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기성회비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끊임없는 기성회비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 윤종건 취재기자
  • 승인 2013.10.11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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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를 시작하며 국제대학 12학번 K군은 등록금 고지서를 출력했다. 총 등록금 164만 2천원 중 기성회비는 127만 2천원. 역시나 이번 학기에도 등록금의 대부분은 기성회비다. 언론에 이따금씩 들리기로는 법적으로 기성회비를 안내도 된다고 하던데, 매 학기 기성회비를 낼 때마다 아까워 죽겠다.

현행 교육법상으로는 기성회비 징수에 대한 법적근거는 전혀 없다. 한국전쟁 이후 당시 교육에 대한 지원이 열악해지자 학생과 학부모는 대학의 기초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기성회비를 납부했다. 그런데 2013년 현재까지도 국공립대 내에서는 기성회비가 의무적으로 걷어지고 있는 상황이며, 기성회비상승률 또한 물가상승률을 웃도는 수치를 보여 왔다.

논란의 중심, 기성회비

작년 초 서울대와 부산대를 포함한 전국 8개 국공립대학 학생단체는 불법 징수된 기성회비의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또한 작년 5월에는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을 중심으로 전국 국공립대 학생단체들은 2차 기성회비 반환 소송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이 두 소송에 대해 법원은 “기성회비 징수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힘입어 전국의 많은 대학들 사이에는 기성회비 반환에 대한 여론이 붉어진 상황이다. 올해 8월에는 방송통신대학이 기성회비 반환 소송을 냈다. 이때도 역시 법원은 기성회비를 반환하라고 판시했다. 9월부터는 서울대와 충북대가 기성회비 반환소송을 진행 중에 있다. 서울대는 기성회비 전액반환을 위해 소송인단 ‘스누캐시백’을 결성하는 등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법적으로 징수된 기성회비 납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소송을 통해서라도 기성회비를 돌려받으려는 것은 학생들 입장에서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현재 국공립대 재정상황을 감안할 때, 대학 측에 기성회비 반환을 요구하기도 난감한 상황이다. 우리대학 재정과에서 제공한 ‘각 회계별 예산규모’에 따르면 기성회가 전체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5%에 달한다. 재정과 이기붕 팀장은 “지금 현재 대학 재정상황에서 기성회비가 없다면 너무 어렵다”며 “만약 우리대학 내 기성회비를 반환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바로 파산이다”라고 강조했다.

기성회비의 ‘공무원 급여보조성수당’ 금지

기성회비 반환 소송에서 법원이 학생들의 손을 들어주는 가운데 최근 교육부에서는 새로운 방침을 내 놓았다. 올해 9월부터 기성회비에서 지급되는 공무원 수당을 폐지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국립대에 근무하는 공무원 직원들은 사립대 교직원과의 보수격차 완화 등을 근거로 학생들이 낸 기성회비에서 급여성 수당을 관행적으로 받아왔다. 하지만 교육부는 “기성회비의 급여보조성경비가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가중시키고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이유를 들어 이번조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현재 대학본부 앞에서는 공무원들이 생존권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우리대학 공무원직장협의회장 정충권씨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다”라며 “오랜 기간 동안 해양대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일했는데, 열심히 일한 공무원들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생존권을 빼앗는 가혹한 처사다”라고 말했다.

재정회계법, 기성회비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까?

논란이 계속되는 현재 상황에서 최근 교육부가 추진하려는 법안이 바로 ‘재정회계법’이다. 법안에 따르면 국립대 재정 운영의 효율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해 일반회계(국고)와 기성회계로 분리되어 있는 현재의 재정구조를 ‘교비회계’로 통합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기성회비’라는 말은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결국 지금 현재는 기성회비 징수의 법적 근거가 전혀 없으니, 기성회비라는 말은 없애고 학생들에게 같은 금액을 받을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대학 교수회 회장 한병호 교수는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 입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절감효과는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이 법안의 또 다른 핵심은 ‘국가지원’과 ‘재정위원회’다. 현재는 대학의 필요한 예산을 국가가 항목별로 지원하는 방식이지만, 재정회계 법안에 따르면 국가가 필요한 경비를 총액으로 출연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모아진 예산은 국립대학 내 ‘재정위원회’에서 심의․의결 해야 한다. 재정에 대한 모든 권한을 ‘재정위원회’가 갖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국유재산법에 의해 국립대학의 수익사업이 금지되어 있지만, 이 법이 통과된다면 수익사업을 통한 자체 재정확보가 가능해진다.

내용

현행 회계제도

국립대학 재정․회계법

회계성격

국고 : 일반회계

기성회 : 비국고회계

대학자체 독립회계 (교비회계)

수수료 수입

전액 국고로 귀속

교비회계사용 가능

자체 재정확보

자체 재정확보 수단이 거의 없음

수익사업 전개 가능

재산활용

국유재산법에 의해 제약됨

재산소유권 확보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음

예산편성 및 결산권

국고 : 국회

기성회계 : 기성회이사회

재정위원회

예산집행잔액

국고 : 국가반납

기성회비 : 이월사용

전부를 이월사용가능

발전기금

지역교육청이 관리 감독

대학 자체적으로 관리감독

 

재정회계법에 대한 교육부의 속내는?

작년 전국 국립대학이 교육부의 압박에 못 이겨 총장직선제를 폐지하고 대부분 간선제와 공모제로 전환한 바 있다. 대학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몇몇 대학(경북대, 목포대, 부산대, 전남대)은 ‘총장직선제 폐지’를 마지막까지 거부했으나, 이들 대학은 ‘교육역량강화사업’ 선정에서 제외되는 등 교육부의 거센 압박이 이어졌다. 결국 이들 또한 ‘울며 겨자먹기’로 폐지할 수밖에 없었다.

한 교수는 지난 ‘총장직선제 폐지’에 이은 이번 ‘재정 회계법’에 대한 교육부의 궁극적인 목적을 “법인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교육부에서 몇 년 전부터 국립대학에 대한 법인화를 추진하려고 했지만, 대학들의 반발이 너무 심해지자 쪼개기 식으로 법인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립대학 법인화

법인화란 대학에 자율성을 부여하고 교육의 공급자로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공급자인 대학은 수요자인 학생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서비스의 질을 높여야 하고 자율성이 부여된 대학은 등록금을 높일 우려가 있다. 또한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좀 더 육성할 수 있는데, 이에 따라 수요가 별로 없는 소수 전공과목들이 폐지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 시장논리로 학문보다는 상업이익에 맞춘 교육기관의 상업화라며 강하게 비판한다.

 

재정회계법은 왜 법인화라는 의심을 피할 수 없을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재정회계법에 따르면 국립대학은 사립대학처럼 이월금도 남기고, 적립금도 쌓으며, 수익사업도 가능하다. 이는 정부의 예산 지원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정부의 예산 지원이 충분한데, 굳이 국가기관인 국립대학이 나서서 수익사업을 하고 외부에서 차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법안의 주요 핵심 중 하나인 ‘재정위원회’의 설치만 봐도 사립대와 법인국립대의 이사회와 유사해 보인다. 한교수는 “아직까지 통과된 법안은 아니기 때문에 교육부에서 재정위원회에 관한 구체적인 시행령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말로는 대학의 자율성을 제고한다고 하지만 재정위원회에서의 교육부 통제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한편 기성회비의 공무원 급여보조성수당을 금지한다는 교육부의 정책은 많은 언론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학생들의 등록금을 일 년에 10만원정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재정회계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계획이 숨어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재정회계법만 통과되면 ‘기성회비’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지게 되고, 결국 기성회비에서 공무원 수당을 주지 않겠다는 정책자체가 의미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기성회비가 만들어 질 때 당시 정부는 “나라상황이 좋아지면 바로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내 놓았다. 하지만 정부 재정상황이 한국전쟁 이후에 비한다면 매우 좋아진 현재시점에도 국공립대학 기성회비는 계속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교수는 “기성회비라는 제도를 언제까지 유지해 갈 수도 없는 문제이며 언젠가는 끊어야 하는 게 맞다”며 “이런 식으로 자꾸 문제가 발생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성회비 징수가 불법이라면 학생들로부터 그만 받고 그만큼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교육부가 추진하는 재정회계법이 진정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국립대 법인화를 위한 교육부의 계획에 불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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