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KMOU 문학공모전 [바다를 담은 이야기] 수필 장려상 임서윤
2022 KMOU 문학공모전 [바다를 담은 이야기] 수필 장려상 임서윤
  • 정예원
  • 승인 2023.01.16 2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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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부산

해양경영경제학부 임서윤

 

치열한 생존의 역사가 곳곳에 묻어있는 도시

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산역에 처음 내렸을 때요.

 

부산이 낯설다 하면 거짓말입니다. 아빠의 고향이 부산이라서요. 막 많이 가본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친밀해요. 아빠의 입을 통해 전해졌던 부산은 다소 거칠고, 험했습니다. 마치 강한 자들만 살아남을 수 있는 거대한 소굴 같았달까요. 아빠가 남고를 나온 탓이겠지요. 그렇지만 제가 열아홉에 가본 부산은 달랐어요.

 

열아홉, 수능을 끝내고 하릴없이 빈둥거리기만 하던 그 때 친구들 사이에서 부산에 가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주변에 있는 거라곤 산밖에 없는 대전 애들이라 바다에 대한 환상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마냥 보내버리기엔 영 아까운 시간들이 속절없이 지나가던 12, 그렇게 저는 친구들과 함께 부산행 KTX를 탑니다. 부산하면 바다고 바다하면 부산이니 당연스럽게도 해운대, 광안리 같은 명소들에 기대를 가졌던 걸로 기억해요. 그러나 허술한 계획 탓에 시간이 붕 떠버린 우리는 아주 우연히 '이바구길'을 가장 처음 가게 됩니다. 부산역 바로 앞에 위치한 동네더라고요. 주민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작은 모노레일을 타고 꼭대기로 올라가는데 심장이 마구 뛰었어요.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아주 좋은 기억을 가지게 될 것 같다는 직감이었던 것 같아요.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내려다본 부산은, 무척이나, 정말 무척이나 예뻤습니다. 햇살 받아 반짝이는 바다의 잔물결과 멀리 내다보이는 항구, 높은 건물, 그리고 사람들. 날씨가 좋아 그랬는지 기분이 좋아 그랬는지. 12월의 추위에도 한참을 그곳에 서서 생경한 풍경들을 눈에 담았어요. 지금까지도 그 첫인상이 너무 강해 부산은 제게 그 장면, 그 이미지로 남아있습니다.

 

일박 이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부산 곳곳을 돌아다니며 느낀 점은 '왜 저기에 집이 있지' 싶은 곳에 사람이 산다는 것이었어요. 가끔은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대체 어떻게 저런 곳에 집 지을 생각을 했을까 싶어서요. 상당한 경사의 언덕배기도 참 많고, 그런 언덕들이 한두개가 아니고. 버스 타다 멀미해본 적은 부산에 와서가 처음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실감이 좀 나더군요. 6.25 전쟁 당시 온갖 데에서 내려온 피란민들이 오로지 오늘의 생존을 위해 급하게 집을 짓고, 터를 잡고, 한끼 한끼를 해결한 도시.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자라난 도시라는 게 그런데서 티가 나더군요. 멀리서 내다본 도시 정경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골목 하나, 동네 하나 그냥 넘길 수 없는, 예정된 일정을 과감하게 바꾸고서라도 직접 보고 싶은 풍경이 시시각각 생기는 아주 매력적인 도시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하면 부산은 '부산스럽다'는 형용사가 참 잘 어울리는 도시입니다. '보기에 급하게 서두르거나 시끄럽게 떠들어 어수선한 데가 있다.' 정말 잘 어울리지 않나요? 아무래도 사투리 때문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예상보다 사투리의 강세가 세고 말이 빨라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특히 어르신들이 많은 시장 같은 곳에 가면 잘 못 알아들어서 꼭 두번 씩 물어봤었어요. 대학에 오고 부산 친구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네들에게도 전부 엄청 빠르고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들 엄청 불 같아요. 직접 겪기 전까진 스테레오 타입 중 하나겠거니 여겼는데 막상 겪고 나니, 아 스테레오 타입이 생기는 덴 다 이유가 있구나 싶어 학기 초엔 특히나 더 흥미롭게 관찰했었습니다.

 

학교가 부산의 외곽 중의 외곽, 영도에 있다 보니 아무래도 현대화된 부산보단 예전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부산을 더 많이 접했던 것 같아요. 하리에서 태종로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어쩐지 엄마 아빠의 사진첩에서 볼 수 있던 풍경들이 보이기도 하고요. 가장 가까운 도심인 남포 역시 항상 투박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끔은 자동으로 시간여행을 시켜줘요. 그래도 영도대교를 지날 땐 여전히 잘 믿기지 않아요. 여기가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그 영도다리라고? 싶답니다.

 

영도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로는 흰여울 문화마을이 있습니다. 학교랑 가깝길래 자주 가봐야지 했는데 아쉬워요. 흰여울 문화마을의 매력이라 함은 아기자기한 벽화와 미로 같은 골목이 있겠습니다. 유현준 건축가가 말하길, 사람들이 걷고 싶어 하는 길을 만들기 위해선 100M 당 가게 입구가 30개 이상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부산의 흰여울 문화마을도 나름대로 저 기준에 부합한다고 생각해요. 걷는 내내 수시로 바뀌는 거리의 풍경이 무척이나 재밌기 때문이죠.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귀여운 제품들을 파는 소품샵이 나올 때도 있고 무작정 걷다 보면 영화 촬영지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칠 때쯤 눈앞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작은 카페가 나타나 나를 기쁘게 만들어요. 부식으로 인해 보존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뉴스를 얼마 전에 본 적이 있는데 없어지기엔 너무 아쉬운 동네라고 생각합니다. 방법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해양대의 매력을 빼놓고 얘기하긴 섭해 하나 꼽아봅니다. 역시나 마음만 먹으면 수평선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이 있겠지요. 산이 많은 한국에선 수평선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선 강의 들으러 가면서도, 술 마시고 기숙사로 들어오는 길에도 수평선을 볼 수 있어요. 아주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특히나 늦은 밤 종합 연구관 뒤쪽으로 빠져 하늘을 올려다보면 도시에선 잘 볼 수 없는 별들을 볼 수 있어요. 저는 오리온 자리를 올해 처음 봤답니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서. 생활감이 잔뜩 베어 있는 골목은 제각각 개성이 강하고 따사로운 햇살 아래 널브러진 길고양이들은 사랑스러워요. 투박한 사투리 속 베어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정겹고요. 날 좋은 때에 맞추어 부산을 가면 바다에 메밀꽃처럼 하얗게 피어있는 파도를 볼 수 있어요. 해운대 바다 따로, 송정 바다 따로, 영도 바다 따로, 각자 다르게 예쁜데 그래도 그중 제일은 영도 바다라고 생각합니다. 아치 해변 길 따라 걸으면 그게 그렇게 반짝거릴 수 없는데, 사심이 좀 담긴 선택처럼 들릴까요?

 

돌아가신 할머니가 해주셨던 말씀이 기억나요. 내가 네 나이 때 살았던 부산이랑은 참 많이 다르다고. 할아버지가 할머니와 왔던 송정 해수욕장엔 케이블카가 없었고, 우리 고모 놀던 해운대엔 해리단길이 없었고, 할머니 일하던 서면 근처의 공장도 이젠 모두 없어졌지만. 지나간 것들의 자리를 채울 것들이 새롭게 생겨나는 동안 우리 할머니의 스무 살과 제 스무 살 모두 부산에서 지나갔네요.

 

세 세대가 거쳐갈 동안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변해온 부산을 아껴요. 서울과는 다른 느낌의 치열함, 서울과는 다른 느낌을 낭만을 품고 있어요. 앞으로 이 도시에서 제가 또 어떤 일은 겪게 될진 모르겠지만 다만 부산에서의 기억들이 제 이십 대의 하이라이트가 되어주리란 것은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있습니다.

 

섬에서 대학 생활을 한다는 건 양날의 검 같아요. 바다를 내다보며 늘 더 크고 먼 세상이 있다는 걸 상기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는 한편 생각의 틀을 섬 안에 가둬버리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자기 하기 나름이라지만 환경의 영향을 무시할 순 없잖아요. 저는 다행히도 전자였다고 생각해요. 수평선의 풍경을 바라보며 아름답다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늘 저 너머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려봐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여러모로 벅찬 세상 속에서도 젊음은 그 자체만으로 특권처럼 여겨지잖아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워지는 특권을 누구보다 알차게 써봐야겠다, 끊임없이 부딫히고 깨져봐야겠다 다짐합니다. 기숙사 창문에서 바다를 보며 그런 생각들을 했어요.

 

제가 바다라는 곳을 더 나아갈 수 없는 끝자락이 아닌 새로운 곳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통로처럼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산이라는 곳을 이십 대의 하이라이트가 되어줄 기억의 훌륭한 배경으로 삼은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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