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선배] 인생사 새옹지마! 지금 힘든 일은 나중을 위한 ‘독감예방주사’
[기자가 만난 선배] 인생사 새옹지마! 지금 힘든 일은 나중을 위한 ‘독감예방주사’
  • 김효진 기자
  • 승인 2015.10.08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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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만소방서 소방2정대 항해사 최유동(해사수송과학부·59기)


  

 


이번 <기자가 만난 선배>코너에서는 부산항만소방서 소방2정대의 항해를 맡고 있는 소방관 최유동(해사수송과학부·59기) 동문을 만나보았다. 사진을 찍겠다는 기자에게 수줍고 환한 미소로 “수염이라도 깎아야 겠다”고 말했던 최 동문. 그는 바다에 무슨 일이 생기든 발 벗고 나서는 소방정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희생정신’ 없이는 될 수 없다는 소방관 최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치섬에서 보낸 학창시절은 어떠셨나요?

‘시설 좋은?! 해양대에 오다’
_  최 동문의 아버지는 소방관이었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께서 우리대학의 소방점검을 나가신 적이 있는데 시설도 좋고 경치도 좋아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다. 고3이었던 최 동문은 아버지의 추천으로 해양대 원서를 쓰게 되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씀과는 조금 다르게, 신식의 기숙사가 아닌 오래된 입지관과 웅비관에서 생활해야했다.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셨나 싶었다. 최 동문은 “사실 우리 때에도 웅비관은 사람이 살아선 안 될 건물이라는 소문이 있었다”며 알고 보니 아버지가 점검하신 곳은 새로 지은 기숙사 아치관이었다고 웃었다.

‘졸업 후 배탈 때는 사직서 낼 생각도해’
_  대학교 3학년 때 최 동문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최 동문이 집안의 가장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집에는 공부 시켜야할 여동생이 있었고 생활비도 내야했다. 다행히 최 동문은 여느 해사대생처럼 졸업 후 군대 대신 산업기능요원으로 선박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다. 항해사로 근무하며 봉급을 받고 생활 했던 최 동문은 “아버지가 추천한 해양대에 왔기 때문에 돌아가신 후에도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최 동문에게도 배에서의 생활은 힘이 들었다. 일적으로 힘들기 보다는 수직적인 관계와 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이 힘에 부쳤다. 결국 사직서를 제출하려 했는데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그래, 이 밥만 먹고 내자”고 생각했다. 헌데 밥을 먹으며 가족들 생각이 났다. 나중 미래의 삶도 생각이 났다. 밥을 먹고 나니 무언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는 사직서를 바다에 버릴 수 있었다. 정말 힘든 순간에 밥을 먹든, 물 한잔을 마시든 주위를 환기하는 게 좋은 팁이라면 팁이었다고.

 

 


소방정대로 오시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 호흡기의 사용법을 설명하는 최 동문

 

‘아버지를 따라 소방관이 된 아들딸’
_  최 동문은 팔다리에 잔 상처들이 많았던 소방관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구조 중에 여기저기 찢기고 다치는 상처들이 많았지만 그 상처들을 아무렇지 않은 듯 가리고 오셨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자란 최 동문과 그의 여동생은 지금 소방관이 되었다. 아버지가 소방관 중에서도 배를 타고 활동하는 분야가 있다 추천해주셨는데, 배를 내릴 때 즈음 그 생각이 났던 것이다. 때마침 부산에서 소방정대의 항해사를 뽑고 있었고 지금까지 활동하게 되었다.

‘바다를 책임지는 소방정대’
_  1년에 한 번 소방 전체 인원을 뽑는데 소방정대의 항해사와 기관사가 부족하면 그 인원을 추가 모집하게 된다. 이 때 특채로 뽑힌 항해사와 기관사는 선박경력이 필수로 항해사의 경우 항해사 4급 이상을 따고 2년 동안 선박을 운전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이처럼 소방정대는 일반 소방서와는 비슷한 듯 조금 다르다. 지상의 소방서에는 건물화재 등의 사고에 대응하게 되어있다면 소방정대는 바다나 배, 접근이 어려운 섬의 구조를 맡고 있다. 배 침몰이나 화재 등 소방정대는 배로 접근 가능한 곳의 구조를 맡아서 하게 된다.

 

 


소방관으로서 언제 힘들고 언제 보람을 느끼시나요?

 

▲ 늦은 시간에도 근무하며 출동대기 중인 최 동문의 동료들

 

‘힘들지만 보람찬 직업, 인력부족에 시달리기도’

_ 하루는 해상순찰을 나간 최 동문이 아슬아슬한 상태의 배를 발견한 적이 있었는데, 알아보니 VTS(해상교통관제센터)나 해양경찰에서는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다고 한다. 배 자체적으로 해결하려한 것 같으나 그러기엔 꽤 큰 사고였고 빨리 조치를 취해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것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다. 이처럼 최 동문은 뉴스에 나오는 큰 사건의 구조를 맡았을 때 보다 큰 사건을 미연에 방지했을 때 더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한편 최 동문은 출동이 없을 때도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기해야하는 점이 힘들다고 한다. 또한 소방정대의 경우 부산 내 소방1정대와 2정대 그리고 해양경찰의 부대들로만 구조해야해 사고 해결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 특히 최 동문의 경우 2정대의 유일한 항해사이다. 배 운전을 오래 하면 교대로 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인원이 많지 않아 힘이 든다.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방직의 경우 지방재정에 따라 좌우되는데 재정이 좋지 않으면 장비는 물론 인력이 부족한 곳도 있다. 2교대에서 3교대로 바뀌면서 인원이 충분히 채워지지 못한 점도 아쉽다. 2교대 때는 한 조에 9명이었는데 3교대가 되니 6명으로 줄었다. 9명이 하던 것을 6명이 하니 시간이 더 지체되고 효율에도 차이가 있다. 또한 야간 근무로 누적되는 피로를 줄이기 위해 4조 3교대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항상 인력부족에 시달려 실험적으로 몇 군데만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소방대원을 생각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_ “우리가 출동 할 때는 어떠한 일이 발생했을지,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하는 최 동문. 고양이를 구조하는 작은 일일 수도 있지만 선박에 불이 나 폭발하는 큰 사고일수도 있다. 최대한 본인의 안전을 지켜야겠지만 본인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야한다. 최 동문은 출동대기를 하며 가끔 ‘잘못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구조에 몸을 사리지 않는 것이 소방대원들이다. 희생정신을 마음에 품고,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소방관들이 많다. 혹시 소방관을 꿈꾼다면 그런 것들을 미리 인지하고 오면 좋겠다고.

‘인생사 새옹지마, 그때의 감정에 치우치지말길’
_ 최 동문은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일로 배를 탔을 때를 꼽았는데 너무 힘들었던 순간이 지금 생각하면 ‘독감예방주사’ 같다고 한다. 최 동문은 “그 때 힘든 거에 비하면 지금 힘든 건 아무 것도 아니야”하며 힘든 일을 견딘다고 말했다.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고 좋은 일이 생기면 나쁜 일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나쁜 일이 지나고 언젠가 좋은 일이 올테니 절대 그 순간에, 그때 감정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고 한다. 너무 힘들더라도 물을 마시고, 밥을 먹고 주위를 한번 환기시켜 보자. 혹시 모르지 않는가. 그때만 넘기면 좋은 일이 올지!

 

 

앞으로의 본인은 어떤 소방관이 되고 싶나요?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_ 최 동문은 20대 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물으면 항상 ‘아버지’라 답했다. 지금 그에게 가장 큰 목표는 갓 태어난 아들과 가족들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항상 가지다 보니 직장에서도 일에 충실할 수 있었다고 한다. 최 동문은 그의 아들에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아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멋쩍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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