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다는 것의 의미, 글의 무게
쓴다는 것의 의미, 글의 무게
  • 한소정
  • 승인 2023.10.09 2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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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나의 기억 속에서 쓴다는 것의 첫 번째는 낙서였다. 누구나 그렇듯 나의 글의 시작은 끄적임이었다. 그런데 그 끄적이는 느낌이 참 좋았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모습으로 쓰여지는 나의 글은 어느새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그리 외향적이지 못했던 탓인지 친구가 많지 않던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앉아 있는 시간들 대부분은 무엇인가를 쓰는데 시간을 보냈다.

_어릴 때 좋아했던 글은 ‘시’였다. 하고 싶은 말과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하는 시와 그런 시를 쓰는 시인은 마냥 똑똑해 보였고 멋있어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더 커서는 소설을 좋아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를 그려내는 소설과 작가들은 신과 같은 존재일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성인에 가까웠던 무렵부터는 문학적이지 않은 글들을 즐겼던 것 같다. 예컨대 기사, 비평, 저널 이런 글들을 말이다. 그때부터 나의 선망의 직업은 ‘기자’였다.

_장래희망에도 당당하게 ‘기자’가 꿈이라고 적었던 나는 그 무렵부터 쓴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쓴다는 것이 나에게 그리고 나아가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일까. 사실 여전히 명확한 답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어렴풋이 생각하는 답은 ‘기억’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필연적으로 잊어버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쓰고 나면 그것은 기억에 남고 기록물이 세대를 넘어 전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기억하기 위해 쓴다는 답을 내렸다.

_답을 내리고 보니 글이 가진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특히 기자는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전달하고 기록하는 일을 한다. 기자의 기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을 기억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니 단 한 글자도 허투루 쓰면 안된다. 물론 기성 언론 기자는 아니지만 내가 가볍게 생각하고 쓰는 이 한 줄이 누군가에게는 빛나는 청춘을 기억하게 해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아픈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아련한 기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판 몇 번으로 가볍게 글을 쓰고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글의 무게는 달라지지 않았다.

_가끔 이러한 글의 무게를 잊을 때도 있다.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에서 지쳐가는 나 자신을 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고, 잊어버리는 것이 편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야 하고 기억해야 할 것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나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는 곳이니까. 때로는 그 무게가 버겁고 외면하고 싶어도 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수평을 맞추기 위해 그 무게가 필요한 곳이 생기기 때문에.

_내가 쓰는 글의 무게를 알고 늘 마음에 품어 두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기자의 사명이자 자질이다. 내가 쓰는 기사를 누군가 알아주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쓰는 것이 꼭 기억할 필요가 있고 남겨질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나는 주저없이 쓸 것이다. 내가 써야만 누군가는 기억할 테니까. 그리고 만약 내가 쓴 기사를 많이 읽고 공감해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것만큼 보람찬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기자가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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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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