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서재] 시간생존카드
[향기나는 서재] 시간생존카드
  • 한국해양대신문사
  • 승인 2017.06.07 1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생존카드

 

▲제목: 시간생존카드 에르셀 에메 저, 문학동네, 2002

 

 

_‘이 행성에서의 1시간이 지구에서의 7년이야’

_밀러행성에서 3시간을 보낸 쿠퍼와 브랜드가 우주선으로 복귀했을 땐 이미 23년 4개월 8일 이란 시간을 보낸 후였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그 제목처럼 시간을 중심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간극, 그리고 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을 상대성이론과 함께 이야기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시간과 시간의 간극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단편 소설 하나가 있다.

_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에메(Marcel Ayme)의 「시간생존카드 : 즬 플레그몽의 일기 발췌」는 즬 플레그몽이라는 주인공을 둘러싼 시간에 관한 일기형식의 단편소설이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 정부가 인간을 유용한 인간과 무용한 인간, 두 부류로 나누어 그 유용성에 따라 정해진 생존 시간만 현실세계에 존재하도록 통제하는 우화적 설정을 하고 있다.

_파리시는 식량과 생필품난에 대처하고 노동계급의 수익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시간생존카드’를 발급한다. 노인, 퇴직자, 금리생활자, 실업자 등 자기 자신을 부양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생존권을 박탈한다. 안타깝게도 무용한 인간으로 분류된 작가인 주인공 즬 플레그몽은 그의 시간생존카드에 한 달에 보름만 생존을 보장 받는다. 때문에 짧은 삶에서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밤잠을 설친다. 정상적인 삶을 살 때 석주나 걸려 쓴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원고를 나흘만에 해치우는 기지도 발휘한다. 그런데도 예전처럼 문체에선 광체가 나고 사유에는 더욱 깊이가 있다.

_주인공의 상대적 시간은 한 달에 보름이란 시간만으로도 그의 유용성을 증명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모두에게 주어진 물리적 시간은 동일하지만 유용성으로 생각하면 모두에게 동일한 시간은 아니다. 누구는 밀러행성의 시간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구의 시간을 보내는 이도 있다. 1시간으로 7년의 성과와 결과는 내는 유용성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7년을 보냈음에도 1년의 성과를 내는 무용성의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_그런데 에메는 단순히 유용성 추구의 목적으로 이 소설을 써내려갔을까?

_‘쓸모없는 사람들, 부양을 받고 있을 뿐 그것의 대가를 전혀 치르지 않는 소비자들의 무리에 놀랍게도 예술가와 작가도 포함된다고 하지 않는가! 이것은 분명 자가당착과 양식에서 벗어난 판단 착오가 빚어낸 일이었다. 이는 우리 시대가 다시없는 수치로 남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의 유용성이란 증명되어야할 성질의 것이 아니닌깐 말이다.(p41~42)

_인간을 유용성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마르셀 에메(Marcel Ayme)가 이 소설을 쓴 20세기 초와 한 세기가 지난 현재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인간을 유용성만으로 설명하자면 그의 스펙과 성과로 자신을 증명해 보여야한다. 그것이 증명되지 않으면 시간생존카드의 시간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개인에게도, 직장생활에서도 그리고 또 대학에 드리워진 시간생존카드는 어떠한가? 취업률과 진학률로 증명해보이지 않으면 학과가 통폐합되고 대학 자체도 위기를 맞이하는 분위기이다.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는 스스로를 증명해야만 생존(?)가능하도록 우리를 경쟁력으로 채찍질한다.

_주인공 즬 프레그몽은 7월 5일 일기에 자신이 뜨겁게 사랑한 엘리자가 시간생존카드의 절대적시간 속에서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 ‘영벌을 받는 영혼’의 고통을 토로한다. 암거래 시장을 통해 시간배급표를 매점하여 자신의 절대적 생존시간은 늘렸지만 사랑하는 엘리사와의 시간의 간극은 결국 채우지 못한다. 에메는 절대적 시간 속에 상대적 시간의 의미를 만남을 통해 이야기 하는 듯하다. 쿠퍼와 브랜드박사가 일어버린 절대적 시간의 간극을 만남으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유용성만을 추구하는 우리의 절대적 시간에 필요해 보인다.  

 

▲ 교양교육원 한상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