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 바다와 몸소 부대끼며 그려온 삶
해녀, 바다와 몸소 부대끼며 그려온 삶
  • 송세혁 기자
  • 승인 2022.10.18 2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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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우리학교 인근에서 해녀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우리 학교 및 영도가 아닌 곳에서는 해녀들을 접하는게 쉽지 않다. 통학 중에 해녀들을 더러 마주칠 수 있는 것은 우리대학 학우들의 메리트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대다수의 학생은 해녀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이 미비하다. 그 누구보다 바다와 직접 부대끼며 사는 해녀에 대해 알아보자.

알고 계셨나요? 살아있는 유산, 해녀

 ▲물질하는 해녀 <사진=한재신 기자>

 

_제주의 해녀들은 지역공동체적 문화를 오늘날까지도 전달하고 있다. 바다에서의 안전과 풍어를 위한 의식, 잠수기술과 책임감은 양성과정에 있어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선배에서 후배 해녀로 직접 전해지며, 선배 해녀들이 어촌계를 이끌어 갔다.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체계를 갖추게 된 현 시점에서는 제주 거〮제 등에 해녀학교가 설립돼 있다. 또한 제주해녀는 공동작업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해녀 문화의 사회적 응집과 문화적 지속 가능성을 위한 활동도 벌이고 있다.

_제주해녀의 행보는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적 조업방식, 생태환경에 대한 민속 지식과 세대 간의 문화 전승, 주체적 여성 문화, 배려와 질서의 공동체 등 독특한 문화도 이룩하였다. 해녀는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2013년 12월 19일 “유네스코인류무형문화유산”의 등록신청 대상으로써 한국 대표종목으로 신청되었고, 2016년 10월 31일 “유네스코의 심사기구”에서 제주해녀문화의 등재권고를 거쳐 “유네스코 제11차 정부 간 위원회”에서 제주해녀문화가 등재 확정되었다.

▲해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인증서 <제공=해녀박물관>

 

 그럼 해녀하면 제주도 아닌가? 영도에 해녀가 있는 이유

_결론부터 얘기하면 영도해녀가 곧 제주도 해녀이다. 영도문화원에 따르면 영도해녀는 대부분 제주 출신의 출향해녀로, 1887년 제주해녀가 “경상남도 부산부 목도(영도)”에 온 것이 시초이다.

_제주해녀의 출향은 역사적 배경과 함께 시작되었다. 조선과 일본 간에 체결한 불평등 조약인 조일수호조약(고종13년 1876년, 병자수호조약)에 따른 개향은 제주해녀들에게 두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먼저, 일본 정부를 등에 업은 일본 어민들의 무단 침입 불〮법 어획 잠〮수 기선을 동원한 해산물의 남획으로 인해 제주 연안 어장이 황폐화되었다. 이에 연안 물질을 할 수 없게 된 해녀들의 출향이 속출하였다. 또한 개항과 더불어 경남 지역에 진출한 일본 해조 업자들이 객주들을 상대로 자금을 공급하여, 이들로 하여금 작업 능력이 뛰어나고 임금이 저렴한 대거의 제주해녀들을 경남내륙지역으로 끌어들여 거주하게 하였다.

_일제강점기 이후, 해녀들 상당수는 제주도에 돌아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출향을 계기 삼아, 경남지역을 포함하여 황금어장을 겸비한 전국곳곳의 해안지역에 분포하게 되었다. 이후 1960년대, 어업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한 해양수산 자원의 남획 방지와 관리가 이뤄졌다. 이는 마을 어촌계에 마을 앞 어장에 대한 우선적 면허권을 쥐여줬고, 외부인이 해조류를 채취할 권리를 제한했다. 이에 해녀들은 마을 주민화를 통해 정당한 어업권을 가지면서 정착해 나갔다.

▲제주해녀의 출향 경로 <사진=한재신 기자>]

 

우리가 보는 해녀! 그럼 어떻게 물질할까?

_기본적인 형태는 개인사업체의 형식으로 물질 작업이 이뤄진다. 개인사업체의 형식이지만, 합심해서 공동작업을 벌이는 경우도 많다. 대개 평일, 공휴일, 주말에 관계없이 비, 태풍, 바람 등의 날씨 여부에 따라 작업이 진행된다. 작업 시간대도 마찬가지다. 태풍이나 바람과 더불어 계절에 따른 조수간만의 차도 크게 고려하며, 일반적으로 물이 빠지는 썰물 시점에 들어가 물질을 진행한다. 더불어 거래하는 해산물 가게나 수산업자의 거래 일정 및 시간을 고려하여 물질을 진행하기도 한다.

_해녀의 물질 행위는 거주지▲ 당일 목표로 하는 해산물의 종류▲ 물질 수확량▲ 수심과 관련한 개인 물질 기술 및 역량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물질 장소 선정에 있어 통상적으로 자신의 거주지에서 가까운 해안에서 물질을 진행한다. 영도에는 크게 태종대 자갈마당 부근의 해안이나, 영도 해녀촌 부근의 해안이 있다. 여기서 해녀촌은 명명상의 느낌과 달리, 해녀들의 실거주지가 아닌 일터다. 영도 곳곳에 살고 있는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해녀촌에서 출발하거나, 해녀촌에서 장사를 하는 형식이다.

▲ ~영도해녀의 주요 물질 장소: 1)태종대 자갈마당 인근 해안 <사진=송세혁 기자>
▲영도해녀의 주요 물질 장소: 2)해녀촌 인근 해안 <사진=송세혁 기자>

 

산소통이 없는 해녀의 장비와 숨비소리

▲해녀의 장비 <제공=국립무형유산원>

 

_해녀의 장비는 일반적으로 수경▲ 고무옷▲ 오리발▲ 연철(물에 가라앉기 위해 허리에 차는 잠수기구)▲ 까꾸리 및 빗창 또는 작살(해산물을 채취하는 용도)▲ 테왁(수면에 올려 놓고 숨이 차면 올라와 가슴에 받쳐 몸을 뜨게 하는 공 모양 기구)▲ 망사리(채취한 해산물을 넣어두는 그물망)이다.

_현재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산소통과 같은 좋은 잠수 장비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음에도 해녀의 장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산소통의 금지는 무엇보다 법적 명시사항이기 때문이다. 잠수어업은 산소를 공급받는 잠수기어업과 공급받지 않는 나잠어업으로 나뉜다. 해녀의 물질은 해산물 남획 방지를 위해 후자로 분류되어 있다.

_온전히 자신의 숨으로 물속을 활보해야 하는 해녀는 독특한 소리를 낸다. 물 속에서 숨을 참으며 생긴 몸속의 이산화탄소를 수면에서 한꺼번에 내뱉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과정에서 휘파람과 유사한 소리가 발생한다. 이를 ‘숨비소리’ 라 한다.

▲수면에 올라와 숨을 뱉는 해녀 <제공=해녀박물관>

 

전/현직 해녀에게 듣는 해녀로서의 생각, 감정, 고충

_해녀로서의 감정과 고충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전직 제주출신 해녀였던 오모 할머니(84)는 “주변 친구 언니 동생들이 다 물질을 배웠기에 어릴 적 해수욕을 하러 놀러 나가듯이 자연스레 물질을 배우게 되었다” 며 이는 “어느덧 내 삶의 기술이 되었고, 16살부터 물질을 시작해 79살까지 물질을 하게 되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어 “늘 당연한 일상이였지만, 비랑 태풍만 안 오면 살아보겠다고 어김없이 숨을 참는 나를 보며 바다로 향하는 해녀라는 직업이 힘들기도 하고 괜시리 천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며 당시의 고충을 말하였다. 하지만 돌아보면 “누군가는 두려워할 바다가 내게는 자식의 장성과 가정 유지라는 행복 수단을 쥐여준 반갑고 소중한 곳”이라고 밝혔다. 한편, 해녀생활을 하며 아쉬웠던 점은 “이제 나이가 들고 노쇠하여 바다 밑 최고의 전경을 직접 찍어보지 못하고 눈과 마음으로만 간직해야 한다는 점” 이라고 밝혔다.

_현직 제주출신 해녀 양모 할머니(72)은 근래 해녀로서 드는 생각으로 “기후 변화에 따른 큰 태풍, 유조선의 해양사고, 환경오염의 영향에 따른 수면과 수온의 상승 등으로 인해 물질의 수확량과 채취한 해산물의 크기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며, “바다를 이용하는 이들이 환경과 기후적 요소를 고려해서 적어도 폐기물 같은 것은 안 버리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감정적 고충과 관련하여 “물질을 몇 십년하며 주변의 친구, 언니, 동생 등이 숨을 쉬러 물에 나오다 배에 치이거나, 자기 역량보다 더 욕심을 내다 큰 사고가 났던 기억들이 있다” 며, 이는 “고무옷을 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겨울 바다 수온에도 묵묵히 들어가는 나인데도 마음 한 켠에 무겁고 아프게 자리 잡고 있다” 고 토로했다. 한편 해녀의 고령화와 관련하여 “요즘처럼 새로 물질하는 사람들의 등장이 드문 시기에 내가 계속 물질을 하는 것은 주어진 운명 팔자이자 사명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남은 삶에 있어도 정말 내 물질 기술이 특기이자 기술이지 않냐” 며 “바다는 나에게, 스스로가 가장 빛나게 녹아든 공간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 이라고 밝혔다.        

우리 역시 바다와 부대낀다

_우리가 통학 중에 마주치는 해녀의 대한 정보와 삶을 살펴보았다. 해녀의 삶처럼 해양특성화 대학을 다니는 재학생의 삶도 바다와 큰 관련이 있다. 해녀들은 바다와 몸소 부대끼는 그들만의 고충, 감정, 특권, 기술과 함께 삶의 과정을 또 하루 쌓아가며 그려간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바다와 부대끼며 삶을 그려간다. 해녀가 추운 겨울 수온에도 불구하고 광활한 바다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것처럼, 우리도 바다 같이 광활한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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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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