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의 말말말!
바다 위의 말말말!
  • 김효진 기자
  • 승인 2015.10.0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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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바다 위 문화가 스며든 ‘해양 용어’이야기


_말에는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문화’가 담겨있다. 망망대해를 누비는 선원들의 말에서 ‘바다 내음’이 나듯 말이다. ‘해양 용어’에는 단순한 뜻을 넘어 바다 위에서 생활한 선원들의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해양 용어에 스며든 과거와 오늘의 항해 이야기. 궁금하지 않은가?

 


마도로스 태생의 비밀, 야생장미의 뿌리?!

▲마도로스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뽀빠이의 모습
_흔히 ‘마도로스’라고 하면 뽀빠이의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마도로스는 네덜란드어로 ‘선원’을 상징하는 말이지만 원뜻은 네덜란드에서 자생하는 야생장미의 뿌리이다. 선원을 상상하기에는 어렵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하다. 마도로스가 선원을 지칭하는 말로 태어나기 까지는 당시의 최상급 담뱃대를 먼저 설명해야한다. 당시에는 야생장미의 뿌리로 만든 담뱃대를 최상급으로 쳤는데 그 담뱃대를 재료의 이름을 따라 마도로스라 부르게 되었다. 마도로스는 담뱃대의 재료인 야생장미의 뿌리였고 담뱃대를 지칭하는 말이 된 것이다. 뽀빠이의 모습처럼 선원들은 마도로스로 만든 담뱃대를 애용했고 마도로스는 선원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방향 잡는 스타보드와 항구편인 포트

▲방향을 조정하는 긴 노(Streeing Oar)의 모습

_배에 조금의 관심이라도 있다면 우현과 좌현을 각각 '스타보드(Starboard)‘와 ’포트(Port)‘라 부르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재밌는 점은 영어에서도 'Right'가 아닌 ’Starboard'로 표기한다는 점이다. 이는 방향을 조정하는 방향타가 없던 옛 선박에서 유래되었다. 옛 선박에는 방향타 대신 긴 노를 사용해 방향을 조정했는데 오른손잡이가 많아 방향을 잡는 노는 대부분 오른편에 위치했다. 오른편에 위치한 긴 노를 ‘Streeing Oar'라 불렀고 ‘Streeing Oar’와 ‘Board’가 합성되어 ‘스타보드(Starboard)’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긴 노가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으니 부두에 접안하는 쪽은 당연히 배의 왼편이었다. 물론 화물을 싣고 승객을 태우는 쪽도 왼편에서만 가능했다. 이때 화물을 싣는다는 ‘Loading’과 ‘Board’가 합성되어 처음에는 ‘라보드(Ladboard)’라 불렀지만 스타보드와 비슷한 발음으로 큰 실수를 부르곤 했다. 그래서 항상 항구(Port)에 접안하는 쪽이라는 의미로 배의 왼편을 포트라 부르게 되었다.
 한편 스타보드의 유래에는 또 한 가지 설이 있는데, 스타보드의 ‘Star’가 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항해기구가 발달하기 훨씬 이전에는 주로 별자리를 관측하며 천문항해에 의존했는데, 이 때 배의 오른편에서 주로 관측했다고 해 스타보드라 부르게 되었다 추측하기도 한다.

 


바다에서 정치로 흘러들어온 슬러시펀드

_슬러시펀드(Slush fund)는 경제용어로 ‘정치인의 비자금’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는 원래 선원들의 상륙비나 공동오락비로 쓰이는 돈을 지칭하는 슬러시펀드에서 옮겨온 말이라고 한다.
 옛날 범선에서는 장기항해 시 육류의 보관을 위해 갑판에서 닭, 염소 등을 직접 키우기도 했지만 돼지고기를 소금에 절이는 것이 주된 육류보관법이었다. 그 돼지고기로 여러 요리를 즐긴 후에는 많은 기름(지방; Slush)이 남았는데 돛대와 갑판에 기름칠하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고 한다. 이것들은 매우 고약한 냄새를 풍겼지만 나무통에 모아 비누공장에 팔면 귀중한 돈이 되었다. 끈적한 기름(Slush)을 판 돈(Fund)이라는 뜻의 슬러시펀드는 선원들의 공동오락비이자 비자금으로 쓰였다. 이는 선주 모르게 사용되는 돈이었는데 선주는 알아도 모르는 척 넘어가주는 게 관습이다. 정치인의 비자금으로 쓰이는 지금의 뜻도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커피 타와 실기사! 라면 끓여와 실항사!

_해기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실습을 나가게 되면 실기사와 실항사로 불리게 된다. 실기사는 실습 기관사, 실항사는 실습 항해사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오랜 실습동안 배를 탄 그들 또한 뱃사람으로 다양한 해양용어들을 사용한다. 우선 배의 앞부분은 앞쪽 성이라는 뜻의 포어캐슬(Forecastle)을 줄여 ‘폭슬’이라고 하고 뒷부분은 영어인 Poop에서 따와 ‘푸푸’라고 부른다. ‘Poop’은 배의 뒷부분이라는 뜻도 있지만 미국에서는 비격식어로 ’똥을 싸다‘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뒤’라는 점을 생각하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한편 밥을 먹자고 할 때 ’짜짭‘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이는 밥 먹는 소리를 흉내 낸 말로 외국 선원들과 소통하다보니 생겨난 말이다.
 사실 오랜 항해로 여러 말을 익힌 실습생들이 “*퍼스트라인 나갑니다, 선장님!”과 같은 웅장한 말을 쓸 것 같지만 반대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커피 타와 실기사!”와 “라면 끓여와 실항사!”라고….
* 퍼스트 라인 : 입항할 때 라인을 내는 것으로, 첫 번째 라인을 던져줄 때 ‘퍼스트라인을 낸다’고 한다.


한국의 마도로스들이여, 일본말일랑 바다에 던져라!

_슬라기! 돕뿌! 렛꼬…. 모두 우리나라 마도로스들이 애용하는 말들이다. 슬라기는 줄을 늦춘다는 Slack away에서, 돕뿌는 정지한다는 stop. 그리고 렛꼬는 밧줄을 풀어 주다는 의미로 Let go에서 따왔다. 뱃사람들은 ‘렛꼬시켜 버려라’는 농담을 많이 하는데 이는 ‘그냥 바다에 던져 버려라’로 해석된다. 뿐만 아니라 아시땅(후진), 고헤(전진) 등은 실제 선박에서 관습적으로 사용해온 우리나라 선원들의 말들이다. 하지만 선박에서 쓰이는 말들을 포함해 해양용어들의 70%가 일본말에서 파생되었다. 이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로 그때의 말이 고스란히 전해져 사용 된 말들이다. 이 말들은 선원들 간의 세대 차이를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선배에서 후배로 세습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해양수산부에서는 ‘해양용어들 순화하기’ 공모전을 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쓰이고 있는 이 말들은 광복 70주년의 한글날을 맞은 우리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참고_ 박초풍의 바다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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