 해가 질 무렵 태평양의 석양은 정말 최고였다. 어디서 소문이 났는지 특히 날이 좋을 때면 방에 계셨던 박사님들도 갑판으로 나와 황금빛으로 물든 하늘을 핸드폰에 담았다. 한참을 서로가 찍고, 찍어주면서 웃고 떠들었다. 풍경과 더불어 웃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고 즐거웠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갑판에 누워 은하수를 본 일이었다. 그곳은 조종실 쪽으로만 출입할 수 있는 선수의 갑판이었는데 항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불을 켜지 않아 별이 아주 뚜렷하게 잘 보이는 명당이었다. 하늘은 또 하나의 바다였다. 바다가 수많은 생명체들을 품고 있듯이 마찬가지로 하늘도 수많은 별들을 품고 있었다. 별들이 쏟아질 것 같은 그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곳에서 함께 은하수를 본 Dayu와 도희, 해인이는 그날 이후로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로 남았다. 그리고 가끔 만나서 그때의 추억에 대하여 곱씹기도 한다.

그러나 태평양이 이렇게 우리에게 항상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항해 끝 무렵 태풍을 따라가면서 복귀할 때, 바다와 기상 상황이 매우 좋지 못했는데, 배가 계속 요동치는 환경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누우나 서나 꿀렁대는 배에서 멀미도 하였고, 멀미 증상으로 계속해서 머리도 아팠고 자꾸 잠이 왔다. 밥도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갑판으로 종종 나가 바람도 쐬고 항해 상황도 확인했다.

다들 항해 막바지엔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많이 지쳤던 것 같다. 여기엔 출발할 때 투하했던 웨이브 글라이더를 회수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 말썽을 부렸던 이유도 컸다. 글라이더가 해류를 따라서 너무 멀리 가버린 탓이었다. GPS로 위치를 찾고 Kiost 본원과 계속해서 수신호를 주고 받아 겨우 웨이브 글라이더를 회수했을 때 우리 모두 는 갑판에 나가서 그 상황을 지켜보았고 나는 박수를 쳤다. 이제 모든 장비를 회수하고 다시 장목항으로 향했다. 마지막 밤에는 축배를 들며 한 달간의 무사안전에 대해 감사하며 마무리를 하였다. 다음날 새벽, 장목항에 도착을 하였고 오전에 코로나 검사를 한 뒤 오후에는 다시 본원으로 돌아와 시료 샘플들과 짐을 정리했다.

비로소 나의 첫 태평양 항해가 끝난 것이었다.

한 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기간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바다의 무한함에 마음이 두근거렸고, 이러한 바다를 탐사하고 연구하는 박사님들께 존경심이 생겼다. 그리고 함께 항해를 하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도왔던 사람들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항상 많은 나이부터 걱정하며, 무엇을 시도하는 것조차 움츠렸던 나는 드넓은 태평양을 보며 위대한 자연을 느끼면서 더 이상 나이의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지나가 버린 과거보다 다가오는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는, 그리고 밝은 미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달았다.

망망대해에서 높은 파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를 탐구하고자 노력하는 해양학자처럼, 나도 알 수 없는 미래에 역경을 해치며 스스로에 대해 탐구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노력해야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