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라이트 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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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혜림
  • 승인 2015.08.31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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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공부, 취업, 미래 말고


   나혜림 (환경공학과·14)

 

  바쁘게 돌아가는 학교를 벗어나 밤늦게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금세 까매진 차창과 차창에 비친 내 그림자를 무심히 내다보며 가고 있었다. 한동안 쉼 없었던 나를 최대한 쉬게 해 주고 싶어서 어디에다 눈길을 두는지조차 인식하지 않고 노랫소리와 버스 진동에만 정신을 두고 있던 차였다. 그러다 갑자기 차창 밖의 장면이 눈에 확 박혔다. 다리가 길게 늘어져 있고 그 위에 차들이 줄지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주위의 어둠이 차의 엔진소리를 덮어버리고 헤드라이트의 환한 빛들만 나란히 보였다. 저 사람들은 어디로 저렇게 열심히 달려할까? 모두 앞을 환히 밝히고 다리를 따라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모습이 꼭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같았다. 주위의 일들은 애써 무시한 채 또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내 앞의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나는 누구보다 알찬 이십대를 보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관심을 가졌고 자격조건이 된다 싶으면 무조건 지원서부터 다운 받았다. 하루하루 내가 발전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배울 점을 하나라도 찾기 위해서 눈을 밝혔고 내가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 어른들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지 눈을 열심히 굴리며 보려 애썼다. 그렇게 일을 하나씩 벌이다보니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은 내 욕심과 함께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고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것만 봐도 잘하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찬 한 학기를 보내고 기숙사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 올 때였다. 해야 하는 일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진행되고 있었고 퇴사일인 금요일 전까지 짐을 정리해야 했다. 퇴사일 하루 전날인 목요일에 옷장 안에 있던 옷들은 전부 박스에 한 대 모아 담아 운송장을 붙였고 그날 아침까지도 사용하던 목욕바구니는 대충 물기만 털고 옷장에 넣어 숨겨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도망치듯이 기숙사를 나왔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모든 긴장을 다 풀고 있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하면서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을 알았다. 택배를 부치고 다음날인 금요일은 임시공휴일이었기 때문에 택배회사가 일을 하지 않았고 옷장에 숨겨놨던 목욕바구니는 바닥에 곰팡이가 슬어있었던 것이었다. 그 결과 택배 박스 한가득 있었던 옷은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받을 수 있고 옷장 안은 습기로 가득해 곰팡이가 한가득 피고 있을 지도 몰랐다.
 이 끔찍한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것이 너무나도 짜증이나 아빠에게 그대로 투정부리듯이 말했다. 하지만 아빠가 같이 걱정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아빠의 꾸지람 앞에는 서러움을 불러오기만 할 뿐이었다. 아빠는 내가 당연히 챙겼어야 하는 부분에 꼼꼼하지 못한 것을 혼내셨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또 상황이 이렇게 돼버린 것이 내 탓만은 아니라고 대꾸했다. ‘나 알아서 하니까 그냥 신경 쓰지 마요’ 악에 받쳐 눈을 부릅뜨고 소리 질렀다. 왜 아빠는 이제껏 내가 스스로도 열심히 살았다는 걸 몰라줄까. 왜 아빠는 계속 날 애기 취급할까. 지금까지 나 혼자서 내 길을 알아서 잘 찾아가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던 나는 아빠의 걱정을 단박에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연륜과 나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하고 있는 아빠 앞에서 내 오기에 찬 생각을 계속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 아빠와 나에게 절대 좋지 않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온 관심을 나에게 쏟아온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알 수 없었던 나의 마음상태를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집 떠나 혼자 내 일을 알아서 해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하던 동안 잊어버렸다.


   어두운 밤 다리를 따라 앞만 보고 달리던 자동차들 중 하나가. 내가 애처롭게 생각하고 있었던 그 불빛들 중에 하나가 나였다는 사실이 더 슬펐다. 이 길이 어디로 향한 길인지도 모르고 불만 밝히고 무작정 달려가면서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살았다. 가장 가까이에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 있었고 항상 나의 곁에서 걱정하고 응원하고 있었는데 나는 혼자이고 세상은 원래 혼자 산다는 멋들어진 사상을 겉으로 내밀고는 속으로는 누구도 날 도와주지 않는다며 투정부리고 있었다. 내 공부와 내 취업과 내 미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도 웃어야하는 우리들은 내 가까운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 주위에는 생각보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고 그 사람들과 함께하면 금세 행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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