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학부 정연서

 

스커틀을 닫으면 밤인지 낮인지도 알 수 없는 CADET NO.8에서

항해 당직을 위해, 온 세상이 보이는 브릿지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

또 다른 세상을 알려 줄 빛나는 물결이 혼자만의 방에 있던 나를 반긴다.

 

한국해양대학교 해사대학 3학년 학생들은 1년간 각자의 실습선에서 바다와 함께 생활하는 기간을 가진다. 나는 현재 한바다호에 실습항해사로 승선 중이다.

내륙 중의 내륙 청주에서 나고 자라, 바다라 함은 여름에 놀러 가는 휴양지에 불과했지만

이제 바다는 청주 모아나, 내 삶의 터전이 되었다.

 

이렇게 큰 바다를 누비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세상을 보고 도전하고 경험하여 나의 바다를 채웠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새로운 세상을 보는 브릿지는 지나가다 한 번씩 보게 되는 아버지가 틀어 놓으신 TV,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난 흥미로운 책, 몇 해 더 먼저 태어난 오빠들의 이야기, 언제나 곁에서 나를 지켜주는 고마운 지인들의 이야기이다.

 

이 브릿지에서 본 세상을 향해 나아가면서 오늘도 나의 바다를 채운다.

 

- 현재 진행형 성장, 나의 바다

아버지가 틀어 놓으신 TV가 브릿지가 되어 항해사라는 세상을 보게 되었다.

빅 캐리어라는 다큐프로그램 속 운하를 통과하는 거대한 선박을 조종하는 모습에 반해

일단 그 새로운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먼저 바다와 친해지고 싶어 수영, 스쿠버 다이빙, 동력수상레져, 라이프가드에 도전했다.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며 하루를 보냈고

깊은 바닷속 거북이부터 부표 위 갈매기까지 함께했다.

소중한 순간을 하나, 둘씩 모아 지금은 자유롭게 바다를 즐길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본격적으로 좀 더 항해사와 가까운 세상에 다가갔다.

고마운 지인의 소식이 브릿지가 되어 국제해양포럼에 서포터즈로 참가했다.

세계 해운의 동향,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중요성을 현장에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다시 이곳에 전문가로 돌아오자 하는 목표를 세워 한국해양대학교에 진학하여 항만과 화물관리를 전공하고 있다.

오늘까지도 나의 바다를 채우며, 매일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항해사로 성장 중이다.

 

- 도서관에서 만나 일상으로 스며든 나무 바다

최근에 도서관에 들러 이끌리듯 책 한 권을 집었다.

우종영 나무 의사의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나무의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나의 바다에 담았다.

길을 오가며 보이는 책 속에 나무들, 나무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힘을 얻고,

이 힘과 이야기를 주변에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학교 도서관 앞에는 아주 아름다운 먼나무 길이 있다.

먼나무? 먼나무! 책 속에 소개된 나무의 이름이다.

이름도 재미있고 겉모습도 멋지지만 살아가는 모습이 나에게 큰 울림을 주는 나무이다.

 

사실 먼나무의 꽃은, 봄에 피는 화려한 향연의 다른 꽃들과 달리 단아한 모습이다.

그러나 다른 꽃들이 모두 지고 추운 한겨울이 되었을 때 붉고 둥근 열매로 모든 이목을 집중시킨다. 소복이 쌓인 흰 눈을 배경으로 초록 잎 사이에 얼굴을 내미는 먼나무의 열매는 자신감이 넘친다.

 

봄날에 다른 나무들 사이에서 자칫 기죽어 보일 수 있지만,

자신만의 반전 매력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먼나무

이제는 도서관 앞을 지날 때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먼나무의 삶의 모습 덕분에 나도 덩달아 자신감이 생긴다.

 

• 나아가는 길, 먼저 찍힌 발자국

큰오빠는 어렸을 적부터 본인이 새로 알게 된 것을 알려주곤 했다.

하지만 일곱 해 늦게 태어난 나에겐 시시하고 재미없는 것들이었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나에게 피타고라스 정리를 말해 주거나

고등학생이 된 나에게 대학교 총학생회 생활 이야기를 해주었다.

 

당시에는 이걸 왜 나에게... 하는 생각이었지만

지금 와서 보니 또래들보다 먼저 세상을 알 수 있게 해 준 브릿지였다.

 

최근 오빠가 보여준 발자국은 재테크, 분산투자에 대한 것이다.

아직 고정 수입도 없고 시드머니도 작지만,

조금씩 준비해보라며 본인이 보던 책과 영상들을 추천해줬다.

나는 그런 거 안 한다며 오빠 앞에서는 매몰차게 거절했지만

하나씩 공부해보며 지금은 내 자산이 처음 시작의 1.5배가 되었다.

이제 나는 ‘오빠 고마워! 내가 치킨 살게’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곰곰이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나의 첫 브릿지는 오빠들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청춘, 대학 생활은

마음껏 새로운 세상을 즐기는 기회의 시기라 생각한다.

물리적 공간은 바다에 동동 떠 있는 내 방 CADET NO. 8이지만

파란 브릿지를 통해 마음껏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나의 바다를 채워 한층 더 멋진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다.

 

나의 성장원동력은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나의 브릿지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하는 곳

나의 바다는 경험의 인생 백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