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12 :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응답하라 2012 :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 허민학 기자
  • 승인 2012.11.19 2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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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의 ‘19금’ 프로그램 중 <SNL 코리아 >가 있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성’과 ‘정 치’라는 두 가지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 며 동시대 최고의 오락프로그램으로 거듭 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제작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닌가 싶다. 물론 프 로그램 포맷은 해외 방송을 차용한 것이 지만, 그 내용만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 나고 있는 ‘팩트(fact)’를 기반으로 제작되 고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중 <여의도 텔레토 비>라는 코너가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이 하 방통위)의 심의(검열)을 받게 되었다 고 한다. 여기 등장하는 텔레토비들이 현 직 대통령 MB와 유력한 대선주자 3인방 (또, 문제니, 안쳤어)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 특정후보를 연상시키는 텔 레토비가 욕설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새 누리당의 한 국회의원이 방통위에 제재를 요청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갖는 전체 적인 맥락에서 그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 는 것임에도 그것을 진지하게만 바라보고 접근하는 한국정치의 슬픈 현주소가 드러 나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한 달 여 앞으로 다 가온 지금, 유력 후보 3인방의 이야기는 언론의 관심사가 되어 일거수일투족이 그 들의 입맛에 따라 보도되거나 보도되지 않는다. 개인별로 간단히 살펴보자면, 박 근혜는 여당 후보로 확정된 상태이기 때 문에 대통령 선거 후보자의 신분은 안정 적이다. 그에 반해 문재인과 안철수는 후 보라고 불리우고 있지만, 향후 단일화과정 을 거친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서, 누가 마지막 후보가 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 는 상태이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박근혜 는 긴장감이 떨어지고, 문재인이나 안철수 는 여전히 유동적이고 불안하다. 한 마디 로 안정감이 떨어진다.

아버지의 그늘, 박근혜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의 그늘에 있 다. 그에게 아버지는 보호막이자 족쇄이 다. 그렇다보니 자신이 정작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아버지 혹 은 그 시대에 대한 그의 발언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는 아버지를 존경하는 듯하 다. 문제는 그가 정말 아버지의 통치철학 이나 세계관에 동의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는 알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그는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 해 대통령 혹은 독재자라는 공인으로서 의 평가와 아버지라는 가족으로서의 평가 에 있어서 구분을 하지 못한다. 그 둘 사 이의 구분만 잘 했더라도 정치인으로서 박 근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 다. 그가 말을 아끼는 이유, TV 토론에 나 서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기 스스 로 확신이 없는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토론 은 불가능하다. 만약 그 상태에서 토론을 한다면 남는 것은 ‘멘붕’밖에 없다. 그래서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개그 콘서트의 ‘브라우니’를 끌고나오게 되는 것 이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참모들의 전략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박근혜가 내세운 중요한 전략은 ‘여성대 통령’이다. 그렇다보니 성공한 여성기업인 을 영입하고, 여대를 방문해서 여대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 여성들과의 친밀 감을 높이는 행보를 한다. 이에 대해 비판 은 가혹하다. 지금까지 정치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여성성’을 전혀 내세우지 않던 사 람이 갑자기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강조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연속선상에서 나오는 것이라기보다 는 일시적이고 돌출적인 것이라 할 수 있 다. 그가 노동운동의 상징이라 할 수 있 는 전태일 열사의 동상이 있는 청계천을 방문한다거나,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하 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것도 바 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제 정치인이 자 대통령 후보로서 박근혜의 가장 중요 한 일은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 다. 아버지 박정희나 주변 참모들이나 어 버이연합과 같은 보수단체가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사회와 국가가 어떤 것인지 를 알아내는 것이다.

노무현의 아바타, 문재인

문재인은 ‘노무현의 아바타’라는 의 심을 받는다. 그는 나서는 것을 좋아하 지 않는다. 조용히 다른 사람을 보좌하 는 역할에 잘 어울린다. 수면 위로 나와 서 대중들과 직접 대면하는 것에 익숙하 지 않다. 그의 목소리는 힘이 있지만 남 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톤은 아니다. 그 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것 은 자신이 본래 갖고 있는 의지를 넘어 서는 것이다. 그것은 ‘죽은 자’에 대한 일 종의 책임감과 ‘산 자’들의 요청에서 비롯 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에게 주어 진 길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렇더라도 대중들은 그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보여주는 솔직함과 순 수함은 조금씩 대중들에게 죽은 자에 대 한 미안함과 책임감을 갖고 떠밀려 나오 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겠다 는 의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대중들은 그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기성 정치인과 비교되는 순수함, 약 간은 소심하고 어눌한 말투, 그리고 이를 넘어서려는 특전사 이미지 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한번쯤 돌아보게 만든다. 그 시선 을 지속적으로 붙잡아두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필요한 모습이다. 그의 강점은 제 1야당의 조직력과 노무현에 대한 정서적 유대감을 가진 대중들이다. 하지만 그 부 분은 그의 약점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느끼 기 때문이다. 이제 단일화라는 복잡하고 험난한 산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가 정치 인이자 지도자로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다.

대중적 욕망의 산물, 안철수

안철수는 의사이자 기업인, 교수이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쉽사리 찾아보기 힘 든 삶의 이력을 갖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길에서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유명해 질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 는 자신이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끌리 는 삶을 찾아 살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 혹은 자본주의 의 변화과정에서 안철수는 새로운 대안으 로 떠오르고 있다. 자본주의적 욕망과 새 로운 정치 문화에 대한 갈증이 동시에 결 속하면서 ‘안철수’라는 인물을 정치라는 새로운 장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를 불 러온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이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시대가 만들어낸 인 물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이 말은 그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의지와 가치관이 사람 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니라, 시대적 결핍과 필요에 의해 불려나온 것이기 때 문이다. 그래서 안철수는 한국사회에 대 해 자신의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그는 이 미 존재하는 그림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치겠다는 선언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기대감 때문에 ‘호명’된 것 이다. 아직까지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 을 만큼의 연습 과정이 없었다. 그럴 만한 시간과 경험도 갖지 못했다. 대중적 욕망 의 산물로 탄생한 안철수라는 이미지를 넘어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탈바꿈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사석에서 만난 사람들은 묻는다.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아?” 하지만, 누가 될 지 어느 누가 알겠는가. 아무도 모른다.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자리잡고 있다. ‘누가 될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대통 령이라는 주체가 자리잡고 있을 뿐, 정작 그 대통령을 선택하는 시민 대중이 빠져 있다. 물론 사람들이 그 질문을 던질 때 는 일반 대중들의 여론을 묻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질문은 잘못되었다. 우리는 질문을 바꿔서 던져야 한다. “나 는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혹은 “당신은 누구를 지지하는가?” 이 질문은 곧 ‘내가 원하는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지, 나아가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을 발견하고 찾아 내고 만들어가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정치는 대상화되고 추상화 된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에 직접 맞닿아 효과를 드러내는 영역으 로 다가올 것이다.

권경우(문화평론가/nomad7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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