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을 추억하며
‘‘살인의 추억’을 추억하며
  • 해양대신문사
  • 승인 2013.09.0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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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에 개봉한 설국열차로 다시 미디어의 수면에 오른 봉준호감독을 보고 있자니 그의 대표작 ‘살인의 추억’이 떠올랐다. 내가 가장 많이 보고, 가장 인상 깊게 봤던 ‘살인의 추억’은 그렇게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살인의 추억’은 1986년부터 1991년 까지 실제로 벌어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다. 내용은 단순한데, 두 형사가 범인을 잡으려고 수사를 벌이지만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한 채 수사가 종결 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한 스토리 속에서도 내가 느낀 것들은 참으로 다채로웠다.

 먼저, 제목부터가 ‘살인’의 부정적 느낌과 ‘추억’의 긍정적 느낌이 만나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데 이는 영화 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 오프닝 장면은 시골 내음이 물씬 풍기는 누런 논밭과 그곳에서 뛰노는 아이들 아래 싸늘히 식은 여성의 시신을 보여준다. 제목을 이어 이 장면도 비슷한 이질감을 준다. 또한 이와 닮은 느낌을 주는 장면들 중 하나가 시골형사인 박두만(송강호 역)이 서울 형사인 서태윤(김상경 역)을 향해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라고 외치면서 드롭킥을 날리며 오해 속에서 첫 대면하는 장면이다. 대사며 액션이며 상황까지 영화 전체에 퍼져있던 음산한 분위기를 역전시키며 큰 웃음을 준다.

 영화의 진행은 자신을 무당눈깔이라 칭하며, 직감에 의존하는박두만과 자료를 기반으로 두는 서태윤의 수사로 이루어진다. 서태윤의 등장 후 박두만은 신경질적 모습을 많이 보이는데, 직감적 수사가 자료 기반의 수사에 비해 그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끈질긴 수사에도 살인 사건이 잇달아 일어남에 따라 영화 중반부터는 두 형사의 태도가 뒤바뀐다. 박두만은 직감적 수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뼈저리 느끼고 차분함을 보여주는 반면 서태윤은 여전히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을 두고 치를 떨며 이성을 잃어 간다. 이러한 태도는 박현규(박해일 역)라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나타나며 더욱 심화된다. 그러던 중 성폭행 후 살해당한 시체에서 범인의 정액이 발견되고, 이것이 박현규 것이라는 것만 밝혀낸다면 물증이 되는 상황이다. 허나 당시 우리나라에선 기술이 부족해서 미국에 DNA 비교를 의뢰한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또 한 번의 살인이 일어난다. 서태윤은 이성을 완전히 잃은 체 물증 없는 상황에서 폭력으로 박현규를 몰아세우지만 박두만이 DNA가 불일치하다고 통보를 한다. 감정이 최고조가 되는 시점에 무당눈깔 박두만이 박현규를 한참 보고 입을 연다. “X발 모르겠다.. 밥은 먹고 다니냐?” 그만큼 그 때 박현규의 표정은 정말 미스터리한데 악의적인 범인의 얼굴과 무고한 사람의 얼굴이 모두 보이는 듯하다. 결국 두 형사는 박현규를 체포하지 못하고 처절함을 남긴 체 영화는 2003년으로 흐른다. 형사일을 그만둔 박두만은 고향을 지나가던 중 첫 번째 시신을 발견했던 논두렁 하수구를 한참 들여다 보다 한 소녀에게 이야기를 듣는다. 얼마 전에도 누가 그곳을 들여다보고는 예전에 했던 일이 생각나서 와봤다고 한다. 그냥 평범하다는 대답이돌아오고 격분한 표정의 박두만 얼굴이 정면으로 클로즈업 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평범하게 생긴 범인이 다시 범행 현장에 돌아왔었고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정말 소름 돋는 장면이다. 혹은 마지막 장면이 평범하게 생긴 송강호를 보여주는 것을 보면 실제 범인이 아닌 상징적 범인. 즉 해석을 확장해 ‘공권력’으로 볼 수도 있다. 박두만이 형사시절 무고한 시민을 강압하고 자신이 다시 범행장소에 오는 것, 그리고 소녀를 만났을 때 뭔가 들킨 듯 흠칫하는 모습으로 또 다른 관점에선 그를 상징적 범인으로 볼만하다.

범인을 잡지 못해 안타까운 두 형사의 심정에 공감하기 이전에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면 영화에서 보이는 것들이 사뭇 달라진다. 형사들이 범인을 잡는 과정에 무고한 시민들이 공권력 희생되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것은 죄 없는 사람을 고문하고 거짓 진술을 강요시킨다. 영화는 형사들의 노력과 좌절을 비추지만 역사는 살인사건 뿐 아니라 이러한 형사들에게 희생당한 이들의 고통을 담고 있다. 마치 선진국을 향해가는 8~90년대 우리나라의 그림자랄까. 권위적 행동은 범인을 잡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그 수단이 시대가 가진 사회적, 과학적 한계들과 부딪쳐 목적을 놓치게 된다. 이를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양상이 만들어지며 결국 어느 한 편에 서기가 어려워진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각각 해석을 어떻게 하던지 간에 해석은 다양하게 나올 것이고 굳이 해석의 美를 빼더라도 영화는 긴장감 있는 흐름, 배우들의 연기, 음악, 색채미등의 일차적인 느낌만으로 관객을 몰입시킬 것이다. 한국에서 나름 유명한 영화라지만 의외로 안본사람이 많은 것 같던데 그런 사람들에게 당장 추천한다. 봉감독이 스스로 명명한 ‘농촌스릴러’ 살인의 추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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