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30년 … 아직 끝이 아닙니다"
"광주 30년 … 아직 끝이 아닙니다"
  • 편집부
  • 승인 2009.05.1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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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30년 … 아직 끝이 아닙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올해로 30년이 된다. 그러나 광주의 피를 먹고 자라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바늘처럼 살아남은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5.18 당시를 생생하게 재연한 영화 〈화려한 휴가〉. 극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신애(이요원 분)가 30년이 지난 현재 주인공들에게 보내는 가상편지를 통해 5.18의 현재적 의미를 조명해본다. (엮은이 밝힘)






  또다시 5월이 왔습니다.
 아버지, 민우씨, 그리고 진우야… 그 곳은 편안한가요?
 당신들을 떠나보낸 지도 올해로 벌써 30년… 저 역시 그 날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너무나 평온했던 우리의 일상이 권력에 눈이 먼 전두환 세력에 의해 처참히 찢겨진 이후, 저는 한 날 한 시도 그 날의 기억 속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 이웃들을 잔인하게 짓밟아 죽인 그들이 너무나 증오스러워,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그 날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말과 증언을 하며 살아온 일평생입니다. 정의로운 당신들을 `폭도'로 기억하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권력의 무력진압은 그날 이후 사람들을 침묵하게 했고, 한동안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의 외로운 싸움만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전 미처 알지 못했던 그 날의 진실들을 하나 둘 알게 되었습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전국의 시민들을 탄압한 신군부 세력의 잔인무도함 뒤에는 미국의 묵시적 동의가 있었다는 것을요. 미국 항공모함이 5일 후 부산항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기뻐하자 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미국이 우리를 도우려고 했으면 진작에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라고요.
 5월 도청은 결과적으로 함락되었으나,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것, 부당한 억압과 차별에 저항하는 것이 민주주의고, 그런 우리의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자가 누구인지를요. 광주와 부산에서 미문화원이 불타고, "5.18진상규명, 책임자 처벌"과 "양키고 홈"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총칼로 억압할수록 시민들은 거대한 물결을 이뤄 거리로 거리로 나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끌려가기를 반복했지만 역사는 결국 `정의'의 손을 들어주었어요. 시민들은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했고, 그날의 진상을 규명하는 `광주청문회'가 열려 그동안 왜곡, 은폐되었던 진실이 마침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5월 18일은 이제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어 당신들을 민주 열사로 모시고, 광주는 전 세계인들이 따라 배우는 민주화 운동의 성지, 인권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민우씨… 이게 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30년 전 악몽을 방불케 하는 일들이 최근 다시 일어나고 있어서 너무 안타깝고, 분노스럽습니다.
 MB정권이 들어서면서 그의 입맛에 맞는 언론보도만을 하도록 노골적으로 통제하고 압박하는가 하면, `강부자' 내각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친기업 정책들만 추진하니 서민들의 삶은 점차 최악의 궁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그들은 평화로운 촛불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죄가 있다면 단지 열심히 산 것뿐인 용산 철거민들의 목숨을 죽여 놓고도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은커녕 사과 한마디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때 그 사람들과 너무나 똑 닮아있습니다! 시민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놓은 민주주의는 30년 전으로 후퇴해버리고 말았어요!

 진우야, 나도 지난 여름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어. 그 때의 너와 같은 고등학생 친구들이 많이 나왔더구나. 2008년의 광장은 총성과 피비린내 대신 평화의 촛불과 토론이 넘쳤고, 사람들은 흡사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하고, 즐기려는 축제의 장에 나온 것 같았다. 이 마당에 인봉 아저씨, 용대 아저씨가 있었다면 걸판지게 놀아도 보고, 구성진 욕지거리도 꽤나 재미있었을 텐데….

 아버지, 민우씨 그리고 진우야!
 벌써 30년이 지났지만, 전 아직 끝이라고 말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날을 아직도 폭도들의 소행이라고 믿는 전두환과 그 일당들의 권력이 살아있고, 국민의 이익보다 가진 자들과 권력에 아부하며 서민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반민중적인 정권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싸움은 결코 끝날 수도, 끝내서도 안 되는 거예요. 당신들의 넋을 제대로 추모한다는 것은 그날을 기억하며 우리의 오늘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또다시 되풀이된다는 것을 믿으니까요.
 다시는 당신들 같은 시대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우리는 살아서 끝까지 외칠겁니다.
 아버지, 민우씨 그리고 진우야!
 저의 새로운 친구이자 희망인 촛불들과 함께 곧 찾아뵐게요. 촛불을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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