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인되고 우리가 하나되는 세상
내가 주인되고 우리가 하나되는 세상
  • 박수지 기자
  • 승인 2010.05.10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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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네트워크〉의 슬로건은 `내가 주인되고, 우리가 하나되는 세상'이다. 변경택 대표는 망설임없이 `내가 주인되고, 우리가 하나되는 세상'을 추구해온 〈열린 네트워크〉의 세월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 사법연수생, 서울대 사회복지 박사 등의 젊은이들이 모인 `목신의 오후' 라는 클럽이 있었다. 젊은 패기의 그들은 사회약자를 돕기로 결의를 했고, 누가 가장 약자일까를 생각하다가 중증장애자를 떠올렸다. 그들이 다짐을 했던 1999년 당시 한국엔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하 장차법)이라는 것은 없었다.
 

"저에겐 가족도 있고, 국문학 연구소도 있고, 장애인 복지신문도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팽개치고 법안을 만드는 활동을 한다는 것은 저에게는 모험이었죠. 무엇보다 저를 고민하게 한것은 법안 자체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동안의 보여주기식 법안, 장애인의 목소리를 하나도 담지못하는 무미건조한 문구에 대한 회의로 그들의 제안을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변경택 대표는 두 가지 약속을 지킨다면 대표직을 맡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나는 `운동'으로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의 법안들이 입법기관의 머리에서만 나오는 위로부터의 법안이었다면 이제는 400만 장애우의 소리를 담고 가자는 것이었죠. 아래로부터의 법을 만들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끝까지 함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운동이 비록 다음 세대의 과업이 된다 하더라도 우리만큼은 끝까지 해보자는 거였죠"
 

드디어 2000년 7월 `장차법'제정을 위한 국토순례가 시작되었다. 대학생 16명과 장애인9명은 연 3회씩 매번 꼬박 한달을 서울에서 부산까지 행군했다. 편하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굳이 그렇게 힘든 방법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장차법이 필요하다, 알아달라는 취지에서 한 국토순례였습니다. 그렇게 눈에 띄게 하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으니까요"
 

이후 변경택 대표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 전국구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회원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드디어 서울에 가서 전국의 장애인단체를 한곳에 모아 〈법제정추진연대〉를 만들었다. 추진연대 회원들과 전국의 뜻있는 법조인들이 모여 2년동안 100여회의 지방토론회를 개최해 모든 장애인의 소리를 다 듣기 위해 노력했다. 소리가 모이자 투쟁이 시작되었다.
 

인고의 시간이 흐르고 2007년 4월 11일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에관한법률'은 국회를 통과했다. 그리고 2008년 4월 11일 드디어 `장차법'이 시행되었다.
 변경택 대표는 이 법안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목소리를 들어야하고 개정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장차법의 시행이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면 하나는 지방에서 서울을 움직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소수약자 인권 법이라는 것입니다"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라는것은 궁극적으로 없어져야 할 법이다. 더 이상 장애인의 권리구제를 위해 따로 법안을 제정해야 할 일이 없다면 그 사회야 말로 우리가 하나되는 세상일 것이라는 변 대표는 끝으로 대학생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진실된 가치를 찾길 바랍니다"
 평생을 가치를 찾아 살아온 그는 백만불짜리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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