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이처를 꿈꾸는 외항선 타던 마도로스
슈바이처를 꿈꾸는 외항선 타던 마도로스
  • 문대성 기자
  • 승인 2014.06.15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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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대 출신 의사 전호열 동문(기관과 33기)

▲ 진료 중인 전호열 동문
술과 담배를 좋아하던 마도로스 삶에서 동네 주치의가 된 전호열 동문은 오늘도 지하철로 출퇴근을 한다. 차가 아닌 지하철을 이용하는 이유는 30분의 여유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생들의 삶을 보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전 동문은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었다. "때론 단순한 생각이 중요하다", "책 한권이 인생의 길을 바꿨다"

말을 타고 칼을 찬 사나이
전 동문은 학창시절 악동기질을 가지고 힘도 센 놀기 좋아하던 학생이다. 초등학교 4학년 미술시간이었다. 미술준비물을 챙겨가지 않은 그는 미술 선생님께 손바닥을 맞았다. 손바닥을 맞고 유난히 자신만 아프게 맞았다고 생각한 그는 "친구들아, 그림 그리면 수업 끝나고 나한테 혼난다"며 반 협박으로 그림을 못 그리게 한다. 미술선생님은 친구들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하는 상황에서 친구들은 그의 눈치를 봤다. 결국 선생님은 그의 어머니께 호출했다. 골목대장 같았던 그는 대학교 진로를 선택할 때도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는 "바다가 좋고, 제복이 멋있어 해양대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대학생이 된 그는 검도와 승마를 배우며 호탕한 기질을 얻고자 했다. 말을 타며 칼을 휘두르는 것을 상상하며 대학생활을 보냈다. 

책 한권에 바뀐 인생
전 동문은 졸업 후 외항선을 2년 탔다. 그는 "배를 타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며 "항구에 도착하면 술도 마시고 놀 수 있기에 천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함께 항해하던 유능한 선장님이 오랜 기간 배를 타며 가정에서 소외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술과 노는 것을 좋아하던 그였기에 배를 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도 가정에서 이방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생각뿐이었다. 2년차 배에 승선 할 때 형이 책 한권을 건네줬다. 그 책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이 길을'이라는 고시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그는 "책 내용 중 '인생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연극'과 같다는 문구를 보고 배를 타는 직업만 경험하고 죽을 수 있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항해를 하면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 전 동문은 "처음 생각한 것은 사법고시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80년대 군부시절 공무원이 된다면 소신대로 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고심 끝에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의사의 길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 결심을 지키기 위해 그는 3일 만에 사표를 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은 전 동문이 월급도 많이 받고 재밌게 하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만두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20대 젊은 나이이기에 도전하고 싶었다"며 "운명이라는 단어 아래 생각을 단순화하고 망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의사의 꿈을 이룬 마도로스
올해 18년 째 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전 동문은 동네에서 모두 아는 동네 주치의가 됐다. 그는 "어렸을 때 포경수술해 준 학생이 어른이 되어 진료를 받으러 온다"며 웃음을 지었다. 또한 그는 환자들에게 잔소리 많이 하는 의사로 유명하다. 전 동문과 1~2살 차이가 나는 단골 환자가 있다. 단골 환자는 매일 반복되는 전 동문의 담배 끊으라는 잔소리에 자존심이 상해 담배를 끊었다. 전 동문은 "그 단골손님이 왜 이런 잔소리를 자신에게 듣는 게 치사해서 담배를 끊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담배를 끊고 고마웠다는 인사를 받았다"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병원이 성남에 위치한 동네 의원이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찾아온다"며 "그들의 건강을 챙겨 주는 일이 너무 즐겁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항상 웃는 얼굴로 환자를 대하고 간호사들을 대한다. 오랜 시간의 진료에 피로한 표정이 아닌 항상 즐거운 표정으로 병원에 해피 바이러스를 옮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신나서 더 열심히 하게 된다"며 "그럼 성공을 쫓아가지 않아도 성공한 자리에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해외의료봉사가 마지막 꿈인 '슈바이처가 된 마도로스'
그의 마지막 꿈은 아내와 해외의료봉사를 다니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팔, 캄보디아에 해외의료봉사를 다녀왔다. 이 중 2008년 필리핀에 의료봉사를 간 첫날은 잊을 수 없다. 필리핀 봉사마을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잠을 자는데 목에 총구가 느껴졌다. 무장 강도 5명이 침입했다. 그 당시 그는 "목에 총구가 있을 때 느낌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비해 미리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돈만 주고 다친 사람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봉사를 하지 않고 한국으로 귀국할지 회의를 했다. 결론은 의료봉사를 마친 후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는 "폭탄이 한 번 떨어진 자리에는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며 "필리핀 경찰들에게 보호요청을 한 뒤 의료봉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귀국 후 함께 참가한 봉사자가 의료봉사수기에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무장 강도들을 비유했다"며 웃으며 말했다.  

33년 만에 '마음의 고향' 해양대 방문 그리고 후배들에게 말하다
전 동문은 의사가 된 지금도 젊은 청춘을 보낸 해양대를 마음속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그는 "대학시절 함께 검도를 배우며 얻은 평생지기 친구도 있고, 기관과 박한일 동기는 해양대 총장이 되어 있다"며 해양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는 지난 5월 황금연휴에 33년만에 마음의 고향인 해양대를 찾았다. 전 동문은 "가족들을 데리고 33년 만에 부산에 내려와 처음 찾은 곳이 해양대이다"며 "한바다호, 기숙사, 자갈마당을 돌아보며 옛 추억에 가슴이 뛰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달려 나가고 있는 후배들에게 그는 "100세 시대인 지금 3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도전하라"며 "이것저것 너무 따지지 말고 자기 신념을 가지고 도전하면 50대에 그 위치에 있을 것이다"며 응원에 메시지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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