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삶의 모델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너
네 삶의 모델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너
  • 이윤성 기자
  • 승인 2015.06.09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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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그 무엇’을 잇다, ‘프로젝트 바람’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게 오늘날 청년들의 현실이다. 오죽하면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리 청년들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대출뿐이다”는 말이 나올까. 연애, 결혼, 출산 ‘삼포’에 대인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다는 오포세대가 어느덧 청년을 상징하는 말이 된 지금, 우리들에게 취업을 위한 학점과 스펙 밖의 일들은 모두 사치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반기를 든 ‘마이너’들이 있다. 멀쩡히 다니던 학교를 뛰쳐나오기도 하고, 낮은 학점과 볼품없는 스펙에 학자금 대출의 무게까지 견뎌야 하는 이들이 스스로 ‘청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점차 저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들, ‘프로젝트 바람’을 소개한다.

 ▲ 어르신들과 장기 대결 중인 청년들

 

▸ 장이야 멍이야~ 나이 차 잊은 한판 대결
 지난 16일, 135번 버스의 종착점인 민주공원에서 색다른 장기 대결이 펼쳐졌다. 청년들이 공원에 계신 ‘은둔의 고수’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가 대국을 신청한 것이다. 처음엔 소극적이던 어르신들은 경기가 진행되자 하나 둘 다가와 관심을 보였고, 이내 "한 수 알려 주겠다"며 자리에 앉았다.
“아 인마 장기 잘 두네”, “그니까네 수는 물러주면 안 된다카이”
 옆에서 훈수를 두던 어르신의 타박에도 송철호(84·영주동 거주)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며 수를 물러주셨다. 청년은 멋쩍은 웃음으로 감사함을 표현하고 이내 대결에 다시 집중해보지만 승부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할아버지는 정중히 인사하는 청년의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치열한 승부 속에서 장기로 시작된 청년과 어르신들의 대화는 나이, 가족관계 등을 거쳐 고민, 인생사 등과 같은 제법 진지한 이야기로까지 이어졌다. 처음 프로그램의 취지를 듣고 흔쾌히 참여한 송철호 할아버지는 “젊은이들과 함께하니 나도 한층 젊어진 느낌이다”며 “실패하던, 성공하던 젊은 시절에 많은 경험을 해보라”고 조언했다. 장기 대국에 이어 민주열사 추모 의식에도 참여한 김수완 (항해학부·15) 학생은 "어르신들과 편히 만날 자리가 많지 않았는데 좋은 경험이었다"며 “부마항쟁을 기념하는 민주공원이여서 더욱 뜻 깊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 청년과 ‘그 무엇’을 잇다
  이 행사를 만든 이들은 청년단체 ‘프로젝트 바람’(이하 바람)이다. 바람은 지난 해 9월 네 명의 친구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비영리 민간단체이다. 그들과의 첫 만남은 인상적이었다. 만나자마자 서로에 대한 ‘디스’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여느 또래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인터뷰에 들어가는 순간, 이들의 눈빛은 진지하게 바뀌었다. 스스로 ‘청년의 바람을 응원하고, 함께 현실로 만드는 곳’이라 설명하는 당당한 모습이 기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대부분 대학을 다니고 있는 학생임에도 매달 청년을 소재로 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장기알과 얼굴들’ 역시 바람의 8번째 프로젝트였다. 바람의 모든 프로젝트는 ‘청년과 청년을 잇다’, ‘청년과 세상을 잇다’, ‘청년과 지금 이 순간을 잇다’ 이렇게 세 가지의 테마 중 하나를 정해 진행된다. 특히 마지막 테마에는 항상 미래만 바라보느라 현재를 놓치고 살아가는 청년을 위한 바람의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다.
 그 간의 활동들을 살펴보면 주옥같은 것들이 참 많다. 2월엔 ‘리어카 포뮬러, 바람터보엔진을 달아라’란 이름으로 대학가에서 폐지와 고물을 줍는 어르신들을 돕는 활동을 했는가 하면, 3월엔 병석에 누워있는 한 소녀의 이름을 걸고 KNN 마라톤에 참가한 ‘바람마라톤 내 심장이 뛰어’를 진행했다. 바람의 대표 우동준(26) 씨는 "사소하고 작은 우리들의 생각들이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가 만들어 진다"며 "청년과 ‘그 무엇’을 이어주는 것이 바람의 역할이다"고 말했다.

 ▲ 4월 프로젝트 ‘요리왕 김자취’에 참가한 청년들

 

▸ 내 삶의 모델은 바로 나
 바람은 매달 ‘2급수 청정찌라시’라 불리는 특이한 잡지를 발행한다. 이 잡지는 그 달의 바람 프로젝트를 소개하거나 문답 형식의 심층 청년인터뷰를 싣기도 한다. 왜 하필 ‘찌라시’라는 표현을 썼는지 묻는 질문에 기획팀장 이광훈(23) 씨는 “딱딱한 소식지 이미지를 탈피해 청년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가고 싶었다”며 “읽고 있으면 마치 바람 구성원과 대화를 하는듯한 착각에 빠질 것이다”고 웃으며 말했다. ‘찌라시’를 읽다보니 한켠에 자리한 청년을 응원하는 시가 인상적이었다. 고민하고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도 하지만, 우리는 젊음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말과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너만이 네 삶의 유일한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격려엔 바람이 청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여느 20대가 그러하듯 바람의 어려움 역시 돈이다. 이 씨는 “당연히 가장 부담스러운 부분은 재정적인 것이다”며 “아직 회식하려면 각자 돈을 모아야 한다”고 웃어 보였다. 바람은 청년 참가자들에게 참가비를 받지 않는다. 그 대신 사회 각층의 후원과 소액주주들의 기부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 대표는 “어려움은 있지만 앞으로도 참가비를 받고 싶진 않다”며 “청년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데 작은 걸림돌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바람의 활동이 담긴 ‘2급수 청정찌라시’ (左)  ▲ ‘청년의 자격은 무엇입니까?’ 피켓 활동 (右)

 

▸ 청년 =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
 바람 구성원들은 스스로를 ‘마이너’라 칭한다. 바람이 처음 생길 때부터 함께 해온 김혜란 (25) 씨는 자신을 ‘학점 2.3, 토익 595,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는 학생’이라 소개했다. 그는 “처음엔 좌절도 많이 했다”며 “바람을 통해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우 대표 역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는 안정적인 이공계, 게다가 국립대를 다니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전공에 대한 회의감에 주변의 만류에도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당시는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암흑 속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 때 그가 했던 고민들은 바람을 탄생시키는데 큰 자양분이 되었다. 그는 주위에 시선과 사회적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람을 통해 당당히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우리는 여전히 고민할 수 있다
 최근 바람에 대한 매스컴의 관심이 점차 늘고 있다. 잘 나가는 이 시점, 바람의 활동은 잠시 쉼표를 찍었다. 김혜란 씨는 “4월, 5월을 거치며 후원도 늘고 외형이 급속도로 커졌다”며 “이럴 때 자칫하면 이걸 왜 했는지 조차 놓칠 것 같아서 한 달만이라도 재정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매달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그들만의 정체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팀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우 대표는 “오히려 지금 바람이 더 멋진 단체로 거듭날 적기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곧 청년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다시 보여줄 것이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바람은 청년 오감만족 파티와 대학생이 아닌 청년들을 위한 MT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 중에 있다.
 얼마든지 고민하고 망설일 수 있기에 그들도 청년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청년들을 무엇과 이어줄 바람의 힘찬 새 출발을 응원한다.

▲ 프로젝트 바람의 모습 

trueys5@kmou.ac.kr
이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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