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KMOU 문학공모전 [바다를 담은 이야기] 수필 우수상 강윤희
2022 KMOU 문학공모전 [바다를 담은 이야기] 수필 우수상 강윤희
  • 정예원
  • 승인 2023.01.16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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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 바다 인연

해양공간건축학부 강윤희

 

항상 학교 뒤쪽 바다를 보러 갔다. 뒤쪽 바다라 하면 대부분이 우리 학교 뒤쪽은 산이 아니냐는 반문을 던진다. 그럼 나는 내가 속한 건물의 뒤쪽이라 뒤늦게 정정했다. 따지자면 섬 전체의 왼편에 위치한 바다인데 나에게는 뒤쪽 바다라는 명칭이 익숙해져 버렸다. 나는 그렇게 보는 바다를 참 좋아했다. 칙칙한 학교 속 새파란 바다만이 색이 입혀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바다를 본다는 것만으로 묘한 설렘이 마음속에서 일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특별한 기억이 생긴 뒤로 더 좋아하게 됐다.

 

어느 토요일 학교를 오게 된 적이 있다. 토요일에 멀리 있는 학교에 왔다는 사실에 볼일을 본 뒤에도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나만의 해결책인 뒤쪽 바다를 보러 갔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며 새파란 바다를 보고 있자니 심통도 풀리고 오히려 묘하게 들뜨는 마음이 차올랐다. 그때 한 쌍의 노인 부부가 말을 걸었다. 아가씨는 여기 학생이냐며, 혹시 학교를 좀 소개해 줄 수 있냐는 것이다. 학생의 부모라기에도 연로해 보이셨다.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고 외부인이 수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냥 일직 집에나 가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저으려 했다. 하지만 부부의 뒤로 보이는 대충 세워둔 배와 흡연하는 교직원분들뿐인 풍경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주말이라 사람도 없는 학교에서 이런 부탁을 할 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싶었고, 할아버지분이 잠시의 침묵에 벌써 거절을 당한 듯 눈썹을 늘어트리자 우리 할아버지 생각도 났기 때문이다. 학교는 너무 익숙하기도 하고 오늘이 그렇게 바쁜 날도 아니다. 수상하면 어떤가. 두 분과 함께하면 뭔가 재밌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호기심이 생기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분들을 모시고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노인분들이라 내가 걸음을 맞춰야 하나, 생각했는데 나보다 정정한 걸음을 딛고 계셨다. 여기는 도서관이고요, 여기서 애들이 공부하고 그래요. 이쪽이 공연 같은 거 하는 소강당이에요. 이곳저곳을 설명하며 들은 바로는 부부의 손자가 이곳에 다닌다는 거였다. 그래서 와보고 싶었다며, 그런데 와보니 대학이 생각보다 너무 크고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안 가서 어쩌나 하던 차에 손자와 비슷한 나이대의 아가씨가 보여 말을 걸어 본 것이라고 하셨다. 수상과는 거리가 한참 먼 사연을 들으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손자가 공부하는 곳이 궁금해 여기까지 오셨다는 두 분의 마음이 전해지기도 했고, 아가씨 정말 고맙다며 웃어주시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일 거다. 마지막 목적지인 학교 카페에서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었는데, 할머니가 사실 나는 여기 손자가 오기 전까진 제복 입은 애들만 다니는 곳인 줄 알았다. 우리 애도 입나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하시는 말씀은 우리 할머니가 하신 말씀과 같아 픽 웃음이 나왔다. 아들이면 이렇게 우리랑 돌아다니지도 않았을 거다. 딸이 최고라 하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에도 우리 할아버지가 내가 할머니와만 놀아준다며 이래서 아들이 최고라 하시며 투덜거리던 모습이 떠올라 픽 웃음이 나왔다. 주말에 학교에 왜 이렇게 말을 많이 하고 웃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카페를 나와 두 분과 함께 학교를 나왔다. 학교를 나와 허리 쪽으로 가시는 두 분께 작별 인사를 하는데, 계속해서 고맙다고 인사하셔서 그 말을 살면서 제일 많이 들은 날 같다고 킥킥거리며 제가 더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렸다. 고맙다는 말을 아가씨가 왜 하냐는 듯이 나를 보는 두 분께 여기저기 안내시켜드리고 돌아다니면서 이야기 나누니까 너무 재밌었다고 말씀드리자 두 분이 빈 말 말라며 멋쩍게 답하셨다. 하지만 두 분이 내 대답에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 분명히 내 대답이 나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두 분이 가시는 모습을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내가 그 학교 뒤쪽 바다에 가지 않았다면 집에서 휴대폰을 하고 있을 시간이겠거니 짐작됐다. 그보다는 지금의 기억이 훨씬 값지고 오래갈 기억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거기 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매일 빼놓지 않고 자신을 보러 와주는 사람에게 바다가 선물한 인연일지도 모른다.

 

일본으로 유학을 하러 간 친구가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겠다며 일본어를 공부하고 한자 사전을 들고 다니는 친구였다. 너도 같이 일본 대학에 가자며 일본이 더 재밌을 거라고 살살 꼬시기도 한 친구지만 고등학교 막 학년이 돼서는 내가 해양대에 원서를 접수할 때 도와주기도 하고 응원해준 친구였다. 그 친구와 면접 날 함께 해양대학교를 오게 된 적이 있다. 내가 면접을 위해 해양대로 가는 길을 찾고 있을 때 함께 가자며 먼저 말을 꺼내 줬다. 너 준비할 것도 많으면서 뭘, 하고 만류하는 척했지만 함께 가준다는 말이 고마워 말끝을 흐렸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우린 난 유학 심사 중이라 할 일도 없다고 너스레를 떨며 함께 버스에 타고 학교에 함께 와줬다. 버스 안에서 벌써 긴장으로 온몸이 굳어 말없이 떠는 날 보고 못 칠 일은 없겠지만 진짜 설마 못 친다면 내가 일본에 데려가 주겠다며 농담을 던져 내 긴장을 풀어 줬다. 3년 전부터 포기 안 했다고 말하는 그 모습에 긴장이 풀려 한참을 웃으며 학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소금 내와 보이는 푸른 바다 풍경에서 반짝거리는 윤슬을 보고 바다다! 누구 하나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입에서 탄성을 터뜨렸다. 와 대박을 연신 외치는 우리 모습을 그때 함께 버스에서 내린 해양대 학생일게 뻔했을 언니는 우리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아직도 궁금하다. 픽 웃는 얼굴에서 매일 보는 건데? 하는 반문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매일 바다를 볼 수 있게 이 학교에 입학하고 싶다고 의지에 불을 한층 더 질러준 셈이다.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바다를 보며 본격적으로 건물이 나오기 시작하자 무슨 학교가 그렇게 큰지 우리는 두리번거린다고 정신이 팔렸었다. 두리번거리다 발견한 커다란 학교 안내문을 손으로 더듬거리며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친구가 여기가 앞장서서 면접 장소 아니냐며 길을 찾아 줬다. 일찍 도착해 실제 장소에서 실전 면접 연습을 하기 좋겠다고 호들갑을 떤 둘이지만 대학교라는 공간이 주는 위압감과 외부인의 신분이라는 마음이 더해져 건물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밖에서 연습해보자고 말하며 도착한 면접 건물 뒤쪽에도 바다가 보였다. 하지만 아까의 입구에서 윤슬을 반짝이며 우리를 환영해주는 듯한 바다와 다르게 건물 그늘이 지어서 어둡고 서늘한 바다는 꼭 당장에라도 우리를 삼킬 것 같았다. 서늘하게 부는 바람이 꼭 불행의 상징 같고, 불운의 전조로 느껴지던 예민한 수험생이던 나는 괜히 이리 왔나 싶기도 하고 소름이 돋아 돌아가자, 어디 다른 곳 가자고 말하려던 차였다. 그대 친구가 여기가 꼭 지구가 멸망한 뒤 영화 속 바다 같기도 하고 밤바다의 여주인공 될 수 있는 바다라며 펄쩍 뛰었다. 이제 너 여기 다닐 테니까 매일 사진 찍으라며 폴짝 이는 모습에 불안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당연히 합격만을 가정하며 저만의 방식으로 내 기분을 눈치채고 위로해준 친구는 그런 바다를 배경으로 모의 면접을 진행해줬다. 열정적으로 면접 연습을 해주고 나를 격려해준 친구 덕일까 나는 어느 연습 때보다 자신 있게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 면접을 마친 나를 기다려준 친구와 건물을 나오고 다시 보이는 뒤쪽 바다는 검은 비단 같기도 하고, 잔잔히 첨벙이는 게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면접이 어땠는지는 묻지 않고 여기서 일본 보일까? 여기서 매일 인사할래? 진지하게 물어주는 친구가 너무 좋아 와락 안았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뒤 나는 학교에 붙어 정말 바다를 매일 볼 수 있게 되었고, 친구도 일본 입시에 성공해 일본으로 떠났다. 이제 가냐며 잘 지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며 공항에서 얌전히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나를 와락 안으며 너야말로 잘 지내야 한다고 인사해준 친구가 뒤돈 순간 벌써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가깝다. 가까운 나라니 언제든 보러 가야지, 재워달라 해야지 생각하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대학생이 된 나에게 닥친 건 코로나라는 질병이었다. 코로나라는 상황에 일본은 외국인의 입국을 철저히 금했고, 유학생의 출국 역시 금해버리면서 친구와 나는 3년 정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 보고 싶다 심심하다 뭐 먹냐 매일 이어지던 가벼운 대화는 어느새 드물어졌고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가 돼버렸다. 영상통화도, SNS도 면대면으로 가지는 만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멀어지는 마음에 끊어지는 인연이 되는 건가 생각하게 된 나는 입학한 지 3년이 지나 바다는 좋기는커녕 지겨운 나이가 된다. 학교 뒤쪽 바다를 일부러 보러 가며 바다를 보기만 해도 설레던 내가 그때쯤부터 딱 바다를 보면 지겹다는 생각만이 들게 된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잊은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그때는 모든 게 그렇게 재밌었지 하는 지루한 일상으로 시작된 비관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르게 됐다. 그 친구랑 이 뒤쪽 바다를 다시 봐도 그때처럼 웃음이 터져 나오기보다는 어색하겠다 생각하던 내게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만날 수 있냐며 묻는 친구는 일본으로 유학을 하러 간 그 친구였다. 그러고 보니 일본 입출국이 완화된다는 뉴스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뭔데 이렇게 뜬금없이 연락이 온 건지, 다시 보면 몇 년 만인데 어색하지 않겠냐는 수많은 반문이 손가락 끝에서 완성을 망설였지만 나는 보자고 답장을 보냈다. 그게 문자가 왔을 때 마침 내가 거물 뒤쪽 바다에서 둘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어서 그런 답이 나간 걸 지도 모른다. 짐에 와서는 어색할 것 같다며 후회되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친구가 나보고 만나자고 지정한 장소는 남포였다. 남포에서 만난 친구에게 어색히 말을 붙인 나와 달리 친구는 나를 와락 안으며 보고 싶었다고 연신 외쳤다. 그제야 나는 하나도 안 변한 친구와 우리 관계에 안도하며 친구를 서로 안을 수 있었다. 일본에서 지낸 이야기를 한참 듣기도 하고 한국은 이랬다고 근황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계속되면서 친구가 꺼낸 말을 뜻밖이었다. 너무 오고 싶던 한국인데 겨우 4일밖에 못 뺐고 사실은 그마저도 학기를 박차고 나온 것이라는 말에 나는 당황했다. 그럼 가족들 보고 서울 가서 놀고 해야지 여기서 이래도 되냐며 당장이라도 박차고 나갈 기세인 나에게 친구는 하루는 널 보는 데 쓰고 싶었다며 태연히 답했다. 그런 친구의 대답에 나는 어색하지 않을까 외출 전까지 걱정하던 아까의 제 모습이 떠올라 부끄럽기도 하고 정말 고마워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다. 목이 쉴 대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어느새 시간은 한참 늦어 있었다. 이제 일어나자고 아쉬움을 숨기고 말하는 내게 친구가 마지막 목적지를 제안했다. 바다였다. 앞으로 나서면 자갈치 시장 뒤로 바로 보일 테니 거기에 가자며 내 손을 잡아끄는 친구를 따라 친구와 3년 만에 함께 바다를 봤다. 그때는 윤슬이 빛나는 한낮의 바다를 보며 학교에 함께 들어가 준 친구가 3년이 지난 지금 그 학교의 학생이 된 나와 밤바다를 이렇게 보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고 벅찼다. 그런 감정을 숨기고 일본 바다랑 한국 바다는 좀 다르냐며 묻는 내게 친구는 너랑 바다가 너무 보고 싶었다 답했다. 사실 일본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고 코로나가 겹치면서 진짜 힘들었는데 위로가 된 게 바다였다며 일본에서 보는 바다나 내가 그리운 사람들이 있는 한국에서 보는 바다나 결국 한곳에서 만날 테고 그걸 생각하면 외로움이 가시는 것 같더라 솔직하게 말하는 친구가 대단했다. 일본에서 바다를 보며 그리운 사람을 생각할 때 누구랑은 어떤 바다를 봤고 누구랑은 이런 바다를 봤다고 회상했는데 그중 너랑 본 해양대의 바다도 너무 좋았다며 그래서 바다를 보러 오자 했다고 말했다. 지금 기억으로 또 일본에서 바다를 보면서 널 생각하면 되겠다며 웃는 그런 친구가 정말 고마워 그럼 추억 더 만들고 가라며 밤바다를 배경으로 한참을 떠들고 길거리 음식을 사 먹었다. 나는 친구와의 좋았던 추억을 비관적인 생각으로 덮어버렸는데 친구는 그 기억으로 일상을 버티고 이제는 그 기억에 더해 새 추억을 만든 것이다. 그런 친구가 너무 대단하고 좋다. 나는 이제 학교 뒤쪽 바다를 보며 비관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친구가 보는 바다나 보는 바다가 결국 한곳에서 만날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 다시 시원한 바람에 들뜨며 설렘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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