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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
2021. 02. 09 by 이은진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통한 이성의 결합, 그리고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족 형태를 정상가정으로 생각한다. 오래 사귄 커플을 보면 언젠가 그들이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당장 연인이 없더라도 미래의 어느 시점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것이라고 막연한 짐작을 하고 있는 식이다. 생애주기 곡선을 그리면서 서른 살 근처에 결혼을 그려 넣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미혼 인구의 가치관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늘어났고, 선택의 영역으로 두고 있는 사람이 많다.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미혼인구의 결혼 관련 태도보고서에 따르면 미혼인구(20~44)를 대상으로 결혼의 필요성에 대해 질문한 결과, 미혼 남성은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견이 14.1%, ‘하는 편이 좋다’ 36.4%,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39.2%, ‘하지 않는 게 낫다’ 6.6%로 나타났다. 미혼 여성은 반드시 해야 한다’ 6.0%, ‘하는 편이 좋다’ 22.8%,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 54.9%, ‘하지 않는 게 낫다’ 14.3%의 응답 분포를 보였다.

또한 2018년 미혼여성 1324명과 미혼남성 1140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에서 여성은 25.6%, 남성은 18.0%현재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응답했다. 2015년 시행된 같은 조사와 비교할 때, 결혼 계획이 없는 미혼자가 각각 여성은 11.7%포인트, 남성은 8.1%포인트 늘어난 수치이다.

두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첫째로 미혼인구의 결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흐려지고 있다는 점, 둘째로 미혼 남성에 비해 미혼 여성이 결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 크다는 점이다. 청년들은 왜 결혼을 원하지 않을까? 필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밝힌 세 명의 20대 여성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세 사람은 미혼(未婚) 상태의 비혼주의자(非婚主義者)들이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의미의 미혼에서 더 나아가, 결혼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 입장을 가진 비혼이다. 혼자인 삶을 강조하는 독신(獨身)과도 차이가 있다. 따라서 모든 비혼인(非婚人)이 애인 또는 섹스파트너를 두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혼인제도에 종속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독자의 편의를 위하여, 의미에 맞게끔 대화의 일부가 각색되었다.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다.

 

-결혼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특별히 있는가?

이춘배(이하 춘배):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라고 물은 건, 언젠가 당연히 결혼할 거라는 전제로 묻는 거지? 하지만 난 결혼을 하고 싶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사실 결혼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라는 말 자체가 이상하고 어색해. 태어날 때도 혼자였고 죽을 때도 혼자일 텐데, 결혼만큼은 인생의 당연한 과정이라고? 정말 그럴까.

곽두팔(이하 두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 인륜지대사. (웃음)

춘배: , 맞아. 익숙한 말이지만 정작 나는 생각해본 적 없는걸.

두팔: 그것뿐이야?

춘배: 아니. 일단 결혼하면 커리어가 망가질 것도 걱정이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 삶의 방향이 다른 사람한테 영향을 받는 게 싫어서야. 지금까지는 부모님이 키워 주셨고 금전적인 부분 지원해 주셔서 어쩔 수 없이 휘둘리기도 했지만……. 독립한 성인이 되고 나서도 간섭받기는 싫다! 이게 제일 큰 것 같은데? 고려할 게 많다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포기할 게 많다는 뜻이잖아. 지나고서 후회하기 싫어.

김영철(이하 영철):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내가 없었다면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던 것 같아.

두팔: 엄마, 아빠처럼 살고 싶어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잘 없을걸. 나만 그래?

영철: 우리 집은 다들 사이좋게 지내긴 하는데, 그거랑 상관없이 난 애초부터 결혼에 환상이 없었어.

춘배: 영철이도 결혼 생각 자체를 안 해봤어?

영철: 아니, 그건 아니고. 나이 많이 먹고 결혼 안 하면 쓴소리 듣는 것도 많이 봐서 역시 결혼이 필수일까?’ 싶기는 했어. 근데 이제는 내 미래를 스스로 책임질 나이잖아? 주변인 말에 휩쓸려서 그런 결정을 하는 건 주체성 없게 느껴졌어. 나는 스스로 번 돈으로 나를 책임지는 선택을 하면서 살고 싶어. 결혼은 방해가 될 것 같아서.

두팔: 결혼해서 전업주부가 되면 확실히 경제생활을 배우자에게 통제받고 의존할 수밖에 없겠다.

춘배: 두팔이 너는 왜 결혼 안 하려고?

두팔: 나는 레즈비언이라서 혼인신고를 못 해.

춘배: 상황이 바뀌어서, 동성혼이 법제화된다면? 그때는 결혼할 생각 있어?

두팔: …… 아니? (웃음) 난 영원한 사랑은 없는 것 같아.

영철: 네 여자친구는?

두팔: 정말 많이 좋아하지만, 그냥 최대한 오래 보고 싶은 거야. 만약에 지금 애인이랑 결혼했는데 사랑이 식어버리면? 이혼 많이 하잖아. 황혼이혼도 많고, 졸혼이라는 말도 있고. 법적인 구속의 의미만 있다뿐이지, 죽을 때까지 사랑해서 하는 결혼이라는 말이 나는 거짓말 같아.

 

비혼을 말하는 이들은 본인이 결혼하지 않을 이유로 자유로운 생활을 원해서’, ‘가사노동과 육아로 커리어에 지장이 생기는 게 싫어서’, ‘영원한 사랑을 믿지 않아서’, ‘동성결혼이 불가능해서등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춘배: 일단 두팔이가 말한 것처럼 법적인 구속?

두팔: 증명 가능한 관계라서 불안이 덜한 점? 배우자 인생에 관여할 자격이 생기는 것 같아서 뿌듯한 기분도 들 것 같아.

춘배: 그리고 신혼부부는 대출도 잘해주잖아. 전세자금 대출이나, 그런 거. 확실히 경제적인 부분에서 이득이다. 제도로 보장해주니까.

두팔: 돈 때문에 결혼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아. 혼자 버는 것보다 둘이 버는 게 낫잖아. 한 사람이 일을 관둬도 다른 사람이 일하면 되고, 그게 안정적이니까.

영철: 그것도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오지랖 넓어서 결혼 안 하면 주변에서 간섭도 많이 받잖아. 결혼 안 한다고 말해도 그런 애들이 제일 먼저 시집가더라,” 하면서 안 믿는 경우가 훨씬 많아.

두팔: 역시 결혼이 평범한 선택이라서 그런 걸까?

영철: 내 생각엔…… 남들이 어떻게 살든, 내가 결혼한다면 다 잘 풀리고 행복한 결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두팔: 결혼한다는 사람 면전에서 결혼하면 나쁜 일만 잔뜩일 거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보는 드라마, 영화, 소설. 매체에서 얼마나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어?

춘배: 따지고 보면 그게 마냥 나쁜 선택도 아닐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다면, 따라했을 때 못해도 중간은 갈 거라는 확신이 서잖아. 그러니까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 연애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고, 아니면 선이라도 보고 결혼하는 거지. 지극히 평범한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모방하는 게 아닐까.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선택하는 이유로는 대부분 사람이 하는 평범한 선택이라서’, ‘주변의 간섭이 심해서’,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어서’, ‘매체에서 보여 주는 긍정적인 모습을 기대하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이들은 비혼으로 살기 위해 금전적인 여유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결혼이 특히 여성에게 나쁘다고 생각하는가?

영철: 일단 나는 여자가 결혼을 하게 되면, 돈을 많이 벌지 못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진다고 봐.

두팔: 육아휴직 때문에?

영철: 결혼과 동시에 일 관두는 경우 많이 봤어.

춘배: 맞아. 우리 올케 언니도 결혼하면서 바로 직장 관두셨어.

두팔: 우리 회사 선배도 결혼하신다고 나가셨어.

영철: 게다가 가사노동이나 육아 분담이 불공평한 경우가 많잖아. 결혼하고 계속 직장에 다니다가도 임신, 출산하게 되면 공무원이나 대기업, 공기업쯤 다니지 않는 이상은 관두게 되는 환경이고.

춘배: 그래서 여자들이 더 교사나 공무원 같이 안정적인 일자리에 목매는 경향도 있지 싶어. 아이 키우면서도 일할 수 있으니까.

영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가사노동에 육아노동을 독박 쓰다시피 하니까 일을 관둘 수밖에 없게 되는 거야. 그렇지만 애는 혼자 키워?

두팔: 아이 키우면서도 일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게 아니고, 아이 신경 쓰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

 

-비혼의 미래는 어떨 것이라고 예상하는가?

두팔: 어차피 곧 결혼 못 하는 사람 많아질걸? 90년대생들 성비 안 맞잖아.

영철: 맞아. 1990년 백말띠 여아낙태 얼마나 했냐!

두팔: 그래서 혼자 사는 남자들 확 늘지 않겠어? 그러니까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도 나오겠지. 나와야지!

춘배: 글쎄,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저출생·고령화 사회라고 정부에서 엄청나게 압박하지 않을까? 지금도 대부분 주거정책은 다인가구 위주지, 1인가구를 위한 정책이 따로 있나? 외국에서 싱글세 걷듯, 우리나라도 미혼세 걷어 가면……. 그렇다고 내가 결혼을 할 건 아니야!

영철: 결혼할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을 할 테고, 안 할 사람은 절대 안 할 거라고 생각해. 기업에서는 1인 가구를 타깃으로 한 아이템들 많이 내놓을 것 같은데? 아침상 차려주는 서비스는 지금도 있잖아.

두팔: 어쨌거나 비혼이 특이한 선택으로 남으면 안 돼.

영철. 춘배: 공감.

 

-인생 계획이 있나? 혹은 남기고 싶은 말이라도.

춘배: 나 절대 결혼 안 하고 살면서, 내가 언젠가 결혼할 거라고 말한 사람들한테 계속 보여줄 거야. 봐라, 나 이렇게 재밌게 산다고.

두팔: 돈 좀 벌다가 목돈 생기면 사업할 거야! 조금 불안한 길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선택한 일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그래서 요즘 주식이랑 펀드 공부하고 있어. 지금까지 롤모델로 삼을 비혼인이 거의 없었으니까, 내가 롤모델이 될래.

영철: 곽 사장님이네~. 나도 경제력이 진짜 중요한 것 같아. 혼자 사는 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꾸준한 노력을 바탕으로 자기 가치관을 실천해 나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러고 싶으면 금전은 필수지! 두팔이처럼 재테크 방법 찾아보면서 준비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최근에 자유적금이랑 비상금 통장 만들었어.

춘배: 나는 돈 모으기보단 당장은 쓸 일이 많아.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야. 공부 계속하고, 가르치면서 살고 싶어. 그리고 이 인터뷰에 대해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 왔고 또 만날 테지만,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는 사람이 아니잖아. 가족조차도. 지금까지 비혼에 대해서 질문했는데, 오히려 결혼의 의미를 묻고 싶어. 내 삶의 방향키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온전히 나만을 위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느냐고.

 

비혼주의자들은 공통적으로 비혼이 특이한 선택이 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결혼을 통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살아가지만, 결혼은 누구에게도 강제되지 않으며 삶의 과정에서 선택지 중 하나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결혼을 해야 온전한 사람이 된다는 잣대를 통해 결혼하지 않는 사람을 어딘가 하자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곤 한다. ‘명절 잔소리 메뉴판에서 결혼 재촉은 삼십만 원부터 시작한다는 자조적 농담이 있을 정도이다.

한편 1인가구는 계속해서 늘어난다는 전망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33년에는 45세까지 결혼하지 않은 남성이 23.8%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1인 가구 또는 혼인제도 밖의 가정은 법의 보호에서 멀고, 그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도 미비한 편이다. 정부의 주거정책은 신혼부부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1인가구가 활용하기에 애로사항이 많다. 주택청약조차 저축총액이 많은 사람이 우선 선정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1인가구보다 소득이 많은 신혼부부나 다인가구가 훨씬 많이 당첨된다.

노인인구를 부양하는 등 사회보장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활동인구의 납세가 전제이다. 경제활동인구는 만15세 이상의 사람을 뜻하는데, 우리나라는 법률로써 퇴직정년을 정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출생률이 최하위인 우리나라가 현재와 같은 수준의 복지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청년인구의 1인당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 문제를 출생인구의 증가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자녀가 있는 부부에게 경제적인 혜택을 주고 지원 정책을 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미래사회의 저출생 문제를 풀 수 없다.

젊은 세대는 이미 결혼과 출산을 선택의 영역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결혼과 그 이후의 삶을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때 누릴 수 있는 다른 가치와 동일선상에 두고 저울질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결혼이 가져올 불안, 위험을 최소화하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여성의 경력단절 등 결혼이 가져오는 치명적인 현실은 방치하면서 혜택만을 강조하는 현행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혼 인구를 소외시키면서까지 마련한 신혼부부 정책이 결혼의 현실적인 단점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러한 혜택을 외면하고서라도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은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결혼이 불행만을 향해 달려가는 선택이 아니듯, 비혼 역시 한때의 치기어린 반항이 아니다. “어려서 뭘 모른다며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하는 간섭은 오지랖이고, 무례한 발언일 뿐이다. 각자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결정이든 그에 따르는 장단점이 있고, 모든 사람은 제각기 다른 결과를 책임질 것이다. 비혼인들의 혼자살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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