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재미만 있을까?
과연 재미만 있을까?
  • 하성일(영어영문학과·13)
  • 승인 2015.10.08 1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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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숲의 딜레마-

 

                                                                                                                        

 옛날 신라시대 경문왕 때의 이야기이다. 경문왕은 어느 날 자신의 귀가 당나귀 귀로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임금의 의관을 만드는 직책인 복두장(幞頭匠)은 그 귀를 보고야 말았고, 경문왕은 그에게 자신의 귀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 재미난 사실을 말하지 않고 어찌 배기랴, 복두장은 속 시원하게 아무도 없는 대나무 숲으로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는 말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그 뒤로 바람이 불어 대나무가 살랑거릴 때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들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는 뒷이야기가 더 있지만, 이 동화를 언급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에게도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곳, 바로 작년부터 큰 화제가 되어 각 대학, 단체마다 인기리에 운영되고 있는 페이스북 상 대나무숲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갓 대학생활을 시작한 신입생들, 오랜 휴학기간 끝에 복학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복학생들, 학년은 3학년이지만 신입생과 다를 바 없는 편입생들, 학과 생활을 하기 민망해진 화석(?)들에게 대나무숲은 하소연을 할 수 있는 좋은 매체다. 학교생활을 해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조언을 구하고, 또 건의사항을 게재하는 것은 학생 개개인뿐만이 아니라 학교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작년부터 셔틀버스 기사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교내 시설물과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행태를 고발하면서 학교는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는 분명 대나무숲이 좋은 기능을 하고 있다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고, 페이스북 이용자가 많은 것을 감안하면 아주 획기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대나무숲이 이런 순기능만 하는 것일까?

 학교의 발전을 도모하고 자신의 원활한 대학생활을 위해 타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한번쯤은 들어본 말이 있다. ‘생각을 한번 해 보고 말을 해라.’ 철부지 시절에는 나오는 대로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다. 사람이 성인이 될 즈음에는 분명 그 정도 분별력은 다들 생기기 마련이나, 대나무숲 특성상 ‘익명’ 이라는 제도가 사람을 다시 철부지로 돌려놓는 감이 없지않아 있다. 인터넷에는 ‘디씨인사이드’ 라는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참 보는 입장에서는 정말 재밌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에 다소 씁쓸한 감이 있다. 이렇게 말해도 아무도 모르겠지, 누가 뭐라고 하겠어, 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에 있는글을 필터링 한 자 없이 내보낸다. 특히 우리 한국해양대학교는 얼마나 작은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각 단과대학 별로 논쟁도 심심찮게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아치인으로서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래서야 대나무숲이 디씨인사이드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대나무숲을 구독하다 보면 눈꼴시러운 글들이 있다. 그건 바로 사랑고백이다. 연애상담 정도야 당연히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이름도 모르고 말도 한번 섞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저 예뻐요, 잘생겼어요, 하고 게시물을 올리는 것은 정말 속된 말로 찌질해 보이고 스토커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물론 공개적으로 연락처 묻는 것? 어렵다. 그렇다고 한눈에 반한 사람한테 주변 시선이 부끄러워서, 민망해서 그 말 한마디를 못한다는게 필자는 사실 좀 재미가 없다. 얼마나 좋은가? 길거리 구애.

 ‘생각을 하고 말을 해라.’ 참 좋은 말이다. 뼈가 담겨있는 말이지만 듣기에도 썩 기분이 나쁜 말은 아니다. 한국해양대학교 정도 올 지성이면 다들 말을 할 때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휴대폰 자판을 칠 때도, 한번만 더 생각을 해 보자. 하나 더, 용기 내어 말해보자. ‘번호 좀 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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