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선배] 직장보다는 직업을 선택하라!
[기자가 만난 선배] 직장보다는 직업을 선택하라!
  • 최지수 기자
  • 승인 2011.06.2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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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법인 나래’공인 노무사 이현중 동문

 

 

▲ 노무법인나래 공인 노무사 이현중 동문

 

이번 ‘기자가 만난 선배’에서는 노무법인 나래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인 노무사 이현중 동문(법학부∙95)을 만났다. 동래구 수안동에 위치한 노무법인 나래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이현중 동문은 고객과 면담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임금을 받지 못했던 노동자가 이 동문을 통해 임금을 받게 된 상황 이었다.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고객은 이 동문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며 돌아갔다. 의뢰인과의 면담을 마친 후 이 동문은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사건이 잘 해결되었기 때문인지 이동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렇듯 그의 직업은 노동자와 회사의 관계를 조정하는 ‘공인 노무사’이다. 공인 노무사는 주로 회사의 급여 관리, 4대 보험 업무와해고, 산재, 임금문제와 같은 노동자 쪽의 사건을 해결하는 일을 한다. 주로 급여 관리나 4대 보험은 사측 입장에서, 사건은 근로자 입장에서 일을 처리하게 된다. 이현중 동문의 회사인 노무법인 나래에서는 4대 보험 같은 정기업무는 직원들이 처리하고 사건을 주로 노무사가 처리하는 시스템이다. 이 동문은 “이런 일을 하면서 사건이 잘 해결되었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 동문은 어떻게‘노무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노무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이 동문의 대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시춘 교수님의 수업을 수강했던 이 동문은 교수님에게 노동법 수업을 추천받았다. 교수님으로부터‘일단 해 보면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은 그는 다음 학기에 노동법을 수강 신청했고, 그렇게 점점 노동법에 흥미를 느꼈다. 이 동문은 “노동법은 특히 학문적으로 재미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타 학문에 비해 현실적으로 와 닿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이것을 계기로 이 동문은 노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후 2년간 학교생활과 병행하면서 공부를 시작했고 졸업논문을 남겨둔 채로 휴학을 해 서울 신림동 고시촌으로 갔다. 혼자 공부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신림동에서는 학원을 다니며 그룹 스터디를 했다. 스터디에서 멤버들이 과목별 예상문제를 뽑아 오면 각자 동일한 문제에 대한 답안을 작성한 뒤 서로 확인하는 절차를 반복했다. 이를 통해 글의 진술방향을 통일하기도 하고 생각지 못했던 점이 있으면 첨가하기도 했다. 보통 잘 되는 스터디는 멤버 모두가 합격하는 경우가 많은 데 이 동문이 속해있던 2개의 스터디 그룹 모두 합격률이 100%였다. 이 동문은 이 비결을 “노무사 시험의 경우 글의 내용보다 정해진 단어나 쟁점, 논점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채점기준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속해있던 스터디 그룹이 이를 잘 했기 때문”이라고 파악했다. 사실 이 동문의 합격비결은 스터디 그룹 때문만은 아니다. 이 동문은 신림동에서 생활한 6개월 동안 “10년치 공부를 이때에 다 한 것같다”고 말할 정도로 일주일 중 놀기로 정해 놓은 하루를 빼놓고는 오로지 ‘공부만’했다. 이런 노력 끝에 이 동문은 졸업 전에 공인 노무사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다.

이렇게 노력했던 이야기를 듣자 문득 이 동문의 대학생활이 궁금해졌다. ‘고시반에서 학교와 집을 오가며 열심히 공부만 하지 않았을까?’하는 기자의 예상과는 달리 이 동문은 “수업을 그다지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고 답했다. 또한 “특히 1학년 초기에는 적응을 잘 하지 못해 밖에서 많이 놀았다”는 말을 하며 웃어보였다. 대학시절 이 동문은 과 학생회 활동을 했었고 그때는 체육대회 때 3회 연속 우승을 하면 주는 영구기를 받기 위해 온통 관심을 쏟았다고 한다. 또 MT를 갔을 때 7군데서 동시다발적으로 싸움이 나는 바람에 싸움을 말린다고 고생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며 대학시절을 회상했다.

이 동문은 노무사 자격증을 따자마자 바로 개업을 했다. 이 동문이 처음 노무사 사무실을 개업할 때만 해도 보통 노무사는 40세 이상이었다. 노조나 사회단체, 일반 회사를 다니다 노무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대학교 때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동문은 당시 거의 최연소 수준의 합격자였다. 그렇다보니 회사의 사장을 자주 만나는 노무사의 특성상 20대였던 그는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어려움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노무사 비율의 90%가 서울에 있고 부산에는 거의 없어 노무사에 대한 인지도가 너무나도 낮았다. 주위에 노무사에 대한 설명을 하고 다니는 데만 2년 정도가 걸렸다. 이 동문은 이때 다른 조직에서 일해보지 않고 바로 개업을 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꼈다고 한다. 사회경험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겨우겨우 첫 수입 50만원을 올렸다. 그는 “이때 너무 기쁜 나머지 술값으로만 100만원을 썼다”며 감격의 순간을 떠올렸다.

실제로 일을 해 보니 노무사 실무는 학문과 다른 점이 많았다. 주로 민원을 처리하는 업무라 양쪽 입장을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책에서는 정확한 답이 나오는 것과 달리 실제에서는 어려움이 많았다. 예로 산재로 근로자가 식물인간이 된 경우 산재승인을 잘 해줄 것 같지만 10건에 7~8건은 승인을 받지 못한다. 유족들은 산재승인이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럴 때 이 동문은 유족들에게 불승인 통보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다. 또한 근로자가 1000만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 3개월만 기다리면 충분히 받을 수 있음에도 100만원만 받고 합의한다거나 해고를 당한 경우 소송을 하면 이길 가능성이 80%이상인데도 취하하는 경우에 정말 안타깝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더더욱 그렇다. 과거와 달리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노동법이 전면적으로 적용되는 분위기 이지만 노동법의 적용을 받았을 때 다시 출국해야 하는 등의 문제가 있어 불이익이 있어도 요구를 하지 않는다. 이럴 때 그는 법의 개편을 바라고 있기만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없는지 물었다. 이 동문은“재학 중에 막연히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적성에 맞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준비와 계획을 철저히 하길 바란다”며 “지금은 직장보다는 직업을 중시하는 추세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직장에 들어갈지 보다 어떤 일을 할지를 먼저 생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이렇게 직업에 대한 생각을 먼저 하면 취업 이후에도 자신의 경력을 전문화 시킬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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