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이의 여행에 대한 탐미,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읽고’
‘한 젊은이의 여행에 대한 탐미,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읽고’
  • 김동원 유럽학과 객원교수
  • 승인 2013.09.0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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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유럽학과 객원교수
학창 시절 우린 늘 방학을 기다렸다. 집과 학교를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땐 그랬다.
해외여행, 배낭여행 같은 것은 없었지만 무전여행, 자전거 여행, 기차여행이라 해서 아무런 계획도 돈도 없이 그저 그렇게 떠나고 싶었다. 세상은 변했고 그에 따라 사람도 변했던가? 요즘 대학생들은 방학인데도 학교를 벗어날 수 없고 집을 떠날 수 없다. 취업준비니 스팩쌓기니 ‘알바’니 하면서 떠나기보다는 더욱 더 머물고자 한다. 여행을 오히려 사치와 현실괴리로 생각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떠남은 결코 현실 도피가 아니다. 돌아옴을 전제하지 않는 떠남이야말로 도피이지 않는가. 떠남을 통한 돌아옴은 발전과 성숙을 뜻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학창시절 여행에 나섰던 진짜 이유였다.


여기 여행으로 참된 지식추구와 자기발전을 이룬 한 여행가를 소개한다.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 븐 압둘라 븐 무함마드 이브라힘 알 라와티,’ 우리가 흔히 이븐 바투타(1302-1368)라고 하는 이 사람. 모로코 탕헤르 출신인 무슬림 청년 이븐 바투타는 1325년 메카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그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의 3대륙 10만 km 를 두루 편력했다. 29년 뒤 고향으로 돌아와서 이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여행기는 이 대장정을 두 권에 걸쳐 설명하고 있는데, 1권은 북아프리카-서아시아-중앙아시아로, 2권은 인도와 중국으로 이어지는 바닷길 여정과 북아프리카-스페인-모로코로 이어지는 귀국여정을 다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븐 바투타는 당시 세계문명의 중심이었던 이슬람 세계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이슬람의 다양성과 신비로움을 체험하였다. 그는 온갖 인생역전을 겪고는 학자에서 장사꾼, 신비주의자, 무슬림 전사 그리고 법관으로 변모한다. 광기스런 폭군을 만나기도 했고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어 열 명의 부인과 많은 애첩을 두기도 했다.
그래서 이 여행기는 한 개인의 일대기이면서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한 무슬림 지식인이 남긴 문명교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일은 곧 그 세상의 참된 이치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여행은 그런 지식추구의 최고의 장이다. “지식을 추구하라! 그로 인해 먼 중국 땅에 이를지라도”라는 말은 이슬람에서 여행과 지식추구가 어떤 관계로 얽혀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니 여행은 이슬람을 실천하는 중요한 행위이자 그것을 이해하는 필수적인 소재인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여행이라 하면 늘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만 떠올렸다. 그래서 동시대 거의 비슷한 여행기를 남긴 마르코 폴로에 비하면 아직도 우리에게 이븐 바투타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낯선 이방인 여행가다. 그런 점에서 여행기는 한글 독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아랍어 원전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이 낯설기만한 한국에서 이 방대한 저작을 우리말로 읽을 수 있으니 어쩌면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두 여행가로 상징되는 서구와 이슬람 두 문명권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을 갖게 될 것이다.


방대한 내용 및 낯선 지명과 인명, 그리고 다소 생경스런 이슬람에 대한 설명 때문에 책을 읽어내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온갖 고난 속에서도 이를 견뎌내며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이븐 바투타의 삶을 끈기있게 따라가다 보면 달고도 쓴 인생의 참맛을 음미해 볼 수도 있다. 세계화, 국제화, 지구촌 운운 하며 떠들어 대지만 정작 우리 사회는 경쟁이라는 핑계로 젊은이들의 발목을 잡으며 머물기를 강요한다. 그래서 넓은 세상과 나와 다른 세계를포용할 수 있는 ‘당찬’ 대학생보다 그저 자기 삶에 안주하며 머물기만 고집하는 ‘나약한’ 대학생만 키우고 있지 않는지? 해양인이여, 조도 너머 저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떠나라! 이븐 바투타가 그대의 좋은 길벗이 되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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