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선배] 자기만의 색깔로 세상을 살아가라
[기자가 만난 선배] 자기만의 색깔로 세상을 살아가라
  • 박지선 기자
  • 승인 2012.05.30 2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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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 컨테이너 전문회사를 운영 중인 이통일 동문(해운경영학과·85)의 이름 뒤에는 다양한 직함이 존재한다. 그는 우리대학 산업대학원산하 항만물류원우회 현 사무국장, 항만물류 CEO과정 연합 누리등산회 수석총무, 해양아이디어클럽의 회원 등 해운과 관련된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기자가 만난 선배’에서는 변화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이통일 동문을 만나 보았다.

 

▲ 이통일(해운경영.85)동문

 

흔치않아 더욱 친숙한 그 이름 이. 통. 일

이. 통. 일. 흔치않은 이름이다. 독특한 이름 때문에 살아오면서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이름을 가진 이동문은 여느 모임이 있을 때마다 참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독특한 이름 덕에 득을 보는 경우도 제법 많았다. 이름과 관련해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이동문은 “인간관계를 맺기에 유리하죠.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도 독특한 이름 때문에 쉽게 저를 기억해줬어요”라며 “그 덕에 친근하게 다가가 쉽게 분위기를 주도해 나갈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간절한 꿈이 맺어준 해양대와의 인연

진주에서 자란 이동문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대학진학을 꿈꾸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이동문은 “대학진학의 꿈이 있었기에 등록금 없이도 대학을 다닐 수 있는 길을 찾고자했어요” “국비로 운영되는 세무대학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서를 들고 찾아갔죠. 그런데 지원가능 나이제한으로 지원서조차 낼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실제 이동문은 66년생이지만 호적상에는 68년생으로 등록되어 있다. 당시 원서지원 가능한 나이가 68년 2월 28일생으로 3월 31일생인 이동문은 그대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대학에 가는 길이 너무도 어렵게 느껴져 이대로 포기할까 망설이기도 했다는 이동문은 “대학만은 꼭 가보고 싶었어요. 더 이상 대학을 생각해 볼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죠”라고 말하며 그때를 회상했다. 간절한 그의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때마침 모집기간이 남아있는 대학 중 우리대학을 알게 되어 인연을 맺게 됐다. 마침내 대학진학의 꿈을 이룬 이동문은 “국립대인지라 경제적인 형편을 고려해 한번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입학한 뒤엔 열심히해서 장학생이 되리라 다짐 했죠”라고 말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대학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동문은 지금의 어려운 현실보단 나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열심히 해서 자수성가하여 평소 꿈꿔왔던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인생은 파노라마, IMF의 산을 넘다

이동문은 대학졸업과 동시에 1993년 부산컴퓨터기술자문사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시스템, 광학기기, PC, 주변기기, A/S를 공급하고 처리하는 하드웨어중심의 영업을 시작했다. 하드웨어분야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성장하자 1996년 중반 동문 공대출신의 몇몇 선후배들이 합류한 (주)태극정보컨설팅으로 법인전환을 했다. 이때부터 이동문은 선박관리 해운S/W 개발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행복한 나날도 잠시 희망의 불빛만 쫓아가던 이동문에게 IMF라는 커다란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근 2년가량 해운 S/W 개발비로 막대한 돈이 들어갔지만 결과도 못보고 IMF가 터져 모두 접어야만 했어요”라며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직원 10여명을 모두 내보내고 수억대의 빚이 생겼죠”라고 말했다. 이동문에게 1998년은 인생의 그 어떤 순간보다 힘든 시기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동문은 다행히 남아있던 몇몇 직원들과 하드웨어분야에 더욱 몰두하였다. 희망의 끝을 놓지 않고 묵묵히 헤쳐나갔다. 보이지 않던 긴 터널의 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4~5년 만에 빚을 거의 다 갚을 수 있었다. IMF의 산을 무사히 넘긴 이동문은 그때를 회상하며 “처음 회사를 설립한 뒤 집중적으로 영업 및 관리했던 공공기관들이 생명줄이자 큰 힘이였죠”라며 “지금와서 생각하니 항상 처음에 가진 사고와 행동, 노력이 나중에 큰 빛을 발하더라구요”고 말했다.

 

 

▲ 현재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는 컨테이너 야적장

 

컨테이너 전문회사 경영인으로 재도약하다

“빚만 모두 청산하자라는 생각으로 몇 년을 정신없이 뛰다보니 건강이 나빠졌어요. 다시 S/W를 개발하기엔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꿈을 접어야만 했죠. 다소 아쉽기는 했지만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미련은 없었어요”

2003년부터 운영해오던 회사를 2005년도에 다른 회사에 넘겨준 이동문은 선배의 도움을 받아 컨테이너 매매와 이와 관련된 컨설팅업무를 새로 시작했다. 2007년에는 본격적으로 독립하여 개인회사를 운영하게 됐다. 현재 이동문이 CEO로 활동 중인 로이드 컨테이너 전문회사는 신 컨테이너 제작 및 컨설팅, 컨테이너 수리 및 재생, DP컨테이너 매매 및 포워딩업체 지속공급, 특수컨테이너 개조 및 제작 등을 하고 있다. 현재 업무에 관해 이동문은 “아시아 오지로 나가는 포워딩 회사일수록 중고 컨테이너가 많이 필요해요”라며 “주로 10~15년 정도 사용된 컨테이너를 사고파는 일을 하고 있죠”라고 설명했다.

열정적으로 살았던 젊은 시절에 비해 최근 들어 추진력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는 이동문. 하지만 기자의 눈에는 여전히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용기와 열정으로 넘쳐나 그를 보는 사람마저 에너지가 샘솟는 것만 같았다. 불안한 20대를 보내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이동문은 “진정 하고 싶은 일에 미쳐보라”며 “뭔가 찾기 전에는 늘 불안함 속에서 살게 된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자기가 원하고 즐거운 것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책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 좋다. 공부라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책을 펼쳐 볼 수도 있다”며 “그러나 꿈을 찾는 일에 머뭇거리다 늦어지면 방황하는 시기가 길어지게 되는데 이는 결코 돌이킬 수 없다. 부디 자기만의 색깔로 세상을 살아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박지선 기자

xhwllov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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