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서재] 우리에게 역사는 무엇인가
[향기나는 서재] 우리에게 역사는 무엇인가
  • 한국해양대신문사
  • 승인 2009.06.1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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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의 「내 사랑하는 자」

노 종 진
영어영문학과 교수

 

 

 우리는 몇 주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충격적으로 목도하였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하였고, 그의 삶의 흔적들을 다시 확인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목숨을 버림으로써 의미를 만들어낸 그의 존재에 대해 다양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번 역사적 사건이 국민 개개인의 생각이나 삶의 태도에 적지 않은 파동을 일으켰을 것이고, 국가적으로도 정치권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변화해야 하는 점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다. 이처럼 한 인간의 운명이 우리의 잔잔한 일상에 충격을 주기도 하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힘에 의하여 굴러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라는 의미를 생각해보며 이 지면을 빌어 미국의 여류소설가 토니모리슨의 『내 사랑하는 자』란 책을 소개하여 그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토니 모리슨은 1931년생 미국의 흑인여류작가이다. 현재 프린스턴 대학의 영문과의 교수이자 랜덤하우스 출판사의 편집인, 그리고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1987년에 출간된 『내 사랑하는 자』(원제:Beloved)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1992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아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 중의 한명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 소설은 또한 2006년 뉴욕타임즈가 200명의 비평가, 작가, 편집인을 설문조사한 결과 지난 25년간의 미국소설 중 최고라는 영예를 얻은 작품이다.

 작가는 이 소설의 서문에서 아프리카에서 중앙항로를 통해 미 대륙으로 끌려왔던 노예선조 2500만 명에게 이 책을 헌정한다. 이 소설은 미국의 노예제도를 비판하는 차원을 넘어 흑인들의 정신적 상흔을 치유하는 책이자 진정한 예술작품으로 남는다. 소설의 주인공 세드(Sethe)는 켄터키에서 자유를 찾아 오하이오 강을 넘어 신시내티 근교로 탈출하였으나 얼마 뒤 뒤좇아 온 주인과 일당을 대면하자, 끔찍한 노예생활 대신에 자신이 더 나은 세상으로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칼로 딸의 목을 베어 살해한 기억을 갖고 있다.

당시에는 도망노예소환법이라는 것이 있어 노예 주인이 도망간 노예를 찾게 되면 다시 권리를 가질 수 있었다. 모리슨은 실제의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이 소설을 썼는데 노예제도의 잔인함과 그것으로 인한 노예들의 육체적, 정신적 트라우마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그 후손들에 까치 미치는 영향 등을 상세히 그리고 있다.
백인들에 의해 작성된 신문기사에서 1856년에 마가렛 가너라는 흑인여성의 자식살해의 사건에 대한 기사를 접한 모리슨은 자신들의 입장을 기록할 수 없었던 흑인들의 사라지거나 왜곡된 과거를 흑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재현한다. 백인들은 자식을 살해하는 비정한 어머니의 모습을 조롱하였지만, 모리슨은 기본적으로 노예제도에서 백인들이 흑인에 가한 만행은 미치지 않고서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것임을 지적한다. 즉, 유아살해의 비정한 모정을 조롱하는 백인들의 비난을 상쇄시키는 그들의 악랄한 치부를 보여줌으로써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이처럼 역사의 객관적 시각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등장한 여러 20세기의 사상가들이 있지만,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미쉘 푸코는 역사는 담론체계의 진화로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언어로 매개되는 담론과 제도권력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체계는 우리가 아는 것을 주조한다고 주장하였다. 성의 역사, 감옥의 역사, 광기의 역사 등에 대해 천착하였던 그는, 예를 들어 정신병원과 감옥과 같은 제도가 우리가 어떻게 인간일 수 있고 또한 우리가 사물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등의 현대적 주체성을 형성하였다고 주장한다.

작가로서 모리슨은 이 소설에서 과거의 조각난 이야기들을 언어의 매개로 재창조하는 작업을 통해 역사를 복원하려 한다. 그녀는 `재기억'(rememory)이란 개념으로 그것을 설명하고 있으며 개인 또는 그룹의 재기억의 과정이 역사이다. 소설에서 작가는 노예제도가 초래한 잔인함과 비인간적 폭력의 기록은 사라졌지만 이미지로 남는 과거는 그대로 현존한다고 말하고 있다. 모리슨에게 역사는 과거를 재기록하고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재현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이 소설은 포스트모던 역사소설의 범주에 포함된다.


 역사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란 질문은 사실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개개인의 인생도 하나의 역사이다. 개인의 생활의 모든 창조행위와 궤적은 역사와 필연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때, 사회에서 우리 각자의 역할과 역사창조의 몫은 큰 의미를 갖게 된다. 몸을 던짐으로써 말 대신에 몸소 의미를 만들고 우리역사를 새롭게 쓰려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단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각자의 주어진 몫을 성실히 감당하고 노력하여 역사의 창조적 주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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