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일 살을 에는 매서운 칼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고 최강서(36)씨가 세상을 떠난 지 49일째 되던 날. 그를 추모하기 위해 50여명 사람들이 촛불을 켜고 매서운 바람 앞에 섰다.
보수언론에서는 그들의 시위를 시신투쟁, 관팔이 투쟁이라며 미친노조라고 비아냥거렸다. 시위 때문에 교통체증을 겪어야 했던 영도시민들조차 ‘이제 좀 적당히 해라’라며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그들이 바라는 건 그리 크지 않다. ‘지금껏 몸바쳐 일했던 곳에서 모른 척 하지 말아 달라’
작년 11월 노사간 극적합의 끝에 정리해고자 92명은 재취업했으나 출근한지 이틀만에 무기한 휴업발령을 받았다. 또한 사측은 여전히 그들에게 158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고인이 된 최강서씨는 세상에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두고 떠나고 말았다. 젊은 나이에 목숨을 끊은 그는 유서에 ‘자본 아니 가진자들의 횡포에 졌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이라며 한 맺힌 말을 남겼다.
글/ 사진 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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