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사기에서는 내 영혼이 나온다
영사기에서는 내 영혼이 나온다
  • 최은빈
  • 승인 2022.03.28 2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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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얼마 전, 제 26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성공적으로 막이 올랐다. 그리고 나는 아주 특별한 신분으로 영화제에 참석했었다. 바로 자원봉사자라는 이름으로 직접 발로 뛰며 영화제 일에 적극 동참했다는 것이다. 지역을 넘어 나라를 대표하는 행사를 내 손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가슴 뛰고 벅차는 일이었지만, 그 뒤편은 마냥 편한 이야기들로 꽉 찬 것은 아니었다.

_ 내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지원한 분야는 야외극장운영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기로 유명하고, 그에 따라 에너지 소모가 아주 큰 팀이었지만 처음엔 개의치 않았다. 많이 힘들어 봤자 얼마나 힘들겠냐는 알량한 패기로 21살의 나는 씩씩하게 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패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웬만해서는 중간에 포기를 하지 않는 내가 첫 출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께 울먹이며 했던 말은 이러했다. "나 내일 안 나갈까 봐"

_ 일은 너무나 힘들었고, 오래 서 있었던 내 다리는 퉁퉁 부어 잠시 굽히는 것조차 저릿한 아픔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이틀, 사흘을 보내며 나는 점점 색다른 감정에 휩싸였다. 첫날에는 힘들다는 이유로 느끼지 못했던 뿌듯함과 설렘, 그리고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것을 작은 성장이라고 생각했다.

_ 오롯이 내가 일을 잘해서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누리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순 거짓말일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았을 때 힘들다는 것을 넘어설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소는 팀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한 협동심 덕분이었다. 겨우 21살의 나이에 어떠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은 내게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책임감' 이라는 것을 심어 주었고, 막내인 나를 살뜰히 챙겨 주며 함께 악으로 버텨 보자던 언니 오빠들의 응원과 격려는 '협동심' 이 되어 영화제 자체를 넘어 어린 나의 생각을 쥐고 흔들며 내 세상을 뒤바꿔 놓은 것이다.

_ 어떠한 집단에 속하고,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내 몫이 있고 그것을 해내는 것 역시 엄청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견디고 해낸 후 경험치를 쌓아낸 나 자신이 기특하고 뿌듯할 따름이다. 언젠가 겪게 될 이러한 경험을 미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얻게 된 나는 게임 속 아이템을 미리 손에 쥐고 있는 것마냥 이젠 무서울 게 없다. 회사에서든, 새로운 봉사활동 단체에서든 또 다시 책임감을 가지고 할 일을 잘 해낼 내가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야외 극장의 영사기에서는 내 영혼이 흐르고, 그것은 오롯이 필름과 관객을 거쳐 나에게 값진 선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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