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서재] 바다를 사랑한 책벌레
[향기나는 서재] 바다를 사랑한 책벌레
  • 한국해양대신문사
  • 승인 2015.10.0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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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남 외래강사_해사수송과학부


해사수송과학부 외래강사 정 기남

                                                                                                                           

  정조 시대의 실학자인 이덕무는 ‘看書痴’라고 불렸다. 세상물정을 모르고 책 보는 것만을 즐거움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가끔 혼자서 웃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책을 어렵게 구해서 보고 있거나 책을 읽다가 심오한 뜻을 스스로 깨치면 그랬다는 것이다. 이덕무의 독서법은 ‘博覽强記’였다고 하는데,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게 수많은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잘 정리해서 기록하는 방식이다.
 감히 이덕무와 겨룰 수 없는 수준이라 나는 스스로를 ‘책벌레’라고 부른다. 책이 고팠던 산골 촌놈이 대처의 중학교로 진학했을 때, 무엇보다도 근사한 도서관이 좋았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마주친 사람이 있었으니 수위아저씨였다. 소문에 아저씨는 도서관에 있는 거의 모든 책을 읽었다고 했다. 마냥 그가 부러웠다. 책을 많이 보고 싶은 욕심에 커서 등대지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7년 전 해상교통관제사가 되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책을 잡았다. 바다를 배경 삼아 읽어가던 책 속의 세상은 또 하나의 바다였다. 파도가 꼬리를 이어가듯이 책은 책을 유혹했다. 그렇게 7천 권을 소장하는 책 부자가 되었다.
 7천 권은 하루에 한 권 가까이 읽어야 가능한 숫자다. 마흔 살이 넘어서 다시 영어 공부를 하면서 책 읽는 힘이 붙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영어를 분 당 350 단어의 속도로 읽어내는 강력한 무기를 장착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읽어내는 분량이 늘기도 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과 함께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쏟아 부은 내용들이 뇌 속에서 격렬하게 섞여서 발효과정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생겨난 새로운 생각들은 책의 여백에 갈겨썼다. 그때 마다 잡아두지 않으면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책벌레’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책바보’에 미치지 못한다. 폭식을 하면 체하거나 배탈이 나기 마련이다. 상쾌한 배설이 이루어져야 우리 몸은 건강하다. 책 읽기를 완성하는 것은 글쓰기다. 글쓰기를 통해서 생각을 정리하여야 한다. 내 생각을 나누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책바보’의 덕목이다. 벌레가 바보로 거듭나기 위해서 이제부터 글을 쓰려고 한다.
  이 지면을 통해서 젊은 아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세상의 바다를 우리의 앞마당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내는 힘을 길러야 한다. 바다와 관련된 저마다의 전문분야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이만한 무기가 없다. 영어 책을 읽어내는 힘은 여러분의 날개가 될 것이다. 책을 권하는 지면인 만큼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에게해를 배경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일깨운다. 법성 스님의 『앎의 해방 삶의 해방』은 삶을 긍정하는 원시불교의 본 모습을 보여준다. 김용옥 교수의 『여자란 무엇인가』는 건강한 여성성을 온존시키는 동양 사유의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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