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소통 방식을 가진 그들
남다른 소통 방식을 가진 그들
  • 김재영
  • 승인 2023.07.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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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농인을 위해 설립된 대학교"

 

청각 장애인을 주제로 함께 이야기해 보자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의사소통이 편하지 못한 이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안쓰러운 이들? 보편적인 시각을 따져 보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나 역시 청각 장애인을 주제로 다루는 다큐멘터리라니, 눈물겨운 성장 스토리가 주가 되지 않겠느냐고 흘러가듯 생각했다. 영상을 재생한 지 5분 만에 편견은 산산조각이 났지만.

 

 

 

-농인을 위한 대학

 

넓은 의미로는 청각 장애나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통칭하며, 좁은 의미로는 청각 장애로 인해 입을 통한 발화가 힘든 이들. 이는 농인의 사전적 정의다.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갤러뎃 대학교는 바로 이러한 농인들을 위해 설립되었다. 세계 최초로 농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대학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뛰어난 커리큘럼과 교육 방안을 자랑하여, 농인 학생들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 힘쓰며 각기 다른 분야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해 왔다. 더불어 소리 대신 불빛으로 타인의 방문을 알리는 시스템을 학교 시설에 도입하는 등, 농인 친화적인 공간 디자인 역시 그 세심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과연 재학생들의 일상은 어떨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DEAF U>를 통해 알아보자.

 

 

 

사진 출처: Netflix

 

-그들의 연애담

 

다큐멘터리 메인 포스터의 첫 번째 칸을 장식하는 여학생 레나테는 성소수자로, 같은 학교 내 다른 여학생인 테일라와 연애 중이다. 그들은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교정을 거닐거나, 사이좋게 잔디밭에 누워 햇빛을 쬐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약간의 고충은 있다.

 

만일 비장애인 여성들이 네일아트 숍을 방문한다면 어떨까. 네일이 완성되기까지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이들 커플은 그러지 못한다. 손을 움직일 수 없으니 그저 다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뜨겁고 당당하게 사랑한다. 레나테는 대회에 출전하여 여자 친구 테일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창작 시를 읊으며 박수갈채를 받기도 한다.

 

 

사진 출처: Netflix
사진 출처: Netflix

 

다큐멘터리 방영 이후 압도적인 화제를 끌어모은 인물이 있다. 바로 알렉사. 미모와 호쾌한 성격을 겸비한 그녀답게 인기도 많아서 수많은 남학생들과의 연결고리가 존재한다. 썸남의 절친과 깊은 사이라는 다소 놀라운 배경이 존재하기도. 보는 입장에서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방과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좋다고 진솔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적극적이고 활발한 타입이라며 스스로를 어필한다.

 

인싸그 자체인 그녀는 녹화 중인 카메라 앞에서 자신은 관심받는 게 좋다며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본인의 바람대로 재학생들의 이목을 끌며 화제를 몰고 다니는 알렉사는 사실 엘리트 그룹에 속한 인물이다. 재학생들 내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늘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엘리트 그룹. 그러나 그들의 실상은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농인 엘리트의 존재

 

농인 엘리트란, 대대로 농인 집안으로서 농인 사회에서의 네트워크가 단단한 이들을 가리킨다. 소속감은 인간에게 여러 이득을 가져다준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차별받을 위험이 도사리는 사회에서 특히 그들에게는 더욱 필요한 방식의 연대라고 생각하는데, 이 다큐멘터리에서 다루어지는 알렉사의 주변인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입학 전까지 비장애인들과 주로 교류해 온 샤이예나는 농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엘리트들에 비해 약한 인물이다. 그녀는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며 톡톡 튀는 매력을 발산하는데, 엘리트들의 눈에는 샤이예나의 이러한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인다. 그들은 샤이예나의 입모양이 과하다거나, 수어가 옳지 못하다는 것을 이유로 그녀의 영상을 나노 단위로 평가한다. 엘리트 그룹은 농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하지 않고, 주로 비장애인과 교류하는 샤이예나의 모습이 그다지 보기 좋지 않은 모양이다.

 

이 나이에 다시 대학에 가도 될까요?’, ‘염색하면 이상하게 볼까요?’ 인터넷 상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이러한 질문들이 나는 폐쇄적인 집단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엘리트 그룹의 행동은 샤이예나가 스스로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한국 사회가 정해진 코스를 이탈하는 이들을 곱게 보지 않는 경향이 유달리 두드러진다고는 하나,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런 현상은 국경을 불문하는 듯하다. 소문이 빠르고, 특정인을 두고 온갖 검증되지 않은 가십이 도는 것은 물론이며 특히 대다수가 구축한 정상 궤도를 벗어난 이들일수록 눈총을 받는다. 이러한 공식은 재학생이 1000명 남짓한 갤러뎃에서는 비장애인, 더 나아가 비장애인과 교류하며 다수자에 편입되고자 열렬하게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소수자가 되어 배척당하는 것으로 통한다. 이후 샤이예나는 학교를 자퇴한다.

 

한편 엘리트 그룹에 속하는 알렉사는 샤이예나의 영상을 보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친구들에게 웃어 주지도, 동조하지도 않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사회적 네트워크가 중요한 그들에게는 인간관계를 끊어낸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에 그녀로서는 아마도 최선의 처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샤이예나에게 힘이 되어 주지 않았던 점은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남는다.

 

 

 

솔직한 연애담을 풀어내어 자극적이라는 평을 받는 것과는 별개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다큐멘터리였다. 대학생 신분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은 내가 아는 그 누구의 일상보다도 흥미로웠다. 청인들의 삶에도 마치 엘리트와 비엘리트로 구분 짓는 잣대가 존재하듯, 농인 사회에도 같은 맥락으로 엘리트가 존재한다는 것이 특히 놀라웠던 점들 중 하나였다. 폐쇄적인 커뮤니티의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여러 특성들은 뒤로 하고, 그들을 주류로 하여 전적으로 서포트하는 교육기관으로서 농인들을 위한 대학의 존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풋볼팀 코치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매우 열성적으로 학생들을 코치하며 지도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최근 농인들이 사회 각계각층에 진출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미국의 명문대들이 장애 학생들을 위한 개편된 지도 방안과 여러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하며 좁아진 갤러뎃의 입지가 다시 회복되기를 바랄 뿐이다. 편협한 시각을 바꾸고 싶다면 넷플릭스의 <DEAF U>를 한 번쯤은 꼭 시청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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