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우뚝, 참혹한 765kV”
“들판에 우뚝, 참혹한 765kV”
  • 김효진 기자
  • 승인 2015.08.31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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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미디어로 동행한 밀양에서의 5일, 송전탑을 바라보며

 

 

_뒷산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큰 765kV의 송전탑이 눈에 계속 보이는 것은 고문이었다. 69개의 송전탑은 마을을 짓이겨 놓고 있었다. 밀양을 찾은 미디어팀에게 뭐 하나 못 줘서, 못 먹여서 안달이었던 정 많은 할매, 할배들이 무엇을 잘못했을까. 주민들은 작년 행정대집행을 떠올리며 분노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송전탑에 찢겨진 가슴을 내보이는 주민들을 만날 때 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예사였다. 밀양은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지만 송전탑은 다시 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마을의 송전탑은 주민들의 생계를 얹은 회색빛의 아주 무거운 근심이었다.

( *밀양 행정대집행_ 2014년6월11일.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를 무시하고 송전탑 건설을 위한 농성장 철거 집행이 이루어 졌으며, 그 후 송전탑은 모두 완공되어 가동 중에 있다.)




빳빳이 고개 든 765kV 송전탑

▲ 마을을 둘러싼 산 위의 송전탑


_밀양 행정대집행 후 1년을 기억하기 위해 미디어 행동가들이 모였다. 밀양역에서 본 밀양은 초록나무와 어우러진 시골 읍내로 생각해왔던 이미지와 다르지 않았다. 집결지였던 너른마당에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 갔을까. 어두운 산 사이 거대한 송전탑이 머리를 빳빳이 쳐들고 있었다. 밀양에 세워진 총 69기의 송전탑 중에서 밀양의 한 허리를 지나고 있는 송전탑은 52기이다. 한 눈에 들어오는 송전탑만 대여섯 기로 아름다웠을 경치 곳곳에 솟아 있었다. 개수뿐 아니라 어마어마한 크기도 놀라기에 충분했다. 밀양에 세워진 69기의 송전탑은 각각 765kV의 전류를 내뿜는다. 이는 흔히 볼 수 있는 송전탑의 18배에 달하는 양이다. 한전에서는 송전탑 주위 1km 반경 내를 보상하고 있지만 한 가구당 최고 800만원으로 한 가구의 생계를 책임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이다. 평생을 농사짓고 산 주민들에게 사실상 그 근처 논밭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공권력이 폭력이냐 

▲ 길에서 마주친 경찰행렬 (박민혁 제공)


_주민들은 송전탑이 차례로 완공된 작년을 지옥이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故유한숙 어르신은 “송전탑이 세워지는 걸 보느니 죽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경찰은 故유한숙 어르신의 죽음을 ‘집안 내의 문제로 인한 음독자살’이라 발표했다. 동화전 마을의 은숙 이모는 “국가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던 시골 할매, 할배들이 이제 나라 말은 하나도 안 믿는다”고 말한다. 옆에서 맞장구치던 할매는 “송전탑 세우는 한전 놈들도 밉지만 옆에서 때리고 능욕하는 경찰이 더 밉다”며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주민들은 본인 밭에 가면서도 송전탑 건설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경찰의 채증을 매번 받아야 했다. 그 것은 흔히 증거 수집을 위해 시행하는 채증이 아니었다. 매일 이 길을 지나다니는 것을 알면서도 부러 신분을 확인하고 컨테이너 앞에 줄 세웠다. 최근에는 검찰청 집행계장이 반대 주민의 DNA 채취를 강요했다. 주민들은 영장도 없고 근거도 없는 협박이라고 말한다. 집행계장이 “지금 웃죠? 영장 받아서 수갑 채울테니 기다려라”고 말하는 녹취를 듣고 놀랄 법도 한데 “저번에는 밤중에 쳐들어와서 자는 사람 막 끄집어 데꼬 갔어예...”라고 더욱이 분노할 뿐이다. 함께 막국수를 먹으면서도 주민들은 ‘그’ 얘기뿐이었다.


▲ 작년 행정대집행 당시 할머니를 진압하는 경찰 (환경운동연합 제공)


 아직 맴도는 그 날의 후유증

▲ 할머니의 약봉지

_밀양시민연대자 이모의 차를 얻어 타 송전탑이 세워진 마을들로 향했다. 도로변을 달리는 차창으로 논밭 한가운데 우뚝 선 송전탑이 보였다. 102번 송전탑. 故이치우 어르신의 논 위에 기어코 완공되었다. 송전탑을 낀 행동반경의 주민은 “농사일을 나가면 ‘따닥따닥’하는 소리가 귀에 들린다”며 “비오는 날엔 더 심하다”고 말했다. 7년 전 아무것도 모르고 밀양에 이사 왔다는 귀영 이모는 “아직도 헬리콥터 소리만 나면 심장이 벌렁벌렁한다”며 작년의 기억을 떠올렸다. 덧붙여 “송전탑 공사 당시 공사를 위한 헬리콥터가 하루에 50번 지나다닐 때도 있었다”며 “송전탑을 세우는 헬리콥터가 버젓이 지나다니는데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작년 행정대집행 때 주민들이 입은 비인간적 폭행과 후유증에 대해서는 보상을 하는 시늉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서울댁 할매는 “한전이 지정해준 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았는데 대충 듣고 약을 처방해주더라”며 “알고 보니 독한 수면제 여러 개였다”고 전했다. 행정대집행 당시 몸에 멍이 들었다면 이제는 마음에 골병이 들었다. 마을주민은 한전과 합의를 본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로 나뉘었다. 마을주민 대부분이 합의를 한 동화전 마을의 은숙 이모는 “긴 싸움에 가장 허무했던 것은 같이 싸우던 이웃들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이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그들을 무작정 원망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글 모르는 할매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합의하거나 긴 싸움에 지쳐, 혹은 지금의 돈도 받을 수 없게 된다는 협박에 합의한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을 분위기는 이미 예전과 같지 않다. 용회마을, 여수마을 등 다른 마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식들 다 내보내고 마을사람들끼리 더불어 사는 재미도 찢어졌다. 이웃이 그리운 할머니들은 정이 든 미디어 팀에게 말했다.

 “또 오너라, 밀양에, 꼭”





 진 게 아니라 웃을 수 있다

▲ 상영제 당일 음식을 나눠먹는 아지매들 (박민혁 제공)


_예정되었던 ‘밀양 행정대집행 1년 기억문화제’가 메르스로 취소되었다. 대신 밀양에 모여 미디어 활동가들이 만든 작품들로 조그만 상영제를 열게 되었다. 한 곳에 모인 주민들의 표정은 사뭇 어둡지 않았다. 떡과 수육을 나눠먹고는 “마을 사람들끼리 모이기 참 어려웠는데, 이렇게 모이니 좋다”고 말했다. 합의한 주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반대 주민들은 이렇게 만나 결의를 다졌다. 영자 어머니는 마이크를 잡고 “진 게 아니잖아요”라며 “그래서 더 당당하게 웃는다”고 말했다. 상영 된 영상 속에는 밀양의 모습이 담겼다. 한 영상 속 송전탑이 CG로 사라질 때는 모든 입에서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밀양 주민들의 이야기를 작사, 작곡한 노래가 공연되고 밀양 주민들의 애창곡이 마을에 울려 퍼졌다. 상영제는 마치 하늘을 향한 레퀴엠 같기도, 밀양 주민들을 위한 응원가 같기도 했다.



 송전탑으로 엿바꿔 먹는 게 오래된 염원

▲ 밀양을 찾은 고려대 학생들의 현수막

_이동하는 내내 차를 태워 준 밀양시민연대자 이모는 소위 말하는 송전탑 마을 주민은 아니다. 이모가 밀양 시민이면서도 농성장을 찾은 것은 작년 행정대집행 때였다. 이모는 “할머니들이 어디서 왔냐고 물을 때 대답하기가 민망했다”며 “근데 밀양에서 왔다고 말하자 할머니들이 나를 붙잡고 우시더라, 내가 밀양시민 첫 연대자였던 거다”고 말했다. 지금 당진, 여수, 제주 강정마을, 삼척 등 전국 곳곳에서 송전탑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그 지역민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주민들의 염원은 제2의 밀양이 생기지 않게 힘을 주는 것이며 송전탑을 뿌리 뽑는 것이라고 말한다.
 밀양 할매들은 작년 행정대집행 때처럼 매일 꼭두새벽, 산에 올라 농성장을 지키는 것을 하기엔 많이 늙었다는 말을 달고 산다. 하지만 ‘동네 아이가 송전탑을 뽑아 엿 바꿔 먹자 했다’는 말을 하면서 얼굴엔 웃음꽃이 피었다.
 “내 이빨은 없지만 서도 저거 바꿔 논 엿은 아주 닳도록 묵을 끼다... 그때까지 싸울라믄 몸이 건강해야제. 저거 뿌리 뽑는 날까지”



 가려진 진실, 이제는 드러나야 할 때

_한전이 고압의 765kV 송전탑을 세우는 것은 우리나라의 전기수급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밀양 주민들은 “겨울에도 전기세 나올까 전기장판 한 번 제대로 못 켜는 어르신들이 전기를 쓰면 얼마나 쓰겠냐”고 말한다. 수도권의 전기자급률이 56.7%인 반면 밀양을 포함한 경남권의 전기자급률은 210%달한다. 다시 말해 새로 가동하는 신고리 3호기에서 생산되는 전기도 수도권의 부족한 전기수급량을 채우게 된다. 그러기 위해 들어선 송전탑은 밀양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수도권에 모자라는 발전시설을 짓는 것이 경제적인 처사라고 말한다. 또한 신고리 3,4 호기를 차례로 가동하기 이전에 고리1호기부터 오래된 원전이 차례로 폐쇄가 된다면 밀양에 거대한 송전탑이 필요하지 않다. 정부의 말처럼 원전이 안전하다면 수도권에 발전시설을 짓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되묻는다. 한전은 또 다시 말을 바꾸었다. 아랍에미리트 원전을 수주할 때 신고리3호기가 모델이 되었기 때문에 2015년까지 신고리3호기가 가동되지 않으면 엄청난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밀양 송전탑이 꼭 세워져야 한다고 말이다. 전세계가 원전 개수를 줄이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늘고 있다. 더불어 송전탑도 늘고 있다. 늘어나는 송전탑이 초고압의 전류를 가져올지, 초고압의 폭탄을 가져올지는 모든 이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사진 도움_ 상명대 박민혁 학생
함께한 이_ 미디어로 행동하라 in밀양팀, 밀양 주민 및 연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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