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과 대학
지방분권과 대학
  • 윤종건 기자
  • 승인 2017.11.16 19: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_다시 개헌이다. 지난 박근혜 정권 탄핵사태 이후 이른바 개헌론자들은 헌법을 개정해 진정한 민주국가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우리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로 꼽히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완화하기 위한 헌법적 수단을 촉구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대선 중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위원장 이주영 자유한국당 의원)가 활동 중에 있다.

_이 위원회가 가장 중심 있게 다루는 사안은 다름 아닌 지방분권이다. 문 대통령의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 발언 이후 현 정부의 권력 구조 개편과 함께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은 힘을 받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방분권이란 통치상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대폭 분산한 형태이다. 지방정부의 권한이 강화되면 이를 견제할 지방의회의 역할도 더불어 중요해진다. 이는 지방의 특수성과 실정에 맞는 행정을 가능하게 하며 진정한 행정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다. ‘지방분권은 시대정신’이라는 기치아래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지금, 대학은 어디로 갈 것인가?

대학의 양극화

_그동안 고등교육은 사회적 흐름에 가장 쉽게 휩쓸리는 위치에 서 있었다. 국가 전 분야에 걸쳐 대부분의 역량이 서울로 몰리고. 중추적 국가기관, 의료기관, 언론기관, 대기업 본부는 대부분 서울에 그 본거지를 두고 있다. 이른바 ‘서울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대학은 둘로 나뉘어졌다. 서울에 있는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 대학이 가지는 사회적 기능이 적지 않음을 감안할 때, 대학의 양극화는 지역사회의 양극화를 불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 지역대학은 심지어 ‘지잡대’라 불리는 등 지역 고등교육의 기반은 서서히 침식되어갔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부산대학교 서정혜(26) 씨는 최근 서울에서의 취업준비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서씨는 “지역 언론사는 규모가 작아 채용하지 않는 해가 많다”며 “제대로 된 언론고시 스터디도 찾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취업준비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취업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서울로 떠나야하는 실정이다.

_아래 [표 1]은 최근 2018년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이다. 이 대학들은 단계별로(일부해제-일부제한-전면제한) 정부재정지원사업과 국가장학금 지원에서 제한을 받는다.

▲ 2018년 정부재정지원 제한 대학


_이들 대학은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하위등급(D, E)등급을 받고, 정부가 주도하는 맞춤형 컨설팅 사업에서 미흡한 성과를 내 ‘그룹 2’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1주기 대학구조개혁평가가 수도권에게 유리했다는 의견이 나오는 만큼 평가자체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수도권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평가지표의 문제점이다. 인구, 일자리, 자본의 수도권 집중으로 비롯한 ‘문제’가 대학에 영향을 미친 것인데, 이러한 문제는 차치하고 그 결과만을 통해 대학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신입생 모집율 ▲재학생 충원율 ▲취업률 등 모든 대학 평가 지표에서 수도권 대학에 밀릴 수밖에 없다. 그 결과 1주기 평가에서 서울지역 대학 중 절반(47.1%)은 정원 감축이 대학 자율에 맡겨지는 A 등급을 받았으나, 정부재정지원이 제한되고 10% 이상 정원감축이 권고되는 D, E 등급은 3곳 중 2곳(65.6%)은 지방대학이었다.(4년제 대학 기준)

_정원의 감축은 재정의 감소로 이어진다. 새로운 대학의 체제를 마련하기 위해선 재정이 가장 중요하다. 반대로 말하면 재정의 감소는 대학이 체제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다. 가뜩이나 이명박 정부의 등록금 동결정책과 박근혜 정부의 구조조정 수단으로 전락한 대학 재정지원사업으로 대학의 숨통은 더욱 좁아진 상황이다. 때문에 우리대학과 같은 지역 중소규모 대학의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졌다. 규모가 큰 거점 국립대학의 경우 정원이 많은 만큼 운영비, 시설비 등 정부 지원금도 그에 비례해 많다. 그러나 중소규모 대학은 등록금을 통한 자체 수입도 적을뿐더러 인원수에 따른 지원금도 적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 논리에서 크게 불리하다. 정원수에 맞춘 재정지원이 결과적으로 대학 간의 빈익빈 부익부를 확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원감축은 아니고 퇴출로

_물론 이 평가는 박근혜 정부에서 주도한 결과이다. 이전 정부에서 이루어진 평가인 만큼 새 정부의 평가방식에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정원감축 목표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기조를 내세웠다. 류장수 신임 대학구조개혁위원장도 정부의 정원감축 목표보다는 한계대학 정리에 더욱 무게를 두었다. 다시 말해 1주기 평가는 정원감축이 목표였다면, 2주기는 퇴출에 방점을 두겠다는 것이다. [표 1]에 제시된 내년도 재정지원제한 14개 4년제 대학을 보면 2700여명 규모의 청주대를 제외하면 모두 1000명 미만의 소규모 대학이다. 현 정부의 정원감축 의지가 이전 정부만큼 강하지 않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교육부는 서남대(전북 남원), 한중대(강원 동해), 대구외대(경북 경산)에 폐쇄를 명령했다. 이들 대학은 ▲설립자 비리(서남대) ▲교비회계 전용 등 비리(대구외대) ▲교비회계 횡령(한중대) 등의 이유로 문을 닫게 되었다.

_그렇다면 부실대학의 퇴출은 대학구조개혁의 온전한 방향일까? 우선 지역대학은 그 지역경제와 상생하는 구조가 상당수다. 즉 대학의 몰락은 지역 경제의 몰락을 초래하게 된다. 가까운 예로 중소규모 지역대학가를 봐도 그렇다. 학기 중이면 학생들로 붐벼 자리가 없을 지경이지만, 방학이 되면 사람이 빠져나가 이내 경기침체가 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의 정원이 줄거나 통폐합 혹은 퇴출된다고 한다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진다. 뿐만 아니라 대학은 지역의 공공재 역할을 상당부분 담당하고 있다. 대학의 지역사회 기여도를 생각해 볼 때, 대학의 몰락은 지역의 몰락과 크게 연결되어 있는 실정이다.

_또한 대학의 몰락은 지역 인재의 이탈로 이어져 지역 산업의 인력 충원기능을 소멸시킨다. 자연스레 지역 산업이 죽고 이는 지역 취업기피 현상을 불러 국가적으로는 사업의 다양성이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부산시의 경우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표방해 기업 활동에 저해되는 규제를 개선하고, 유치기업(전입기업) 부지 임대료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부산시 전출기업은 2곳인 반면, 유치기업은 37개를 육박하는 등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2016년 기준) 그러나 문제는 인력이다. 지난 2014년 부산으로 전입한 A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사람이 한 명 빠져나가면 그만한 인력을 다시 부르기 위해서는 더 높은 조건으로 협상해야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_다시 돌아와 대학의 퇴출이 온당한 정책적 방향인지 고려해 볼 때,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미래에 빠른 속도로 감소할 학령인구를 대비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지만 이를 정부의 인위적 정원감축과 퇴출로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는 “정부 주도의 구조개혁평가 보다는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 즉 시장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며 정부의 정책적 방향을 비판한다.

_전문가들은 지금의 ‘평가와 제제’ 위주의 현행 방식만으로는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대학교육연구소 임희성 연구원은 “정부 주도의 평가 방식은 대학 숫자를 줄이는 데에만 급급하다”며 “특성에 따라 재편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물론 폐쇄되는 대학이 교육목적 이외의 사유로 폐쇄 절차에 들어갔지만, 대학퇴출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대학의 퇴출 = 지역 경제의 몰락 = 중소도시의 황폐화’는 결코 허황된 구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방이 잘 살기 위해선 대학이 커야한다

_지난 8월 23일 국회에 따르면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산하 자문위원회 지방분권분과는 학계 및 시민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지방분권 관련 개헌합의안을 국회에 공식 제출했다. 자문위 합의안은 향후 개헌 논의과정에서 수정될 수 있지만, 대략적인 틀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합의안은 현행 헌법 제 1조에 3항을 추가해 ‘대한민국은 지방분권 국가이다’라고 명시했다. 또한 헌법 제 8장(지방자치)의 경우 지방자치단체를 그 위상에 맞게 지방정부로 개념을 전환, 지방업무를 자율적으로 처리하는 공공주체임을 명확히 했다. 이로서 중앙과 지방의 역할분담을 명확히 함으로써 실질적인 지방분권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의지다.

_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를 내세우면서 지역 거점 국립대학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학벌주의 완화와 더불어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균형 발전을 위한 정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 파급효과가 중소규모 지역대학까지 이어질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사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등교육의 성장이 중요하듯, 지역 전략 발전분야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역 대학에 대한 지원 강화가 필수적이다.

_이제 대한민국은 지방분권이라는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우리 고등교육의 지속가능성은 바로 지금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은 어디로 갈 것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