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대지 위에서 멀리 바다를 향하는 것
불안정한 대지 위에서 멀리 바다를 향하는 것
  • 동아시아학과 김만석 교수
  • 승인 2015.06.1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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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간의 탄생'

 

▲ 『예술인간의 탄생』, 갈무리, 2015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다. 그런데 어디서나 예술과 문화가 뜨고 있다. 예술이나 문화는 대체로 돈이 안 되는 것인데도, 우리 시대에서는 항상 제일선으로 예술과 문화를 내세우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돈 안 되는 것 가운데 가장 안 된다는 풍문이 유포되는 발상지인 ‘인문학’이 짝패를 이루어 온통 ‘인문예술문화’로 활황 중이다. 아니, 그러한 범주들이 활황 중이라면 그것이 돈이  된다는 말일까? 혹 그 세 짝패들을 하게 되면, 제법 사회적 명망도 얻으면서 밥 먹는 데 부족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래, 저렇게 활성화되어 있다면, 내 정보가 잘못 되었을 것이다. ‘인문예술문화’야말로 산업 구조의 전면적인 재편성을 경험한 한국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새로운 산업으로 구축된 것일 터이고, 이 산업만이 앞으로 밥 벌어먹기 위해선 반드시 경유해야 할 영역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여러 대기업에서 입사 시험을 논술로 본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고 식상한 자소서가 질타를 받는 실정이니, 인문예술문화가 강조해마지 않았던 ‘창조성’이나 ‘상상력’이 변화한 산업 구조 아래에서 적극적으로 기업들이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니, 일견 타당해보이기는 한다. 이러한 과정들에서 창조성이나 상상력과 같은 개념들이 기업이나 자본에 의해 각광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이를 지속하고 영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지방대학의 인문학과나 예술문화 관련 학과들은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의 위기 앞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까, 하나의 현실에서는 이 세 짝패를 원하고 있지만, 다른 현실에서는 세 짝패가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조건 자체를 동시간대에 붕괴시키는 중이다. 제도는 없애되 그 가치는 개별적으로 전개하라는 요구 앞에 도착했다고 할까?

 조정환이 날카롭게 분석한 것처럼, 제도의 붕괴와 가치의 개별적 조성은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인간주체인 경제인간의 모형에서 관찰될 수 있는 것이다. 경제인간은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는 ‘기업가 주체성’을 가진 인간 유형이다. 조정환은 이 인간이 등장하기 전에 경작인간, 노동인간, 국가인간이 있었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제인간은 이전의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유형의 인간으로 이해한다. 경작이나 산업노동 그리고 공동체적 규율의 원리에 의해서 수동적인 지배를 당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능동적으로 계발하고 혁신함으로써 존재하는 그런 인간이 바로 경제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조정환은 이러한 규정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혁신하고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생산자이자 창조자로서의 예술인간의 이미지”를 함께 읽어낸다. 그러므로 예술인간은 경제인간과 분리되지 않지만, 경제인간과 동일시되지 않는다.

 사실 이 분리불가능성이 갖는 의미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야 하지만, 그 문제는 별도의 논의의 장이 필요한 것이다. 다만 예술인간이 흔히 이야기하는 예술가와 실질적으로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의 확인이 중요하다. 아니, 오히려 예술가들이 불안정노동자(프레카리아트)와 구분되지 않음으로써 노동과 예술이 서로 겹쳐지는 사정일 것이다. 감정이나 마음과 같은 용어들에 대한 관심 역시 예술이 전통적으로 담당해왔던 것이 사회적 노동으로 점차 이행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물질노동의 증가와 확대도 예술과 노동 사이의 엄격한 경계를 불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다. 일테면 우리의 사랑이나 우정 역시 그저 감정이나 마음이 아니라, (불안정) 노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노동들을 착취당하지 않고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예술인간의 발명이 우리의 ‘삶-생명’을 더 나은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할까? 우선 책과 함께 불안정한 대지 위에서 멀리 바다를 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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