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의 노예 만드는 성적평가에서 벗어나
학점의 노예 만드는 성적평가에서 벗어나
  • 김기섭 수습기자
  • 승인 2015.08.3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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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보단 원하는 배움을 위한 대학이 되기 위한 노력

 지난 해 12월 고려대학교 염재호 총장이 취임했다. 염 총장은 20세기는 객관적 지식만으로 더 이상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갈 수 없으며 사회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선 개척하는 지성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모토로 ‘3無(무) 정책’을 도입했다. 시간을 두면서 점진적으로 출석부와 상대평가, 시험감독을 없앤다고 말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런 기존의 틀을 과감히 깨려는 시도가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낼지 주목 받고 있다. 더불어 학점평가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교육을 시도하기 위한 대학들도 나타나고 있다.

 

 

 대학가는 현재 ‘학점 인플레이션’

지난 4월 대학정보 공시 사이트인 대학알리미는 ‘전국 4년제 대학의 졸업생들(14년 8월, 15년 2월) 중 90.9%의 학생들이 졸업학점으로 B학점(80/100점) 이상을 받고 졸업한다’고 밝혔다. 특히 전체 졸업생들 중 A학점(90/100점) 이상인 학생은 36%로 집계되었다. 이처럼 대학에서 학생들의 학점 분포가 A와 B학점에 몰려있는 이른바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대학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대학의 통계를 보면 졸업생의 평균 졸업학점은 3.52로 전국 28개 국립대학의 평균인 3.42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대학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와 전남대학교(제2캠퍼스)를 뒤이어 3위에 올랐다. 표본을 전국 232개 대학으로 넓혀도 결과는 비슷하다. 우리대학보다 높은 학점을 주는 대학은 고려대, 동국대, 한양대 등 39개 대학이었다. 또한 한 기성언론 보도에 의하면 지난 해 우리대학 졸업생들 중 학점이 A 이상인 학생 비율이 전국 4년제 대학 중 상위 18위를 기록했다. 이에 오성진(기관공학부·12) 학생은 “지난 학기까지 총 51개의 수업을 수강했는데 C+ 이하의 과목 4개를 재수강해서 대부분 B이상 학점을 받았다”며 “수업 중 학부에서 분반을 나누어 듣는 과목이 있는데 학생들은 학점을 잘 주는 교수님 분반에서 수업을 듣기위해 경쟁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모(전파공학과·09)학생은 “대학에서 이론적인 수업보다는 취업에 도움을 주고 학생들의 진로를 지도해줄 수 있는 수업이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매 학기 수강 신청 시 내가 듣고 싶은 수업보다는 높은 학점을 얻을 수 있는 수업을 우선적으로 수강했다” 고 전했다.

 

 

                     

 

학점평가가 아닌 ‘배움을 우선’으로

 '3無(무)정책’을 추진 중인 고려대학교는 올해 2학기부터 원하는 학과와 강좌에 한해서 상대평가와 출석부 없는 수업을 시작한다. 약 40%의 교수들이 이번 2학기에 절대평가 수업을 할 예정이다. 무감독 시험은 지난 1학기 기말고사부터 시작되었다. 이에 염재호 고려대 총장은 “상대평가는 학생들이 학문에 대한 호기심으로 과목을 선택하기 보단 학점을 잘 주는 수업만 찾아 듣는 문제를 일으킨다”며 “그리고 시험감독이 없는 시험이 컨닝이 의미없는 시험이고, 컨닝의 이익이 없는 시험문제가 좋은 시험문제이다”고 밝혔다. 또한 출석을 없애는 것에 대해서는 “출석은 학생의 권리이지 의무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는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싶도록 만들어야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다른 대학들도 학점평가와는 다른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경우 14학년도에 모든 교육과정을 상대평가에서 ‘Pass, Non-pass’ 체제로 바뀌었다. 우수한 의대생들을 굳이 A부터 F까지 줄 세우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미 없는 경쟁을 줄이고 연구능력과 팀 리더로서의 능력을 개발하겠다는 취지이다. 또한 고려대 의대도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지식의 유무가 중요하기 때문에 상대평가제도에서 절대평가제도로 체제전환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적 있다. 한편 한양대의 경우에는 지난 1학기부터 국내 대학 최초로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를 성적표에 함께 기재하기로 했다. 이 시행안건에 따르면 상대평가는 전체 교양과목과 전공과목, 10명 미만 수강 또는 교직이수 과목 등 교과목을 3가지로 분류하고 기존과 동일하게 A부터 F까지 점수를 매긴다. 절대평가는 점수별로 Excellent(매우 우수), Good(우수), Try(미흡), Try Harder(매우 미흡) 등 4가지 등급으로 추가 기재한다. 이는 상대평가만으로는 놓칠 수 있는 학생의 정확한 학업정보를 기록하고 제공하기 위한 방법이다.

 

 

현실 속 학생들의 바람

 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학생에 대한 절대평가, 상대평가 모두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학점인플레의 근본적인 원인은 학생들의 취업난이다”며 “정부차원에서 근본적으로 일자리 부족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해야 대학 교육이 학점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취업난이 지속되는 이상 학생들의 고충은 계속될 것이란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대학 구성원인 교수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항해학부 설동일 교수는 “상대평가가 학점인플레를 방지할 수 있기에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학점을 부여하는 것은 학생을 지켜본 교수의 권리이자 의무이다”고 말했다. 또한 “현재로서는 어렵겠지만 평가하는 사람과 평가받는 사람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박제영(해양생명과학부·13) 학생은 “수강 신청 시 관심과 흥미를 고려하긴 하지만 높은 학점을 받기 쉬운 수업을 먼저 고려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성적을 평가할 때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적극성도 고려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평가방식의 전환 - 대안적 평가방식

 대안적 평가방법이란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학생들을 평가하는 방법을 총괄한다.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 문제의 답을 적는 것이 기존의 평가방식이라면, 교재를 참조하거나 시험문제를 미리 얻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나서 문제의 답을 적는 방식이 대안적 평가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표면상으로는 이러한 대안적 평가방식은 여러 문제점을 지닌 것 같지만, 시험문제를 차별화시킴으로써 그 한계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즉, 시험문제의 차별화로 학생들이 책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어서는 해결할 수 없는 시험문제를 출제하여 보다 깊은 생각이 필요한 답변을 유도하면 학생들을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학생들이 서로 협동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평가방식에도 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생활에서 개인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보다 그룹을 이루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협동을 요구하는 시험 역시 대안적 평가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전통적인 평가방식의 틀을 깨어 여러 방향에서 학생들을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현 대학교육의 전환점으로서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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