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밀양의 카타르시스
[취재수첩] 밀양의 카타르시스
  • 김효진 기자
  • 승인 2015.08.31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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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호 취재수첩>

 

           밀양의 카타르시스

 

  흔히 영화의 갈등이 해소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말한다. 그 이외에 아주 목이 마를 때의 물 한잔이라던가, 끙끙 앓던 일의 해결이라던가 크고 작은 카타르시스가 존재한다. 기자들은 온전히 쏟아 부은 좋은 기사가 완성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말한다. 밀양 주민들에게 카타르시스란 아마 ‘송전탑을 뿌리 뽑는 날’ 일 것이다.

 ‘밀양 송전탑 투쟁’은 모두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나 또한 밀양 송전탑 문제는 익히 들어왔고 이번 호에서 ‘밀양 송전탑 투쟁’을 취재하게 되었다. 나는 학업까지 제쳐두고 떠난 취재에 의욕이 넘쳐났다. 밀양에 직접 가서 본 것을 가감 없이 짖어 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가감 없이 짖을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미디어로 접한 밀양보다 직접 보고 느낀 밀양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겪은 것들은 내 마음을 쑤셨다.

 논 한가운데 서서 숨통을 조이는 송전탑, 혼자 있을 때면 송전탑을 바라보며 우는 할머니, 기어코 세워진 송전탑을 향한 울분,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이, 믿을 수 없는 공권력의 폭력, 어이없는 명목으로 날아오는 고소장들, 자식뻘 되는 놈들이 내뱉는 욕과 수치심, 모멸감, ‘따닥따닥’거리며 비오는 날이면 더 심해지는 송전 소리, 믿었던 이장 놈은 한전의 돈을 받고 합의를 이끈 앞잡이, 가족 같던 이웃의 배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것만 같은 기분,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멀리 온 싸움.

 이야기를 이어가는 할머니를 붙잡고 기어코 내가 먼저 울음이 터졌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작년 행정대집행 이후 밀양은 끝이 났다고 말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미디어에서도 밀양의 이야기는 사라져가고 있다. 아직도 억울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사람들에게는 이제 잊혀 지나싶다. 하지만 밀양주민들은 ‘끝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세간이 주목하지 않는 때에도 소리치고, 투쟁하고, 맞서왔다. 필사적인 울부짖음 이었다.

 ‘들리지 않는다고 그들이 외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난 꼭 밀양 주민들이 송전탑을 뿌리 뽑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필사적으로 울부짖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힘없고 돈 없는 약자가 승리하는 카타르시스. 그것이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다.

 오늘 밤 꿈에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릴 밀양 할머니의 얼굴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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