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북자북] 기자와 방관자, 그리고 우리
[진북자북] 기자와 방관자, 그리고 우리
  • 김수영 기자
  • 승인 2016.10.19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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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쓰고자 하는 기사는 객관적일 수 없다. ‘기사를 써야겠다’ 마음먹는 순간 이미 기자가 가진 문제
의식,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들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쓰여진 기사는 객관적일 수 있다. 하나
의 사건을 취재 하더라도 일부러 많은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랄까. 쉽게는 찬성-반대의 이분적 관
점에서 이를 대표하는 의견을 시작으로 제3의 대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까지. 기자의 사견이 아
닌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를 담으려 하기 때문이다.


_ 나름 세운 객관성이라는 우선순위 아래 취재를 하던 나는 기자이자 사건에 직접 나서 관여하지
않고 곁에서 보기만 하는 ‘방관자’라 하겠다. 사건을 보고, 듣고 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기
자의 역할이라 하지만, 당연함 속에 마음 한 켠 부끄러움이 자리 잡는다. 나를 방관자로 비유하자
면 불구경, 싸움구경하는 사람쯤 되지 않나 싶다. 불을 끄기 위해 물 한 동이 나르는 사람이 아닌,
싸움을 말리는 사람이 아닌, 그냥 지켜만 보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본래 나의 기질이 변화를 갈망
하고, 행동하기를 열망하기에 하는 푸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 기질을 떠나 얼마 전 발생
한 두 번의 사건 <심정지한 택시기사를 방치하고 떠난 승객들>의 기사를 보자면 방관자로서 느끼
는 부끄러움은 나만의 문제가 아닌 듯 싶다.


_ 이번 311호에서도 다양한 학내 소식을 담았다. 더욱 공을 들여 선정한 주제에는 우리 주변의 이
야기가 담겨있고, 독자뿐 아닌 우리 대학 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내용들이다. 얼마
전 시행했던 국립대 연합체에 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담았고(대학 p16~17), 2
주기 구조개혁 평가를 앞둔 해사대 증원의 현실(기획 p14~15), 열악한 현실이지만 묵묵히 대학의
청소를 책임져 주시는 청소부 아주머니(기획 p12~13), 학내 성폭력, 성희롱에 대한 인식(이슈파헤
치기 p42~43) 등을 취재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조금은 어렵고 지루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
을 것이다. 하지만 내 주변의 이야기이자 곧 내게 닥칠 이야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에 완벽
한 갑과 을의 관계가 없는 것처럼.


_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지켜만 보는 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나 또한 더 이
상 방관자로서 기자가 아닌 주변에 대한 관심으로 학내 곳곳의 이야기를 전달하기위해 더욱 열심
히 뛰고, 글을 쓸테니 말이다.


_ 한편 학내 소식도 소식이거니와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사드배치 등 연일 뉴스의 1면을 장식
해온 사회적 현안들을 보며 오랜 시간 묵혀둔 시(詩)를 떠올렸다. ‘이를 소재로 글을 쓰겠다’는 생
각에 부족한 핸드폰의 용량 속에도 당당히 살아남은 사진은 10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사진첩을 지
켜왔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글감을 오늘에서야 쓸 수 있다니. 물건이었다면 수북이 쌓인 먼지
에 녹슨 부품으로 가동조차 어렵겠지만, 글이기에 2016년 10월, 오늘의 현실에 빛을 발할 것이다.

 

<그들이 왔다>


                                                       -마르틴 니묄러-

나찌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태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조원이 아니었음으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카토릭 교도들을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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