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서재]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마음은 아름답다
[향기나는 서재]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마음은 아름답다
  • 한국해양대신문사
  • 승인 2016.06.03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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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룡 교수_동아시아학과

 

 

동아시아학과_구모룡 교수

 

 

 

 

 

 

 

오늘날을 평생 학습 시대라고 한다. 나서 죽을 때까지 공부하며 살아야 하는 시대라고 이해해도 될 터이다. 89세에 돌아가신 김열규 선생은 고성 출신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이다. 말년에 쓴 책이 『읽기 쓰기 그리고 살기』이다. 이 분이 이런 제목의 책을 남긴 것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 없는 것을 문맹이라고 하는데 요즘 실질문맹이라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단지 글자를 읽고 쓸 줄 안다고 하여 문맹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2%밖에 안 된다. 그런데 실질문맹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을 읽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에 관한 한 문맹인 셈이다. 영화, 연극, 게임 등, 여러 미디어들이 있다. 이러한 미디어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도시에 대한 이해력이 있는가 하면 해양에 대한 것도 있다. 우리가 해양문화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모르고 있다면 실질적인 문맹에 해당한다. 여행이나 장소도 마찬가지.

학생들에게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시를 공부했으니 이 시를 읽고 이야기해보자”라고 하면 대개 바닥으로 눈을 깔고 만다. 아예 시는 나하곤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 또한 시에 관한 실질문맹이다. 덧붙여 읽기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독서가 취미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독서가 취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들러가 이야기한 ‘마음의 네 가지 자산’에서 제일 낮은 단계가 정보이다. 정보는 간단하다. 많이 수집할수록 유용하다. 그러나 누구든지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보가 가장 낮은 단계라면 그 다음에 지식이 배치된다. 지식은 읽고 외어야 한다. 읽지 않고 지식이 쌓일 수가 없다. 지식을 넘어서는 단계가 이해이다. 이해가 내면화될 때 지혜에 이른다.

칸트도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우리 속에서 자란다고 했다. 취미로 특정 장르를 좋아한다는 것도 상당하다. 취미가 전문성을 가지게 되는 게 일본의 오타쿠 같은 경우다. 취미로 모인 사람들이 나중에 직접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그런다. 그런데 취미 다음 단계가 오성이다. 스스로 느끼고 이해하는 것. 마지막에 자기가 판단하는 것인데 이건 어렵다고 한다. 동아시아에서 도에 이르는 과정도 이와 흡사하다. 추구하는 과정이 있을 뿐 궁극의 도달점은 부재한다. 그러니까 끝이 없다. 동아시아에서 공부라는 것은 끊임없는 과정이다. 책을 읽고 지식을 쌓고 수양을 하고 지혜를 얻어가는 과정에 다를 바 없다. 하루아침에 될 턱이 없으니 끊임없이 읽어야 한다. 읽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

명사형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흔하다. 사유에서 명사는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형용사와 동사가 중요하다. 형용사와 동사를 이야기하려면 자기 생각이나 느낌이 들어가야 되고 거기에 또 의지가 개입해야 한다. 부사는 그것들을 더욱 분화시킨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고가 명사형이 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본디 사고의 단위는 문장이다. 더 나아가 문장보다 문단이다. 명사형 사고를 하면서 문장도 못 만드는데 어떻게 문단을 만들어내는가? 문단을 만드는 능력이 있을 때 문단이 하나가 되고 세 개가 되고 다섯 개가 된다. 문단을 만드는 능력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문단을 만드는 능력은 독서에서 나온다. 남이 써놓은 글은 전부 문단으로 되어있다. 문단으로 된 걸 읽으면서 문단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해 가면서 읽는 것이 독서다. 읽지 않고 쓸 수 없다. 좋은 글을 읽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김열규 선생이 말년에 쓴 책이 『읽기 쓰기 그리고 살기』라고 앞에서 말한 바 있다. 그는 임종 직전의 병상에서도 글을 썼다. 병상에서 쓴 글들을 묶은 유고집이 『아흔 즈음에』이다. 그러니까 그가 평생 한 일이 읽기, 쓰기, 그리고 살기라는 것이다. 그러면 인문학자만 읽고 쓰며 사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 우리 모두는 읽고 쓰며 살아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나은 삶이라는 게 뭐냐.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인 성공을 많이 이야기한다. 이제 사회적인 성공이 아니라 개인적인 성취로 삶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읽고 쓰며 사는 일은 어느 누구의 삶이든 다 관여한다.

 

 

읽기 쓰기그리고 살기김열규 지음한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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