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교수님!] 바른 인성과 도덕성을 갖춘 해양플랜트 전문가 육성을 꿈꾼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바른 인성과 도덕성을 갖춘 해양플랜트 전문가 육성을 꿈꾼다!
  • 한국해양대신문사
  • 승인 2016.06.02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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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플랜트운영학과 이명호 교수님

바른 인성과 도덕성을 갖춘 해양플랜트 전문가 육성을 꿈꾼다!
인터뷰 시간동안 비범한 카리스마를 유지하면서도 당신만의 유쾌한 스토리를 들려주신 이명호 교수님을 만나보자!

해양플랜트 운영학과 이 명 호 교수님

1974. 3 ~ 1978. 2 한국해양대학교(기관 공학사)
1978. 3 ~ 1992. 1 범양상선 승선, 신조선감독, 공무감독
1992. 2 ~ 1993.12 강림기연 생산부장
1993.12 ~ 2012. 8 대우조선해양 상무
2012. 9 ~ 현재 한국해양대학교 해양플랜트운영학과 교수

 

조립하고 만지고 분해하기 좋아하던 영도 소년
_ 태어나고 자란 곳은 영도대교 근처의 봉래동 바닷가로 우리학교와 그리 멀지않은 곳이다. 바다가 곧 집이니 여름이면 매일 해수욕을 하며 놀았고 놀고 있자면 종종 저 멀리서 거대한 상선들이 입출항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시 해양대는 지금처럼 아치섬에 있지 않고 현재 부산남고가 있는 동삼중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초등학생 때 종종 그곳으로 소풍을 가곤 했다. 당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멋있게 제복을 차려입은 해대생들이 뛰어다니며 군사훈련을 받던 모습인데 그 때 그분들이 아마 내 10년 선배님들이 아니었나 싶다.
_ 또한 어릴 때부터 기계를 조립하고 깨부수는 것을 좋아해서 중학생 때는 라디오 조립 경연대회, 과학 경시대회 등에 참가했다. 적성에 잘 맞았는지 여러 차례 수상을 했고 진로도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쪽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당시 선박업계에서 일하시던 부친께서 해양대를 적극 추천하셨고 관심이 생긴 나는 해양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주변으로부터 ‘배에서는 가장 높은 게 선장’이라는 말에 일단은 선장의 길을 갈 수 있는 항해학과에 입학했다.


역시 사람은 적성을 무시할 수 없다
_ 해양대에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전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엔 선장을 꿈꿀 수 있는 항해학과보다 가까이서 기계를 다룰 수 있던 기관학과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결심이 서자 1학년 때 기관학과로 전과를 택했다. 그리고 강의실 밖에서도 기계를 다루는 일을 했었는데 MBS 방송반에서 엔지니어로 방송기자재 조립 및 수리를 담당했다. 방송국원으로서 팝송DJ나 클래식 DJ도 하고 싶긴 했는데 나 말고 엔지니어를 담당할 사람이 없어 DJ는 아쉽게 넘어갔다. 또한 전자반 서클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축제 마지막 날 저녁 앵커 점화식을 할 때였다. 현재 해양플랜트운영학과 교수인 이강기 교수도 당시 같은 전자반이었고 함께 폭죽 터트리기 프로젝트를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상품화된 폭죽을 구하기 어려웠기에 우리가 직접 화약을 제조해서 폭죽을 만들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폭죽이 하늘로 올라가서 터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점이다. 그래도 제법 멋지게 터진 것으로 기억한다.
_ 학부시절 특별히 더 기억나는 게 있다면 1학년 식목일 당시 방파제로 돌을 옮겨 심은 일이 기억난다. 당시엔 아직 방파제가 다 연결되지 않아 주말에 밖에 나가려면 실제로 배를 타고 나가야했다. 식목일 하루 동안 돌을 나르고 심었다고 해서 이 날을 ‘식석일’이라고도 했는데 당시엔 이런 노동에 대해 불만보단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동기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한다.

 

졸업 후 해양대학교에 돌아오기까지
_ 졸업 후 교수로서 다시 해양대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짧게 정리하자면 78년 졸업 이후 범양상선에서 약 8년간의 승선경험으로 조선소에 파견되었다. 이후 배를 건조하기 위한 도면검토와 건조과정의 감독역할인 신조선감독으로 총 6년 정도를 일했다. 이후 조선 기자재 보일러 회사에서 약 20개월, 대우조선해양 시운전 팀장으로 약 20년을 근무했다. 조선소 상무를 끝으로 길고 길었던 산업계에서의 생활을 2012년에 마무리 지었다. 그 바로 전년도인 2011년도에 해양대에서는 해양플랜트 운영학과가 신설되었고 학교로부터 해양플랜트 전문가를구한다는 연락을 받은 뒤 12년도 9월 교수로서 모교에 돌아왔다.
_ 그런데 35년 만에 모교로 돌아와 보니 학생들의 변화된 젊은 모습이 보기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도덕성과 예절이 부족해진 모습에 안타깝기도 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인사를 제대로 안한다던지, 비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운다던지 하면 잔소리를 하는데 캠퍼스 내에서 비흡연구역인데 버젓이 흡연하는 걸 목격하면 꼭 학생이 아닌 외부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직접적이고 강경하게 목소리를 내곤한다.

 

해양플랜트산업과 우리 해양산업의 미래
_ 우리나라는 해양산업 중 해양플랜트산업이 주를 이루는데 너무 해양플랜트 건조에만 치우친 면이 없잖아 있다. 해양산업은 단지 건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운영, 유지보수, 정비, 해체 및 폐기 등의 과정이 있다. 선박이나 해양플랜트의 건조 외에 유지보수 산업도 우리가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산업이었는데 과거 해양플랜트건조를 하지 않던 시대에 고부가가치의 산업만 찾다가 유지보수 및 수리산업을 경시했고 현재 해양플랜트 유지보수가 고부가가치 산업임에도 그 주도권을 제 3국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이제 우리나라가 해양플랜트산업에서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선 실무경험이 풍부한 해양플랜트 전문 인력이 양성되어야할 필요성이 있다.
_ 또한 해양산업에서 해운, 조선, 철강을 각각 독립된 분야가 아닌 연계된 분야로 보고 어떻게 불황을 풀어 나가야할지 생각해보아야한다. 예를 들면 기술의 발달로 기름을 적게 쓰는 선박을 건조한다면 한국해운이 경쟁력을 갖게 되고 동시에 수주를 받으며 조선도 활성화 될 것이다. 조선 경기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배를 짓는데 필요한 철판을 제작하기 위한 철강 산업도 일거리가 생길 것이고 철광석을 수입해야 하니 다시 해운에 일거리가 생길 것이다. 이처럼 정부차원에서 적절한 시점, 적절한 부분에 지원을 할 수 있다면 해운-조선-철강의 선순환 구조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촉매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은 비교의 대상이 아닌 관계의 대상이다.
_ 학생들에게 자존심보단 자존감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존심은 자신과 타인의 비교를 하면서 발생하는 열등의식을 부정하고자 허상으로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이다. 이 과정에서는 내가 타인보다 나은 이유에 목메고 때론 타인을 깎아내리기도 한다. 반면 자존감은 타인과 관계없이 자신의 존재를 성장시키려는 마음이다. 자존감이 큰 사람은 굳이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고 나보다 높을지라도 열등의식을 갖지 않을 것이다. 이런 자존감을 높이려면 항상 자신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속이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
_ 또한 학생들에게 인사할 사람을 찾거나 고르려고 하지 말고 교수에게도 일하시는 직원분에게도 인사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인사를 잘 하지 않는 학생에겐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인사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자 상대방과의 관계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다. 때문에 학생들이 인사의 중요성을 항상 인지했으면 한다. 특히 해사대학 학생들의 경우 거수경례를 할 때 단지 손을 올리고 내리는 것에서 끝내지 말고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호감을 나타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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